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도쿄] <고백> <악인>에서 희망을 보다
2010-12-08
글 : 정재혁
2010년 일본영화계 점검
<악인>

한해를 한달여 남겨놓고 일본의 각종 언론에서 2010년 영화계를 정리하는 기사를 속속 내놓고 있다. <키네마준보> 12월 상순호는 연달아 히트를 기록하는 도호의 2010년 영화를 정리했고, <영화예술> 433호는 ‘2010년 일본영화 전망’이란 특집기사에서 감독, 프로듀서, 평론가의 대담을 실었다. 도호의 독주, TV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벤트 무비’의 예견된 흥행, 방송사, 출판사가 중심이 된 제작위원회 시스템 등. 사실 최근 수년간 별다를 일 없이 따분한 일본영화계지만 올해 언론은 몇몇 작품을 예로 들어 2010년을 새로운 일본영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조심스레 전망하고 있다.

‘나쁜 결말’ 등 새로운 방식 시도

가장 주목하는 영화가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의 <고백>과 이상일 감독의 <악인>이다. 도호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겡키가 프로듀싱한 이 두 작품은 우선 TV방송사가 제작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새롭다. 일본의 대다수 메이저영화가 TV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제작위원회를 꾸려 완성되는 것과 달리 <고백>과 <악인>은 원작 소설의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제작 형태였다. 또 두 영화는 일본 대중영화에서 찾기 힘든 ‘나쁜 결말’을 취했음에도 흥행에서 크게 성공했다.

일부에선 도호의 새로운 시도를 <노다메 칸타빌레> <라이어 게임>의 영화판 등 올해 초 개봉한 ‘이벤트 무비’의 예상 외 부진 탓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TV드라마로 크게 성공하며 화제를 모았던 <노다메 칸타빌레>의 영화판 흥행성적은 40억엔을 조금 넘는 숫자. 배급사인 도호는 애초 70억엔을 목표치로 삼았었다. <고쿠센> 시리즈, <루키즈> 시리즈, <파트너> 시리즈 등 흥행 보증수표와 같았던 TV의 영화화가 하향 기세를 보이자 새로운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일본에서 영화 팬은 절반 이상이 40대다.” “90년대 이후 생긴 새로운 영화 팬은 없다.” <영화예술> 433호 대담에서 나온 말들이다. 일본에선 최근 영화 흥행의 흐름을 트렌드로 정리한다. 더이상 영화 팬을 위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고, 흥행에 성공하지도 못하며, 그저 유행을 좇은 영화들이 나와 흥행한다는 말이다. ‘이벤트 무비’의 흥행도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한 팬들의 극장 관람이 아닌 유행을 따라가는 대중의 군중 심리 때문이라 분석한다. 영화평론가 데라와키 겐은 <고백>과 <악인>의 흥행도 그저 새로운 트렌드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 뿐이라 말했다.

유행을 좇는 추세 덕인지 일본영화는 최근 수년간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10월까지 일본의 메이저 3대 배급사의 수익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3배나 많았다. TV방송사 중심의, 도호 독주 체제가 점점 굳어지고 있지만 <고백> <악인>처럼 새로운 방식의 영화도 시도되고 있다. 반면 아트·인디영화쪽 사정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3관을 유지하던 시부야의 예술영화 전용관 시네마라이즈는 10월 1관으로 축소 리뉴얼했고, 고전영화 중심으로 극장을 운영하던 시부야의 안젤리카는 운영자 공고를 낸 뒤 적임자를 찾지 못할 경우 폐업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럼에도 몇몇 인디영화는 여전히 일본영화가 가진 저력을 느끼게 한다. 2010년 개봉한 이즈쓰 가즈유키의 <히어로 쇼>는 젊음에 대한 매우 잔혹한 보고서다. 현실과 직면한 젊음의 좌충우돌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제제 다카히사의 <헤븐즈 스토리> 역시 수작이다. 무려 4시간28분이 넘는 상영시간의 이 영화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과 가해자가 10년에 걸쳐 얽히는 과정을 9장에 담아낸 작품이다. 구마키리 가쓰요시 감독의 신작 <가이탄시 여경> 역시 호평을 받고 있다. 11월2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사토 야스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영화예술>에 “영화란 장르로 완성해낸 진짜 예술”이란 평을 들었다.

<헤븐즈 스토리> 인디영화의 힘 보여줘

제작사 파라다이스 카페가 <카모메 식당> 이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장소와 사람’ 프로젝트도 인디영화쪽에서 인상적이다. 파라다이스 카페는 <카모메 식당> <안경> <풀>에 이어 2010년엔 신작 <마더 워터>를 만들었다. 필리핀, 요론섬, 타이에 이어 <마더 워터>의 무대는 교토. 특정한 연도없이 모인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며 일종의 커뮤니티십을 만들어가는 이 영화들은 ‘장소와 사람’ 프로젝트를 넘어 최근 일본 인디영화의 한 흐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12월 일본에선 기대작 두편을 남겨두고 있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SPACE BATTLESHIP 야마토>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르웨이의 숲>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도호 작품. 1강 체제를 굳히고 있는 도호는 2010년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사의 가계부> <오오쿠> 등 시대극에 중점을 두고 있는 쇼치쿠는 2010년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또한 도에이의 애니메이션들은 여전히 가족 관객에게 환영을 받을까. 뻔한 흥행과 비범한 실패? 비범한 흥행과 뻔한 실패? 일본영화의 2011년을 점쳐볼 힌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