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진부하다고? 이건 옳은 선택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
-왜 22년 만에 속편을 만든 건가.
=지금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얼마나 이상한가. 도대체 골드만 삭스의 이윤은 어디서 만들어진 건가. 투자은행(신규 증권의 발행에 의해 장기자금을 조달하려는 자금의 수요자와 자금의 공급자인 투자자를 연결시키는 중개기능을 주요 업무로 하는 미국의 증권인수업자들-편집자)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돕는다고 우리가 믿도록 만든 건 레이건 시대부터였다. 결과를 한번 쳐다보시라. 영화를 만들면서는 샤이어 라버프와 계속 싸웠다. 이 친구는 꽤 우파적인 경제적 철학을 갖고 있어서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웃음)
-리얼리스틱한 경제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번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나는 다큐멘터리적인 감독인 동시에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은 해피엔딩의 가치를 믿어야 한다. 이 영화는 사랑과 탐욕에 대한 이야기다. 게코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결국 사랑을 택한다. 진부하다고? 진부할지라도 옳은 선택이다.
-공항에서 <뉴스위크>를 보니 표지 제목이 ‘유로의 종말’이더라. 몇년 전에는 다들 ‘달러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한국 같은 나라는 끊임없이 그 사이에서 저글링을 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자본주의가 종말로 치닫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나.
=한국이란 국가는 살아 있는 본보기다. 전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가 지금은 8번째로 거대한 경제국이 되지 않았나. 심지어 절반의 국가밖에 없는데! (웃음) 내 아내도 한국인이라서 잘 알고 있다. 만약 서구사회가 한국과 같은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면 금방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거다.
-그런가. (웃음) 여하튼 자본주의의 종말은 그럼?
=이렇게만 말하겠다. 나는 제임스 카메론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동의한다. (웃음) <아바타>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반자본주의 영화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준다. (웃음)
도덕적 모호함을 지닌 재밌는 캐릭터
고든 게코 역의 마이클 더글러스
-고든 게코를 좋아하나.
=좋아한다. 그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인물이며 비즈니스의 대가다. 악당일지라도 대단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나.
=밤과 낮이다. 양면성이 있잖나. 22년 전 고든 게코는 정상에 올랐다가 추락했다. 그래서 그가 변했는가? 이번 영화는 고든 게코의 도덕적 모호함을 보여준다. 그게 아주 재미있다.
-고든 게코와 당신을 비교해본다면 당신의 성공은 어디서 온 것 같나.
=좋은 영화들? 혹은 이 지구에서 선량하고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웃음) 당신 축구 좋아하나? 나는 지난 30년간 수많은 골을 기록했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꽤 성공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제 겨우 두번 결혼했다. (할리우드 배우로서) 성공적이지 않나? 자식이 세명 있는데 골칫덩어리 아들(마약소지로 감옥에 들어간 카메론 더글러스)를 제외하면 다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핵군축운동을 위한 유엔 평화대사로 일하는 중이다. 이만하면 성공적이지 않은가. (웃음)
-이번 영화는 고든 게코보다는 샤이어 라버프가 연기하는 제이콥 무어의 영화인 듯하다.
=첫 영화에서도 게코는 딱 25분 나온다. 샤이어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를 정말로 존중한다. 촬영을 할 때마다 그는 벌벌 떨면서 죽을 만큼 두려워했다. 그게 샤이어라는 배우의 힘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샤이어 라버프와 캐리 멀리건이라는 두 젊은 연인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에 게코가 돈보다 가족을 택하는 데 동의하나.
=당신 내 아내인 캐서린 제타 존스 본 적이 있나? (다들 폭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니까.
난 태어나자마자 빚을 등에 업은 세대다
제이콥 무어 역의 샤이어 라버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끝나고 이 영화에 뛰어들었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말해달라.
=<트랜스포머> 속편은… 솔직히 별로였다. 거친 액션이 많았지만 심장이 사라진 것 같은 영화였다. 우리 모두 뭔가에 발목을 잡혔던 것 같다. 더 거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가 지나치게 거대하기만 한 영화를 만들었다. 3편은 더 나아질 거다. 많은 캐릭터의 죽음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심지어 인간들도 많이 죽는다. 이번에는 디셉티콘들이 인간을 노리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정신나간 액션영화가 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실패할 거다.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촬영은 어땠나.
=실패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처럼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끼던 유산을 계속해서 망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짓(오랜만에 만들어지는 명작의 후속작을 실패작으로 만드는 것)을 두번 연속으로 한다면 내 경력은 그걸로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내 자신을 위한 전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나.
=관객은 똑똑하다.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면 관객은 다음 영화를 신뢰하지 않는다. 해리슨 포드와 나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여러 번 나눴고, 그 역시 영화에 크게 만족하지 못했다. 영화가 모두에게 환대받지 못했다면 이유가 있다. 우리는 관객이 원하는 걸 잘못 이해했던 것 같다.
-스필버그가 이 인터뷰를 보게 될 텐데.
=인터뷰가 나가면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받게 될 거다. 그래도 이런 말은 꼭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스필버그를 사랑한다. 천재이자 나에게 삶을 안겨준 남자다. 절대로 불경을 저지르고 싶진 않다. 그는 엄청난 영화들을 만들어왔고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한편 때문에 상처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망친 건 어쩔 수 없이, 망친 거다.
-이 영화로 경제를 좀더 잘 이해하게 됐나.
=만약 우리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트리플A 등급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진짜로 어떤 놈들이 모기지(Mortgage)를 가지고 장난치는지를 알았더라면, 경제의 투명성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무디스의 신용등급은 정말 바보 같다. 그건 마치 올리버 스톤이 좋은 리뷰를 써달라며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독성있는 개똥을 판매하는 은행들은, 그들의 똥을 위해 무디스에 돈을 지불할 뿐이다. 끔찍하지 않나. 내 세대를 한번 생각해보라.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8천달러 가까이 빚을 진다. 보통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직업도 없이 7만5천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이게 바로 내 세대다. 무시무시한 지옥이다.
미국 악센트, 정말 너무 무서워
위니 게코 역의 캐리 멀리건
-<언 애듀케이션>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메릴 스트립 같은 사람과 오스카 후보에 올랐을 때 기분이 희한했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런던에 집이 있지만 LA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도 엄청 많아졌겠다.
=오히려 덜 일하게 됐다. 런던에서 연기할 때는 연극이나 TV시리즈를 끊임없이 했다. 지금은 영화 사이사이에 좋은 대본을 기다리면서 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역할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봐야하는 위치의 배우다. <언 애듀케이션> 이후 열일곱에 약간 지적허영이 있는 여자아이 역할이 주로 들어오긴 하는데…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을 듯해서 망설이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미국인을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게 있나.
=올리버 스톤은 날더러 계속 “넌 너무 영국적이야!”라고 했다. (웃음) 미국 사람들이 싸우는 방식을 알고 싶다면 풋볼 경기를 보러 가라더라니까. 하지만 이 캐릭터는 미국인치고는 아주 성격이 차분한 여자여서 괜찮았다. 다만, 미국 악센트로 바꾸는 건 힘들었다. 나는 악센트가 너무 무섭다.
-이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일하게 됐는데, 게임 플랜은 뭔가.
=게임 플랜? 이젠 할리우드를 정복하겠어! 이런 생각은 없다. 계속 런던에서도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LA에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배우를 위한 좋은 역할들이 런던보다 많은 장소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