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선균] 뭘 해도 사랑하게 되는 남자
2010-12-13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쩨쩨한 로맨스>의 이선균

“저, 그렇게 로맨틱한 남자 아니에요.”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입버릇처럼 이 말을 내뱉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던 이라면 알 것이다. 이선균이 슈트와 구두보다는 티셔츠와 운동화를 편하게 여기고, 달달한 눈웃음보다 조금은 무뚝뚝해 보이는 뚱한 표정을 더 자주 짓는다는 걸. 그러나 이러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선균은 사랑스러운 남자다. 주방에서 “이 굼벵이 시키들아!”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도(드라마 <파스타>), 짝사랑하는 여자의 집 앞에서 소주에 오징어를 뜯으며 찌질하게 밤을 새워도(영화 <옥희의 영화>), 사랑스러운 남자는 여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이선균은 보여준다. 그러니 그가 폭탄 머리에 쩨쩨한 심성의 만화가를 연기한다 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선균이라는 깔대기를 거치고 나면 결국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되리란 걸 아니까.

<쩨쩨한 로맨스>에서 이선균은 억대 상금이 걸린 성인만화 공모전에 입상하기 위해 섹스칼럼니스트 다림(최강희)을 스토리 작가로 고용하는 만화가 정배를 연기한다. 중학생 시절 서양화를 전공한 누나의 화실에서 커피 마시기를 즐겼고, 비오는 날이면 사남매가 일렬로 모여앉아 ‘서열대로’ 만화책을 탐독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이선균에게 정배 캐릭터는 정서적으로 가까운 인물이었다. 김정훈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정배의 모습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는 시나리오상의 “강남 모델같이” 잘생긴 정배의 모습 대신 “홍대 근처에서 추리닝 입고 어슬렁거리며 껍데기 먹으러 다니는” 모습을 제안했다. 그렇게 머릿속에 구상한 캐릭터는 <베가본드> 미야모토 무사시의 헤어스타일에 동대문표 캐주얼옷을 입은 정배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남 모델을 홍대 빈티지 청년으로 바꿔놓았듯, 이선균은 <쩨쩨한 로맨스>의 현장에서 자주 ‘시니컬한 둘째 아들’ 역할을 자청했다. 달리 말하자면 감독을 자주 귀찮게 했다는 뜻이다. 다림의 톡톡 튀는 모습과 다양한 개인기, 그리고 그녀에 반응하는 정배의 리액션이 <쩨쩨한 로맨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이선균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에선 가차없이 ‘스톱’을 외쳤다. “표현하는 장면은 다림이가 훨씬 많은데, 상황에 대해 의견을 자주 묻는 사람은 나였다. 아마 감독님은 내가 짜증났을 수도 있다. 그냥 리액션만 하면 되는데 뭐라고뭐라고 만날 얘기하니까. (웃음) 그래도 디테일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하는 게 배우의 역할인 것 같다. 리액션에도 디테일이 필요하다.” 다림의 커피에 몰래 침을 뱉는 장면이나 첫 동침에 당황한 다림의 귓가에 공기를 불어넣는 장면은 모두 이선균의 ‘둘째 아들’ 역할 덕에 새롭게 생겨난 설정들이다. <쩨쩨한 로맨스>의 가장 큰 미덕인 다림과 정배의 ‘핑퐁 연기’가 단순히 최강희와 이선균이란 배우의 높은 궁합 지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숨돌릴 틈도 없이 블랙코미디 <체포왕>(임찬익 연출)의 촬영에 들어간 이선균은 요즘 마음이 다급하고, 예민해졌다.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봤을 때 그림이 잘 안 떠오르면 으레 그런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더 해야겠더라. <파스타>가 나에게 꼭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 많이 하며 찍다보면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온다.” 디선가 잔뜩 예민해진 그를 목격하더라도 못 본 척해야겠다. 그건 이선균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스타일리스트 허지은·헤어 허원미·메이크업 안희정·의상협찬 A.P.C, 조르지오 아르마니, 자라, 샌프란시스코, 컨버스, 샌프란시스코, 자라, 포니, 띠어리, 카이아크만, 블랙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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