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가슴을 흔드는 천상의 하모니 <하쿠나 마타타- 지라니 이야기>
2010-12-08
글 : 이영진

남미에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가 있다면, 아프리카엔 기적의 합창단 지라니가 있다. 2005년 구호 목적으로 케냐를 방문한 임태종 목사는 나이로비 시 외곽에 있는 고르고초 마을에 들렀다가 쓰레기 산에서 먹을 것을 찾는 아사 직전의 아이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생존을 위한 구호만으로는 고르고초 아이들의 암울하고 처참한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임 목사는 이듬해 지라니합창단을 결성하고, 고르고초의 아이들은 허름하고 비좁은 연습실에서 단 한번도 꿈꾸지 못했던 내일을 노래한다.

비옥한 토양에서의 풍요로운 결실을 기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불모의 땅이야말로 기적의 전제다. 기본 음계를 모를뿐더러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헐벗은 고르고초의 아이들이 전세계 순회공연에 나서는 과정을 담은 전반부는 기적의 증거다. “올해도 살아서 미국 공연에 가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노래는 죽음의 공포를 누를 수 있는 생의 의지다. 악취와 매연을 뿜어내는 거대한 쓰레기 산에서 지라니합창단의 <하쿠나 마타타>(아무 문제 없어요)가 울려퍼질 때 기적은 이미 당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라니합창단의 미국 공연을 보여주면서 카메라는 기적 이면의 불협화음도 들춘다. 지라니합창단에 쏟아지는 갈채가 높아질수록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선한 의지 또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씨앗에서 꽃을 보고 싶어 했던” 조급함에 대한 반성 앞에서야 그들은 기적 아닌 현실로 회귀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점이나 신앙의 문제로 서둘러 마무리하는 식의 구성은 아쉽지만, 아이들이 들려주는 천상의 하모니는 충분히 가슴을 흔들고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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