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의 밀도가 높아지는 시간
2010-12-01
글 : 송경원
2010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12월2일부터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예술영화란 무엇인가.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술영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각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몇몇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실체는 가늠하기 힘들어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래도 아직 도통 모르겠다면 몸으로 체험해볼 수밖에. 12월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리는 개관 10주년 기념 ‘2010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실험적이고 낯선 작품들이 아닌 가족, 사랑, 음악 같은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부터 거장들의 흥미로운 신작까지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010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는 일상의 지루함에 질린 인물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환상을 좇는 과정을 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연극적인 밀도를 더해 유려하게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거장의 재능이 유난히 빛난 작품은 아닐지라도 여전하다는 위안을 받기엔 충분하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감독이자 배우인 자크 타티의 유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뱅 쇼메 감독의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역시 거장의 향기가 짙게 배여 있다. 1950년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가난한 마술사와 그의 마술을 믿는 한 여자를 다룬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웃음과 눈물을 넘나들며 자크 타티의 감수성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락앤롤 보트>

거장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의 다양한 영화들 역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코파카바나>는 가깝고도 먼 모녀 관계라는 익숙한 소재를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나가는 프랑스영화다. 철없는 엄마와 어른스러운 딸의 여행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살려나가는 감성어린 시선이 돋보인다. 반면 캐나다영화 <그을린 사랑>은 어머니의 유언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중동을 찾아가는 쌍둥이 남매의 여정과 충격적 진실을 묵직하고 진지하게 풀어낸다. <아이 엠 샘>의 다큐멘터리 버전을 연상시키는 대만의 <너 없인 살 수 없어>도 있다. 2009년 대만금마장영화제를 휩쓴 이 영화는 법적인 이유로 딸과 헤어져야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딸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뭉클하게 그리면서도 냉철한 현실비판 감각 또한 잃지 않는다. <클라라>나 <락앤롤 보트>처럼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도 눈길을 끈다. 천재 작곡가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와 그녀가 사랑한 또 한 사람의 천재 음악가 브람스의 이야기를 다룬 <클라라>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만큼 우아한 화면을 펼쳐 보인다. 그에 비해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락앤롤 보트>는 1960년대 로큰롤 방송을 금지했던 영국 정부에 맞서 해적 방송을 했던 디제이 그룹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록 특유의 저항정신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2010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어렵고 딱딱한 예술지향의 실험영화가 아니다. 충분히 상업적이고 재미있는 이 영화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좀처럼 국내 일반극장에서 상영 기회를 갖기 힘들다는 거다. 이것은 멀티플렉스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에서 10년을 버텨온 예술영화상영관 씨네큐브의 기억 혹은 선택이다. 오늘날 우리가 왜, 어떤 영화를 예술영화라고 부르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꼭 한번쯤 가볼 것을 권한다. 물론 씨네큐브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저 재미있고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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