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상만] 팔방미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기
2010-10-2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최성열
<심야의 FM> 김상만 감독

<심야의 FM>에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DJ인 고선영(수애)이 마지막 생방송을 하는 도중, 자신의 집에 침입하여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자신을 협박하는 한동수(유지태)와 팽팽한 설전을 벌일 때만 해도 이 영화는 이렇게 끝까지 가나 싶다. 그렇진 않다. 카메라는 스튜디오를 벗어나더니 공간에 따라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잡고 음악으로는 스릴러적 정서를 은근히 고조시킨다. 공간 미술과 음악의 비중이 높은 영화인데 알고 보니 미술감독과 음악감독 경력이 있는 김상만 감독의 영화다.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홍대 인디신에서는 ‘허벅지 밴드’와 ‘슈퍼스트링’의 베이시스트로 통하고 포스터 디자인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에는 미술감독에 음악감독까지 한 다음 내친김에 영화감독까지 해냈다. <걸스카우트>가 첫 번째 연출작, 이번 영화 <심야의 FM>이 두 번째다. 그를 만나 두 번째 연출작에 대한 변을 들었다.

-시각디자인이 전공인데 영화와 가깝기도 하지만 별개라면 또 별개인 분야다. 어떻게 영화쪽 일을 하게 됐나.
=포스터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접속>의 신보경 미술감독이 학교 동기여서 <접속> 포스터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말하자면 연줄인 거지. (웃음) 명필름에서 <조용한 가족>까지 하다가 미술감독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해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공동경비구역 JSA> <해피엔드> 등을 했다. 명필름에서 <해피엔드> 끝날 때쯤에는 연출을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 <공동경비구역 JSA> 때는 시나리오도 한편 써봤는데 SF 스릴러 장르였다. 하지만 당시 환경에서 만들기는 어려운 영화였기 때문에 접었다. 그래서 한동안 포스터 디자인에 다시 전념하고 있었는데 최호 감독님이 미술감독을 해달라고 하시더라. 처음에는 좀 망설였다. 그런데 음악감독까지 하라기에, 둘 다 했다. (웃음) 그즈음부터 연출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그 다음에 <걸스카우트>를 하게 됐다.

-심재명 대표나 이은 감독이 그냥 좀 똑똑해 보인다고 연출까지 권유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감독과 콘티를 짜면서 시나리오를 해석하는 과정을 눈여겨보신 것 같고 그때 마음에 드는 점을 발견하셨던 것 같다.

-그때 써놨던 SF 스릴러는 다시 할 마음이 있나.
=시의성이 필요한 것이어서 안될 것 같다. 당시에 근미래로 잡았던 배경이 이미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만든다고 해도 구태의연할 거다.

-미술이나 음악쪽으로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쪽에 관해서는 자신만의 해석이 있을 것 같다.
=실무자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스탭들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거다. 물론 스탭들은 더 피곤할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더 편했을 수도 있고. (웃음) 예를 들면 고선영이 일하는 라디오 스튜디오 공간은 외롭고 폐쇄적인 느낌이 필요했다. 세트 안에서의 조명 세팅에 신경 썼고 핸드헬드를 많이 했다. 선영의 집에서는 인물의 동선을 미리 계산해놓은 게 좀 있어서 그게 잘 나올 수 있게 신경 써보자고 했다. 음악은 큰 틀만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장르영화 방식에 집중하자,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변형화된 할리우드 음악을 추구하자, 하는 거였다.

-<심야의 FM> 두 주인공 중 한명인 한동수도 비슷한 말을 하는데 DJ는 많은 영화들에서 주인공으로 다뤄졌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영화사쪽이 이미 기획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설정은 분리된 두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이 만나지 않고, 자신의 공간을 떠나서도 안되고, 떠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장르적 스릴러로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걸 받아든 나로서는 스릴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면 싶었던 것 같다. 영화음악실이라는 프로그램 자체에서 연상되는 운치, 고즈넉함 같은 걸 스릴러적인 상황이 끼어들어 깨뜨리면 그 충격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가게 됐다. 사실 라디오 프로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시사 프로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스릴러적인 상황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깨트리는 것으로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잘 맞았다.

-주인공 고선영이 라디오 스튜디오를 벗어날 때 이 영화의 본격적인 야심이 느껴진다.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끝내는 영화들도 있다. 장르의 대가라면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폰부스>처럼. 그런 장점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좀 답답하다는 느낌도 있어서 공간을 좀 확장해보려고 했던 거다.

-그런 경우는 어디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졌을 것이다.
=스릴러영화에서 왜 꼭 라스트신은 폐공장이냐, 하는 질문들 있지 않나. (웃음) 그런 전형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영화의 분위기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금의 공간들을 선택했다. 두루 고민한 결과다. 도심에서 가까워야 했고 장르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공간들을 택했다.

-한편으론 음악 선곡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와 직결되기 때문에 음악 사용 역시 중요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 완고에 써놨던 선곡을 다 사용하진 못했다. 젊은 분위기의 음악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그런 음악들은 내가 생각하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얼마간 한계가 있었다. 관객이 많이 알고 있는 음악을 쓰되 고전 영화의 음악 컨셉을 많이 가져왔다.

