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나우]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제작자는 넓게 본다
2010-12-17
글 :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란의 거장들이 일본에서 신작을 만드는 이유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왼쪽)와 아미르 나데리(오른쪽).

지난 11월20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1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아미르 나데리가 참석하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증명서> 초청 때문에, 아미르 나데리 감독은 올해 도쿄필름엑스영화제가 새로 시작하는 ‘넥스트 마스터스’ 프로그램의 강연 때문에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하지만 친구 사이기도 한 이 두 감독은 영화제 참가 외에 또 다른 방문 목적이 있었다. 차기작 제작과 관련된 일이 그것이다.

지난 20여년간 가장 창의적인 영화의 산실이었던 이란영화계는 최근 암흑기를 맞고 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프랑스로 망명하였고, 반국가적인 영화를 기획하였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던 자파르 파나히는 풀려났지만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며, 바흐만 고바디 역시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고 있다. 이란영화계의 가장 큰 어른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혈기왕성한 젊은 감독들의 대정부 강경발언을 달래가며 비교적 온건하게 최근의 사태에 대처해왔다. 그리고 올해 <증명서>를 완성했다. 줄리엣 비노쉬와 이미 전작 <쉬린>에서 함께 일한 바 있고, 제작자인 프랑스의 MK2 사장 마랭 카르미츠는 오랫동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배급해왔었다. 때문에 이들의 작업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증명서>는 그가 해외에서 처음으로 찍은 장편 극영화이며(이탈리아 토스카나), 그의 다음 작품은 당연히 이란에서 다시 찍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보다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있으며, 차기작은 일본에서 찍기로 하였다. 이것이 그가 도쿄필름엑스영화제에 참가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영화제 기간 중 그는 유로 스페이스와 계속 미팅을 가졌다. 유로 스페이스는 일본의 유서 깊은 아트하우스 시네마이며, 제작과 배급도 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증명서>에 이어 차기작도 해외에서 만들기로 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욕에 자리를 잡은 또 한명의 거장 아미르 나데리는 현재 일본에서 신작을 만들고 있다. <컷> 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현재 촬영을 마무리하고 후반작업 중이다. 아미르 나데리 감독은 애초 이 작품을 한국에서 찍고 싶어 했고, 한국의 투자사와 논의를 한 바도 있다. 그리고 그가 당대 최고의 배우라 극찬하는 안성기를 출연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는 무산되었고 <컷>은 일본에서 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여건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메인 제작사인 비터스 엔드는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이며 제작비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럼에도 제작이 가능한 것은 일본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도움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개런티에 상관없이 출연을 결정지었다.

아시아에서 해외의 작가영화나 예술영화에 투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나마 일본 정도가 그런 역할을 해오고 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차기작 <섭은랑> 역시 일본의 메이저 회사와 투자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비록 예술영화시장이 죽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에서의 영화문화 다양성은 여전히 아시아권 내에서는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의 감독들이 대체로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지만, <증명서>의 상영 직후 게스트 대기실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많은 일본영화인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일본영화가 영화산업적으로는 호황이지만, 창의적인 작품과 재능이 점차 드물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인프라가 튼튼하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진 제작자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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