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뜨거운 두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지
2010-08-17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 포토 코멘터리

“최민식과 이병헌, 두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매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온 김지운 감독이 여섯 번째 작품 <악마를 보았다>를 끝내고 자신의 영화를 향해 던진 몸서리치는 소회다. 장경철(최민식)과 김수현(이병헌)의 끝없는 대결을 담으려 밤샘 촬영을 하면서 감독 또한 악마의 얼굴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촬영현장은 극단적으로 그 못지않은 즐거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김지운 감독이 최민식, 이병헌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직접 사진을 고르고 얘기를 덧붙여줬다.

1. 살인마, 최민식

경철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짐작할 수 없는 살인마다. 그리고 최민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상을 입게 만드는 배우다. 헤어스타일부터 의상, 그리고 표정에 이르기까지 그는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현재 최민식의 가장 뜨겁고도 멋진 얼굴이 영화 속에 담겼다.

2. 냉혈한, 이병헌

수현은 연쇄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뒤 이글이글 복수심에 불탄다. 경철과 달리 시종일관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만으로 직진하는 수현은 모노톤의 단색 위주로 갔다. 경철처럼 원색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단정하고 빈틈없는 대신 조그만 움직임 하나에도 긴장하게 된다.

3. 어라, 닮았네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함께하면서 좀더 가까워진 이병헌. 문득 이 사진을 보며 감독과 배우가 서로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4. 이게 바로 악마의 얼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도입부에서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고 인육을 먹고 개에게 던져주거나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어둔 장면 등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판단돼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한다”는 판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침을 흘리며 으르렁대는 개의 모습. <악마를 보았다>의 악마나 다름없는 이미지다.

5. 추격신의 비밀

<악마를 보았다>는 차량 이동 장면이 유난히 많다. 위험을 무릅쓰고 실감나는 화면을 담기 위해 복수심에 불타 질주하는 수현의 차 위에 스탭들이 올라가 촬영 중이다(위). 나 역시 뒷좌석에 끼어 앉아 모니터도 보고 지시를 내리고 했다(아래). 스탭들 모두 그렇게 무슨 불법밀입국자처럼 촬영한 장면들이 많다. <악마를 보았다>의 추격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6. 또 다른 살인마

귀곡 산장 같은 펜션 공간 세트에서 수현에게 쫓기는 경철이 또 다른 살인마 커플과 조우하게 된다. 그들은 저녁 만찬을 여는데 그 세 사람의 묘한 역학관계를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 경철과 또 다른 살인마 태주 역의 최무성(<세븐데이즈> <베스트셀러>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인데 원래 최명수라는 이름을 바꿨다)은 옛 친구 사이로, 과거 지존파 애들이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7.최민식 3종 세트

극단을 오가는 최민식 3종 세트. 최민식은 영화 속 캐릭터와 달리 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장난꾸러기다. 촬영장 세팅 중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최민식 옹의 애교 작렬. 그러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어찌 그리 금방 표정이 돌변하는지. 그리고 세트장에서 장총을 들고 시범을 보이고 있는 나를 뻘쭘하게 쳐다보는 최민식. 내가 시범을 보이니 더 혼란스럽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웃음) 마지막으로 최민식 옹은 가만히 앉아 고개만 들고 있어도 명불허전의 표정이 나온다.(맨 왼쪽부터)

8. 장경철이 가는 곳엔 늘 여자가 있다?

우리 영화에는 남자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죽은 약혼녀의 동생이자 수현의 처제인 세연(김윤서)은 희생당한 가족의 정서와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살인마 태주와 커플로 나오는 세정 역의 김인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윤채영은 간호사로 나오며 박서연은 펜션 세트의 피해자로 등장한다. 살인마 커플을 빼놓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 외에 여고생,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 등이 희생당하는 사람들 혹은 희생 직전에 위기를 모면하는 인물로 영화에 나온다. 그렇게 여자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장경철이 나타난다.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9. 죽여야 할 여자가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널 죽일 거거든?” 기본적으로 감독이 연기 디렉팅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훌륭한 선배가 얘기해주는 게 훨씬 더 이해가 빠를 때가 있다. 자기가 죽여야 할 여자들의 경우 최민식 선배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 훈수를 뒀다. (웃음) 상대 배우의 리액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만난 건 처음이라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10. 둘이서만 뭐하세요?

악마 장경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무서워서일까? 유독 이병헌과 단둘이 있는 장면이 많다. (웃음) 나는 현장에서 큰 모니터 화면보다는 화질이 뛰어난 작고 간편한 DV모니터를 선호하는 편이다. 엄청난 완벽주의자인 이병헌은 테이크마다 꼼꼼하게 자신의 모습을 체크하는데, 가끔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 최민식 선배는 어디 있었지?

11. 죽도록 얻어터진 뒤

소파에 누워 있는 최민식을 보고는 순간 더미(dummy)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 수현에게 무지하게 얻어맞은 다음 모든 에너지가 소진돼 뻗어버린 모습. 더미보다 더 더미처럼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정작 촬영할 때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12.콘티보다 물론 배우가 큰 힘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떠오른 새 아이디어를 정해진 콘티 사이로 어떻게 넣어야 할지 창의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어떤 컷을 빼면 오늘 촬영을 일찍 마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이다(웃음). 콘티를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현장 분위기와 서로 다른 캐릭터들을 잘 융화시킬지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때 믿음직한 배우의 존재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최민식과 이병헌이라는 뜨거운 두 남자와 함께 <악마를 보았다>를 완성한 건 한없는 고통이자 무한한 즐거움이었다.

앞으로 서른 시간 넘게 촬영할 것을 모르고 '쫑'사진을 찍고 있는 스탭들. 모두 감사합니다.

766호 씨네21 잡지를 통해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지운 스틸 이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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