<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주연배우 원빈과 함께 다니다 보니 이유없는 수모(?)를 당한다. 하필이면 원빈과 단둘이 서 있는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아놓았다고 한다. “원빈 옆에 서 있는 저 코 있고 눈 달린 건 뭐냐?”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다. 시사회 다음날 관계자들의 호의적인 평에 그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일반 관객의 반응은 또 어떤 것일까. 가령 이런 것이 최상이다. “여자가 남자 애인의 손을 끌고 들어가서 보게 되는데, 끝난 다음에는 남자가 더 반해서 극장을 나서게 되는 그런 영화.”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이어서 더 물어봤다.
-시나리오 작업이 오래 걸렸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사실 이 작품으로만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린 건 아니다. <열혈남아>가 끝나고 <시크릿 보이>라는 로맨틱코미디를 2년 동안 썼다. 완고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막상 하려니 내가 마음이 잘 안 움직였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액션이 가미된 남자영화가 더 끌렸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게 됐고 <아저씨>를 2009년 1월부터 시작해서 3개월 만에 초고를 쓰고 3.5고로 캐스팅을 했다. 처음에는 주인공 아저씨 설정이 60대였다! 그런데 주위에서 60대 중 그 역을 할 배우가 있겠느냐고 해서 40대로 낮춰서 시나리오를 돌렸다. 그런데 원빈이 우연히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 하겠다고 나선 거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이었나.
=북파공작원이나 HID 출신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였다. 그런 이력을 가진 노인이 전당포를 하고 옆집 아이만이 유일한 친구인데, 그 아이가 납치됐을 때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을까 했다. 노인이 힘들게 헐 하면서도, 이얏 하고 액션을 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페이소스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한 대로 캐스팅이 어려워 조정을 하게 된 거다. 그럼 40대는 누가 좋을까?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그러다 우연히 원빈이 시나리오를 읽고 하겠다고 나선 거다. 나도 의외였다. 이해는 안되지만 왜 하고 싶어 하는지 말이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만났으니까. (웃음)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최민수의 <테러리스트>를 보고 나서 배우를 하겠다고 결심한 친구라 원빈에게 이런 종류의 피가 흐른다. 열정도 가득했다. 어쨌든, 좋다, 원빈으로 결정됐으니 멋지게 한번 가보자, 한 거다.
-원빈은 시나리오의 수정이 없더라도 하고 싶다는 의사였나.
=그렇다. 하지만 내가 수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사는 원래부터 적었다.
-어떤 것들을 주로 수정했나.
=큰 내러티브는 변한 게 없다. 아저씨 태식(원빈)의 과거사를 많이 수정했다. 그리고 톤 조정을 했다. 그게 좀 어려웠다. 북파공작원, HID 출신으로 설정했을 때는 과거에 자기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진 노인이었는데 이젠 다른 것이어야 했다. 지금과 같은 설정이면 소미(김새론)와 아저씨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 있었다. 소미가 엄마가 마약을 하는 바람에 하루 아저씨네서 자고 가는 설정은 둘의 친근함을 위해 만들어진 거다. 가장 많이 고민한 건 태식의 과거사다. 태식이 어떤 인물이었을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보다는 태식이 어떤 상처를 받고 세상으로부터 숨었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같은 설정이 들어가게 됐다.
압축하고 물아치는 액션
-송강호, 설경구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말도 있다. 이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면 영화의 인상은 완연히 달랐을 거다.
=두 사람을 상정하고 쓴 건 아니다. 말한 대로 그들이라면 영화는 또 완전히 달라졌을 거다. 두 사람의 액션은 그들마다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설)경구 형의 경우는 합을 짜서 하는 그런 액션보다 감정이 터져서 하는 액션쪽에 훨씬 유능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깔끔한 액션이 처음부터 컨셉이었다. 한편으론 바람을 가르는 식의 화려한 무술동작을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동작을 압축하고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액션으로 디자인하자고 무술감독과 상의했다. 액션만 놓고 말하자면 스티븐 시걸 같은 액션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왜 어떤 영화를 보면 뻔히 보이는데 악당이 칼을 쥐고 뒤에 서서 언제 찌를지 쓸데없이 기다리는 장면 있지 않나. (웃음) 그런 것도 선호하진 않는다. 무술감독에게, ‘몰아치자’고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무모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웃음)
=이 제목을 지지한 건 나하고 촬영감독뿐이다. (웃음) 다들 촌스럽다며 영어제목을 추천했다. 유하 감독님의 경우는 “정범아, 왜 관객을 내쫓는 제목을 굳이 쓰냐”고까지 하셨으니까. (웃음) 그런데 난 될 것 같다.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목부터 정한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소미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장면이 많아서 가제로 무심결에 아저씨로 붙인 것이긴 하다. 하지만 40대의 어떤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아저씨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면 식상하겠지만, 주연배우가 원빈인데 영화제목이 아저씨이면 그 아이러니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누가 제목 바꾸자고 하면 나중에 상의하자고 말한 다음 일단 피했다. 나중에 임박해서 모른 척 그냥 밀어붙였다. 지금은 물론 다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 영화는 상업적인 조율에 전반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표현 수위가 높은 액션장면만큼은 상업성을 무시한 연출자로서의 어떤 고집이 엿보인다.
