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나는 묻혔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2011-01-06
글 : 김종일
개인이라는 이름의 관에 갇힌 실존의 폐소공포 <베리드>

※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라크전의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2004년 초여름, 이라크 무장단체가 이 나라 군납업체에서 일하던 한 젊은이를 납치했다. 무장단체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그를 살해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카메라 앞에 선 젊은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여러분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나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애원했다. 그때 무장단체가 제시한 협상시한은 고작 24시간이었다.

납치, 생매장 그리고 휴대전화

불길하고 긴박한 음악을 배경으로 오프닝 크레딧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땅속으로 하강하다 사라지고 나면 화면은 한동안 온통 암흑이다. 영사 사고를 의심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는 어둠 속에서 영화는 관객을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트럭 운전기사 폴 콘로이가 갇힌 관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까스로 어둠을 몰아내는 지포라이터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과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관객은 그와 하나가 되어 숨막히는 95분을 오롯이 함께해야만 한다. 발치의 전화기를 집는 데에도 사력을 다해야만 할 정도로 비좁은, 산소가 희박해 숨쉬기조차 버거운, 없던 폐소공포증도 생길 듯한 이 생지옥에서 그에게 주어진 ‘아이템’이라고는 지포라이터와 휴대전화, 야광 스틱과 손전등, 연필과 나이프가 고작이다. 그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이 나락에서 살아나가고자 용을 쓰지만 상황은 점점 절망으로 치닫는다.

<베리드>는 유례없는 형식의 스릴러다. 물론 <베리드>가 생매장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는 아니다. 일찍이 에드거 앨런 포의 <때이른 매장>을 각색한 로저 코먼의 <중단된 매장>(The Premature Burial, 1962)이 있었고, 프랭크 다라본트는 <생매장>(Buried Alive, 1990)이라는 멋진 선례를 남겼으며, TV시리즈에서는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5의 마지막 에피소드 <Grave Danger>(2005, 이 에피소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던 이가 근사한 생매장 시퀀스로 유명한 <킬 빌2>(2004)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사실은 흥미롭다)가 ‘생매장 스릴러’의 전범으로 남았다. 주인공(들)을 한정된 공간에 몰아넣고 그곳을 벗어날 수 없도록 금을 그어놓는 설정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구명보트>(Lifeboat, 1944)나 빈센조 나탈리의 <큐브>(Cube, 1997),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Phone Booth, 2002) 같은 영화에서도 익히 보아온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흔한 플래시백 한번 없이 땅속에 묻힌 단 한명의 인물과 단 한 공간만 비추는 우직한 카메라워킹으로 러닝타임을 메우는 영화는 전무후무하다. 전화 통화나 동영상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화면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라고는 오로지 폴 콘로이뿐이며, 조명이라고는 당장에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라이터 불빛과 야광 스틱, 전화기의 액정 불빛이 전부다. 앞서 열거한 영화들이 돋보기라면 <베리드>는 가히 광학현미경이라 할 만하다. 폴의 겁에 질린 눈동자와 진땀이 배어나오는 살갗, 진득한 피로 얼룩진 이마와 목울대, 가쁜 숨소리와 다급한 목소리를 통해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되다 보니 관객도 그와 함께 절망하고, 발작하고, 눈물짓고, 가쁜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다.

