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웨스턴을 살았던 사나이
2010-11-29
글 : 홍성남 (평론가)
존 포드 걸작선, 11월30일부터 12월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철마>

<셰인>(1953)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조지 스티븐스는 모뉴먼트 밸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영화를 찍을 것에 대해 고려했던 그는 그 생각을 접고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건 온통 존 포드의 숏들뿐이더라.” 심지어 ‘포드 포인트’라 이름 붙은 공간마저 있다는 모뉴먼트 밸리는 그야말로 존 포드의 세계였나보다.

이쯤이면 우리는 거의 자연스럽게 존 포드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정의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 웨스턴을 만든 영화감독이었고, 광대한 풍경을 이미지로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었으며, 말보다는 액션에 영화의 본질이 있다고 믿었던 감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을 세밀한 관심을 갖고 본 관객이라면 사정이 좀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요컨대 존 포드는 광활한 서사시적 공간과 개인의 드라마를 융합할 줄 알았고, 단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밀한 감정을 불어넣을 줄 알았으며, 넓게 펼쳐진 무대에서 고독과 상실을 사유한 영화감독이었다. 그에 대한 최근의 평가가 지적하듯 이 ‘미국영화의 계관시인’은 자기 영화들 속에서 풍부한 미적 복잡성을 구현해낸 인물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존 포드의 영화를 계속해서 보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세계를 다시금 음미하고 탐구할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11월30일부터 12월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총 7편의 존 포드 영화를 상영하는 ‘존 포드 걸작선’이 열린다.

존 포드에 대한 스콧 아이만의 저서에 ‘포드와 그의 협력자들은 웨스턴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웨스턴을 살고 있었다’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포드의 초기작 <철마>(1924)를 거론하며 쓴 것이었다. 시에라네바다의 강풍이 불고 추운 촬영지에서 영화 제작진들은 갖은 고생을 감내하고 심지어는 그들만의 세계를 ‘개척’하며 영화를 찍었던 것이다. 이 대열의 지휘자였던 포드는 출중한 (직관적) 지도력을 발휘해 그의 첫 번째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을 내놓는다. 대륙횡단 철로 건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인간 드라마에서, 광대한 공간과 그 안에서 역경과 대면하고 결국에는 영웅이 되는 인물 같은 에픽의 측면은 섬세하게 다뤄진 인물과 스토리 구성과의 융합을 보여준다.

<황야의 결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두 가지는 달리는 말과 왈츠를 추는 커플이다”라고 포드는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의 적절한 영화적 구현이 <황야의 결투>(1946)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의 결투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교회 건물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일 거다. 여기서 우리는 <철마>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문명’의 도래와 건설이라는 주제상의 공명을 듣게 된다. <황야의 결투>는 깨끗하게 면도를 한 와이어트 어프가 보안관인 마을에 학교와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하지만 이렇게 정색하지 않고서 앞서 말한 춤추는 장면을 보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황야의 결투>는 시정(詩情)이 깃들어 있는 웨스턴이다. 예컨대 상당 부분을 거대한 하늘로 채운 화면이라든지 보안관 사무실 밖에서 와이어트가 기둥에 다리를 대고 앉아 있는 그 유명한 장면은 <황야의 결투>가 아름다운 시적 웨스턴임을 증명하는 다른 실례들이다.

상영작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주목을 요하는 작품은 <굽이도는 증기선>(1935)이다. 포드는 자신의 장점들 가운데 하나로 유머를 꼽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의 코미디 감각이 풍성하게 살아 있고 더불어 서정성도 부여된 작품이다. 포드가 서부의 사나이라고 불렀던 배우 윌 로저스의 존재도 놓칠 수 없다. 이 밖에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그린 <모호크족의 북소리>(1939), 대공황기의 미국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린 <분노의 포도>(1940), 가족의 해체와 낙원의 상실에 대한 감동적인 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서부의 소멸에 대한 애가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가 포드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탐구하게 할 또 다른 상영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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