=처음부터 18살에 맞춰서 가자고 했다. 실은 난 수위가 더 셌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액션으로 태식의 분노가 표현되는 거라면 그 액션의 강도는 더 세야 한다는 뜻이다. 원빈에게도 말했다. ‘밀실에서 아이들을 유린하고 꼬마아이의 눈을 뽑아서 볼링 스타일로 네 앞에 던지는 자들에게 용서는 없다. 액션을 할 때도 그런 감정을 실어라. 태식은 말이 없으니까 몸으로 감정을 전한다.’ 수위가 높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개인적으론 만족한다.
-조연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다.
=사실 이 영화는 일종의 남성 판타지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리얼리티가 좋은 조연배우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송영창 선배를 제외하면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되도록 매체에 노출되지 않은 배우들과 하려 했다. 영화 속 만석이도 그렇고, 종석이도 그렇고. 또치 같은 경우도 그렇고.
-원빈이 창문을 깨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부터 저 밑에까지 카메라가 인물과 같이 떨어져 내리고 구르는 인상을 준다.
=그 장면은 숏을 잘게 쪼개서 나눠 찍은 다음 다시 한숏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느낌으로 붙인 거다. 복도에서 달려가는 장면에서 컷, 창문 깨고 나갈 때 컷, 와이어 달고 배우가 창밖으로 떨어질 때 촬영감독도 와이어 메고 같이 뛰어내리고 착지할 때 다시 컷. 그러고 나서 구르고 달려나갈 때 컷. 본 시리즈에도 비슷한 컷이 있는데 거기선 창문 깨고 끝이지만 우린 더 가보자 했다. 기술적으로 공을 많이 들이고 어렵게 만든 장면이라 그게 보인다면 기분이 좋다.
전작과 다른 것은 스타일
-일본시장을 얼마나 염두에 두었나.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원빈이 멋지게 나온다고 말할 수 있는,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원빈의 화보처럼 보인다고 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이 있다.
=제작 입장에서는 그런 걸 감안할 수도 있겠지만 연출자로서 그런 걸 안배하진 않았다. 그것과 관련지어서 어떻게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싫었을 것이다. 원빈에 관해서는… 그가 너무 멋지기 때문 아닐까. (웃음) 조명기사는 그를 찍을 때 자기 조명을 이렇게 잘 받아주는 배우가 정말 드물다며 감탄했고, 촬영감독은 뷰파인더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처럼 끙 앓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아직 두편이지만 전작인 <열혈남아>와 <아저씨>가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일관성도 있다. 가령, 어떤 감독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여배우와 남자 배우를 쌍으로 두는 것이 상업적으로도 좋은 조화라고 생각할 법한데, <열혈남아>나 <아저씨> 두 영화를 보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이미 지난 여자 혹은 아직 그때에 이르지 않은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들과 우연히 관계된 미숙하고 순진하지만 끝까지 가보는 사내라는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타일에 대해 말한다면 <열혈남아>와 <아저씨> 중 어느 쪽이 내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열혈남아>는 나문희, 설경구의 관계에 포인트가 있었고, 화이트 누아르라는 생소한 개념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좀더 어두운 쪽으로 풀자는 생각이었다. 어두운 공간, 내부, 세트 촬영, 스피디한 액션, 그런 쪽으로 컨셉을 잡았기 때문이지 내적으로 내가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여자 배우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 스스로 준비가 덜된 것인지도 모르고 체질상 그게 잘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두기봉의 <미션>을 보면 나를 대변하는 신이 있다. 킬러 동료들이 복도에서 종이를 말아서 툭툭 차며 서로 축구놀이를 한다. 이상하게 나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서로 다독이는 남자들을 볼 때 좀 울컥한다. 피땀흘린 남자, 그 다음에 오는 그의 카타르시스를 더 잘 느끼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