개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베리드>의 공간이 내내 폴이 갇힌 관 속이라는 설정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말한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폴이 이라크의 어디인지도 모를 땅속에 묻힌 순간, 그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밀실’만이 남을 뿐이며, 그는 더이상 ‘국민’도 ‘직원’도 아닌 ‘개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가 붙들 수 있는 희망의 끈이라고는 오직 휴대전화뿐이지만, 전화기 너머의 타인들은 대부분 사무적이고 매정한 말투로 그 썩은 동아줄 같은 끈일랑 그만 놓으라고 등을 돌린다. 프랭크 다라본트의 <생매장>에서 와인에 탄 독극물을 먹고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남편 클림트에게 아내 조애나가 “죽어, 그냥 죽어버려”라고 차갑게 내뱉었듯이. 이라크 주재 인질전담반의 댄 브레너는 폴처럼 인질로 잡혔던 마크 화이트라는 인물을 구출한 전력이 있다며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을 던져주지만 미 공군은 이내 그가 묻힌 지역을 폭격한다. 폭격은 도리어 관 뚜껑을 부수고 관 속에 모래를 쏟아내며 그의 목숨을 위협한다. 게다가 그가 깨진 관 뚜껑 틈으로 새어드는 모래를 가까스로 틀어막는 동안 전화를 걸어온 회사 인사담당자는 그가 사내연애를 했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실로 그에게 해고를 통보하기까지 한다. 비로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각한 폴은 나지막이 씹어뱉는다. “네가 나를 여기 넣었어.” 오직 댄 브레너만이 생매장의 위기에 처한 그를 곧 구해주겠노라고 뛰어다니지만, 그마저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희망고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폴은 인질범의 협박에 못 이겨 협상을 호소하는 동영상과 나이프로 손가락까지 자르는 동영상까지 찍어 유튜브에 올렸건만, 끝내 아무도 그를 구하러 와주지 않는다. 폴이 아들에게 동영상으로 유언을 남기다 자조 섞인 말투로 중얼거리는 “내가 유명한 야구선수였거나 양복 차림의 회사원이었다면 아마 바로 구조했겠지”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욱 뼈저리게 가슴에 와닿는다.

허구에 불과한 영화가 현실과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 영화는 더이상 허구라 무마할 수 없는 힘으로 관객을 옥죈다.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에서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던 악령처럼, 나카다 히데오의 <링>에서 브라운관을 뚫고 기어 나오던 사다코처럼, <베리드>가 그려낸 폴 콘로이의 악몽은 태평양 너머의 이 나라 관객을 불편한 현실로 소환한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이 나라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고 우리를 어르고 달래는 국가가 막상 국민이 곤경에 처했을 때에는 국익 운운하며 싸늘하게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사실, 힘없는 개인에게 위정자들이 내세우는 ‘공정사회’란 허울뿐인 사탕발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국가에게 개인이란, 영화 <파이란>의 이강재의 말대로 “옛날에도 호구(虎口)고 지금도 호구고 국가대표 호구”에 불과한 존재일는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그야말로 언제 닫힐지 모르는 ‘범의 아가리’ 속에서 허우적대는 부질없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갈 곳 잃은 노동자들에게 진압봉을 휘두르고, 불도저로 강을 갈아엎고, 대포폰으로 민간인을 염탐하고, 국회에서 격투를 벌이고, 서민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국가. 그런 국가에 개인 따위야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 영화 <베리드>의 씁쓸한 결말이 진정으로 섬뜩한 이유는 대다수가 힘없는 개인일 뿐인 우리에게 그런 실존적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분명 호러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세상의 무수한 ‘개인’들에게 <베리드>는 이보다 더 섬뜩할 수 없는 공포영화다. 단언하건대 내게 올해 최고의 공포영화는 <베리드>다.

다시 2004년 초여름으로 돌아가보자. 그때 우리의 외교통상부는 이라크 파병 방침은 변함없노라고 만천하에 천명했다. 무장단체가 제시한 협상시한을 반나절이나 앞둔 오전의 일이었다. 그 다음날 밤,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으로 35km 떨어진 지점에서 젊은이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개인은, 피랍 보름 전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 ‘하루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고 썼던 개인은 그렇게 죽은 뒤에야 고국 땅을 밟았고, 이내 기억하는 이 몇 없는 망각 속에 ‘묻혔다’. 그로부터 3개월 뒤, 감사원은 그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때때로 현실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참혹하다.

김종일 작가. <몸> <손톱>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공저) 등의 책을 썼고, 틈틈이 시나리오와 영화평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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