-예를 든다면.
=한동수가 고선영에게 첫곡으로 <볼륨을 높여라>에 삽입된 <에브리보디 노즈>를 요구한다. 이 영화는 해적방송을 하는 DJ가 세상의 부조리를 성토하고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그걸 듣고 각성하게 하는 내용이지 않은가. 고선영이 던지는 메시지를 듣고 누군가 그런 식으로 따를 수도 있다는 내용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노래 내용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는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거고.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다른 버전으로 된 곡이어서 상황적으로도 스릴러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물에 대해 조금 단순하게 물어보고 싶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먼저인가, <심야의 FM>의 한동수가 먼저 인가.
=<택시 드라이버>가 먼저다. 고전 인물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리고 스토커라는 요소도 함께 가져오고자 했다. <택시 드라이버>는 주인공이 택시의 차창을 통해서 바라본 세계를 왜곡되게 해석한다는 점에서 한동수의 캐릭터와 닿는 지점이 있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는 영화사적으로 워낙 정전에 속하는 인물이라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은연중 비교하게 된다. 한동수는 누구일까.
=고선영이 미디어를 대변하는 존재라면 한동수는 거기에 영향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겪어서 연쇄살인마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건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았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됐고 그가 미디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영화라는 매체를 나르시시즘적으로 모방하는 그런 상황을 더 그리고 싶었다. 의상도 그렇고 나르시시스트같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는 쪽이다.

-한동수의 첫 등장을 보면 서 있는 자세나 복장으로 인해 ‘크다, 무섭다는 인상을 준다.
=전사를 보여주지 않는 대신 그가 등장할 때 관객에게 충분히 위압감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표정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유지태씨가 어떤 영화에서든 말랑말랑한 느낌처럼 말해지는데 실은 화면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 강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 첫 장면의 이미지가 중요했다. 관객에게 등장할 때 주는 위압감 말이다. 고선영의 동생인 아영이 한동수를 먼저 발견하게 할까, 관객이 그를 먼저 발견하게 할까 고민했는데 관객이 먼저 발견하게 하고 싶었다.

-유지태의 존재감에 대한 관심을 말했다. 수애는 어떠했나.
=일단 고선영은 지금은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 DJ이고 과거엔 뉴스 앵커였으니 좋은 목소리를 가졌을 것이고 또 가냘프지만 강단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애씨는 물론 예전부터 강한 역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그게 외부로 표출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안으로 삭이는 강한 캐릭터였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폭발력이 있다.

-누가 “스마트 폰 없었으면 이 영화 어쩔 뻔했냐”고 하던데. (웃음) 실제로 성사가 안될 장면들이 있다.
=화상통화라는 점이 중요했다. 어떤 스마트폰이든 화상통화가 가능한 일반 전화기에 비해 월등하게 좋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었다. 고선영이 유명인이니만큼 많은 스토커들에게서 이미 전화쯤이야 받았을 수 있기 때문에 그보다는 눈으로 보아야만 강한 반응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분리된 공간에서 자극을 주고받는 것이니만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화상통화의 특징이 통화자가 화면을 직접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렌즈를 배우가 직접 볼 때 관객이 느끼는 어떤 당혹감도 훨씬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단순한 소스가 아니라 풀 프레임으로 많이 쓰고 싶었다. 특유의 질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잔인한 장면에서는 스너프 필름(살인, 강간 등 실제 일어난 범죄 행위를 찍은 화면) 느낌을 줄까봐 의도적으로 CG를 이용하여 액정의 느낌을 중화했다.

-미디어에 대한 지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영화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부분이었나.
=미디어를 비판한다기보다는 미디어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나에 초점이 있긴 하다. 악의없는 멘트조차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하는 청취자의 방식일 수도 있고. 정보들이 넘쳐나고 발화자와 수용자가 뒤섞이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용을 왜곡해서 수용하게 되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영화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번져가는 이야기 구조다. 장소가 시퀀스별로 확연히 나뉘면서 일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고선영이 한 차례 기절을 하고 그녀에 대한 상황을 주변 인물들이 알았을 때,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방송 사고를 낼 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조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인공 고선영의 변화무쌍함에도 관련이 있는 것이고. 편리한 발상처럼 보일까봐 고민되는 지점이었지만 상업영화의 선택으로서 스케일을 키우거나 인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외부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선택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법을 장르영화에 모범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다. 캐릭터의 제시, 상황 설정 등을 통해 충실하게 매듭짓자는 생각이었다. 전작 <걸스카우트>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조역들을 기능적으로만 쓴 걸 후회했다. 멘토, 방해자, 조력자 등으로 나누되 편의적으로만 쓰지 말고 때론 역할에 변화를 줘보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정점이다.
=이 영화는 남녀의 대결이다. 역시 캐릭터가 중요한 것 같다. 주인공 고선영이 아나운서로서 성장하고 몰락하고 DJ로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말의 논리에 의해서였는데, 그럼 이렇게 위기에 처했을 때는 뭘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을 단순히 액션 시퀀스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 영화의 엔딩은 전적으로 고선영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다 만들고 난 다음의 지금 느낌은 어떠한가.
=<걸스카우트>에서는 다소 계산된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던 것 같다. 촬영감독의 성향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변화를 주고 싶어서 콘티를 그리지 말고 가보자고 했다. 현장에서의 가변성에서 배운 게 많다. 내가 미술쪽 전공이다 보니 배우보다는 미장센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반성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열기를 느끼며 거기에서 많은 걸 가져올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여러 일을 병행할 생각인가.
=이미 많은 것을 병행하고 있긴 한데, 이젠 연출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론되고 있는 아이템은 몇 가지가 있다. 장르영화의 성격이 있는 영화들이다. 스릴러, SF, 액션. 지금 이후의 영화도 그런 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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