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라이언 레이놀즈] 완벽히 새로운 스타일의 할리우드 스타
2010-12-17
글 : 김도훈
<베리드>의 라이언 레이놀스

미스터리다. 라이언 레이놀스가 할리우드의 가장 촉망받는 남자배우이자 타블로이드가 쫓아다니는 슈퍼스타가 된 건 미스터리다. 그게 왜 놀랍냐고? 지금 가장 몸값 비싼 주연급 스타들을 열거해보자. 그들 대부분은 20대의 청춘에 이미 스타가 됐다. 톰 크루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역 시절부터 스타였다. 멧 데이먼 역시 이른 이십대에 스타가 됐다. 30대에 스타가 된 남자들은 대부분 수입된 스타들이거나(러셀 크로나 휴 잭맨, 휴 그랜트 같은 남자들), 할리우드로 진출한 TV스타다(그렇다, 조지 클루니). 10대 아역으로 출발한 라이언 레이놀스는 지금 서른다섯살이다. 대체 20대와 30대 초반의 그는 뭘 했단 말인가.

레이놀스의 과거를 추적해보자. 그가 처음으로 블록버스터에 주요한 ‘조연’으로 출연한 <블레이드3>(2004) 이전의 경력 말이다. IMDb를 뒤져보면 <블레이드3>와 같은 해 출연한 <해롤드와 쿠마>에서 남자 간호사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얼굴이 기억나는가? 그럴 리가. 이 모든 라이언 레이놀스 신드롬(적어도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의 시작은 2008년과 2009년이다. 샌드라 불럭과 함께 출연한 <프로포즈>가 로맨틱코미디 역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고,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데드풀 역할은 차세대 액션스타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무엇보다 레이놀스는 세상 모든 남자들의 절규를 뒤로하고 스칼렛 요한슨과 결혼했다. 이 캐나다 남자는 겨우 2년 사이에 우주왕복선이 치솟아오르듯 할리우드 권력의 중심으로 튀어올랐다.

<더 나인스> 배우로서의 기상 알람

라이언 레이놀스가 스타의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 걸어왔던 뒤안길은 꽤나 눈물겹다. 1976년생인 그는 1991년과 93년 사이에 방영된 아동용 TV채널 <니켈로디언>의 시트콤 <힐사이드>에 출연하면서 아역배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10여년간 대부분의 아역배우들이 그러하듯이, 레이놀스 역시 운이 없었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증언한다. “13살에 연기를 시작했죠. 대마에 취한 고딩들을 위해 3년이나 방영된 끔찍한 <니켈로디언>의 소프 오페라로 말이죠. 14살에 스리랑카에서 첫 영화를 찍었어요. TV영화 하나를 찍으려고 내전이 한창인 나라에 부모도 없이 머물렀습니다. 끔찍하죠 정말.” 싸구려 TV용 영화에만 출연하며 10대와 20대 청춘을 허비하던 그는 심각하게 연기를 포기하려다가 마지막 기회를 위해 LA로 갔다. 주거지는 LA 변방의 싸구려 모텔이었고, 재산의 전부인 자동차는 LA에 도착하자마자 언덕에서 구르는 바람에 문도 달려 있지 않았다.

라이언 레이놀스는 2002년작 코미디영화 <엽기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꿰찼다. 그러나 레이놀스에게 미래의 스타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에 출연한 영화에서 그는 190cm에 가까운 꺼벙한 키와 소년처럼 친근한 미소를 이용한 코미디영화의 주연으로나 쓸 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레이놀스 스스로 어떤 이정표라고 말하는 영화는 존 어거스트가 감독한 2007년작 <더 나인스>다. “배우로서의 기상 알람과도 같은 영화였다. 영화 만들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더 나인스> 이후 비로소 야망이 생겼고, 특별한 역할을 찾아 헤매게 됐다.” 그는 야망을 가졌고, 야망을 위해서 필요한 건 연기와 좋은 역할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레이놀스는 아도니스의 곡선을 몸에 덧씌운 뒤 <블레이드3>에서 총과 검을 휘둘렀다. 그는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과체중에 여드름쟁이 꼬맹이라며 스스로를 비하하곤 했다. 영화는 그런 오랜 근심에서 빠져나갈 길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베리드> 이후 <그린 랜턴>으로 진정한 스타의 반열에

<베리드>

<프로포즈>의 대성공 이후 놀라운 저예산영화 <베리드>로 자신이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라는 걸 증명한 라이언 레이놀스는 내년에 개봉하는 <그린 랜턴>의 주인공 역을 맡음으로써 진정한 스타의 지위에 올랐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린 랜턴’은 DC 코믹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슈퍼히어로 중 하나이며, 수많은 스타가 탐낸 역할이다. 그는 자신이 <베리드> 같은 저예산영화와 <그린 랜턴>에 동시에 캐스팅될 수 있는 이유가 오랜 무명의 그림자 덕분이라고 말한다. “내가 스물한살부터 이미 유명한 스타였다면 이런 역할들이 동시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다. 내 경력은 서서히 올라선 점층적인 영화들의 총합이고, 그 덕분에 좀더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린 랜턴> 이후 레이놀스는 지금 할리우드의 어떤 젊은 남자배우들보다도 바쁠 예정이다. <더 행오버>의 제작진이 모여서 만드는 R등급 코미디 <체인지 업>, 샌드라 불럭과 다시 만나는 액션코미디 <모스트 원티드>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그는 무수한 도전자를 젖히고 덴젤 워싱턴과 공연할 액션스릴러 <세이프 하우스>의 주연 자리를 꿰차는 데도 성공했다. 레이놀스가 젖힌 도전자가 누구냐고? 샤이어 라버프, 제이크 질렌홀, 크리스 파인, 샘 워딩턴, 톰 하디, 채닝 테이텀, 잭 에프런, 제임스 맥어보이다. “이런 역할들 중 나에게 ‘어서 옵쇼!’라며 배달된 건 없다. <그린 랜턴>을 위해서는 스크린 테스트를 두번이나 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역할을 따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의 성과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더 재미있는 건 라이언 레이놀스가 <그린 랜턴>에 이어 두편의 슈퍼히어로영화를 더 찍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데드풀’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다른 하나는 다크호스사의 인기 코믹스를 영화화하는 <R.I.P.D.>다.

이웃집 청년처럼 생긴 영웅

이로써 분명한 것은 이 캐나다 출신의 남자가 새로운 미국의 영웅이라는 거다. <피플>이 그를 “살아 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건 말건 간에 사실 라이언 레이놀스의 외모가 딱히 영웅적인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10대를 대상으로 한 코미디에서 쿼터백 조연으로나 잠깐 출연할 듯한 얼굴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스타파워가 박스오피스에서 맥을 못 추고, 타블로이드와 인터넷이 스타의 아우라를 지워버린 시대. 라이언 레이놀스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이웃집 청년의 얼굴로 뒤늦은 스타덤에 올랐다. 어쩌면 이 남자는 할리우드의 21세기를 알리는 첫 번째 ‘새로운’ 스타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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