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정재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믿음직한 선발 투수처럼
2011-01-10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글러브>의 정재영

매 작품 다른 모습을 보여도 정재영은 한결같다.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필모그래피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민하거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맡은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결과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면 된다는 주의다. 이런 면모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상당 부분 작용하는데, 달리 말하면 ‘연기’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런 정재영이 <이끼>의 백발 가득한 노인 천용덕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은 역시 강우석 감독의 휴먼드라마 <글러브>다. 극중 정재영이 맡은 캐릭터는 김상남. 그는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백이면 백 내야땅볼’을 만드는 한국 최고의 컨트롤 아티스트, 한 프로야구팀의 에이스다. 동시에 여기저기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어떤 사건으로 KBO에게 징계를 받고, 얼떨결에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단을 맡는다. 정재영이 말하는 주인공 김상남과 영화 <글러브>를 8가지 키워드로 구성했다.

김상남 김상남은 독특하고, 쿨하고, 야구선수로서 긍지가 대단하다. 여자를 대할 때는 겉정보다 속정이 많다. 실제 내 모습과 가장 닮은 캐릭터다. 극중에서 쓰는 말투도 내가 평상시 말하는 그것이다. ‘이렇게 성의없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기하기가 편했다. 출연을 결정할 때 <이끼>나 다른 영화의 캐릭터처럼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다만 시나리오상 귀걸이나 액세서리를 치장한 김상남의 외양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뺐다. 처음에는 염색도 할까 생각했는데 그대로 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시나리오에 묘사된 김상남의 외양은 실제 내 나이보다 어린 배우에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야구 야구를 보는 건 좋아하는데, 직접 하는 건…. 가끔 가족과 함께 잠실구장에 가서 맥주 한잔씩 마시며 야구를 보긴 한다.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삼성 팬이었다. 고향이 서울이라 친구들이 전부 OB나 MBC 청룡의 어린이회원에 가입했다. 그러나 왠지 남들과 다른 팀을 응원하고 싶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는 애들은 좀 없어 보이고. (웃음) 이 팀 저 팀 찾다가 사자 잠바가 멋져 보여서 5천원을 내고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회원에 가입했다. 최근 은퇴한 양준혁 선수가 뛸 때까지 좋아했는데, 지금은 라이온즈가 세대교체를 해서 아는 선수가 별로 없다.

훈련 김상남은 <아는 여자>의 동치성과 달리 한국 최고의 투수다. 그러다보니 촬영 두세달 전부터 투구폼, 배팅볼 연습 등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 위주로 연습해야 했다. 투구폼의 경우 김상남의 진짜 주무기인 너클볼(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으로 공을 쥐어 던지는 구질)을 주로 연습했다. 배팅볼은 상남이 청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수비 연습시키는 장면 위주로 준비했다. 프로야구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공을 쳐주는 것처럼 폼이 나야 했는데, 선수들이 평생 동안 하는 걸 몇 개월 안에 하려니까 쉽지 않았다. (야구 영화했으니 사회인 야구에 참여할 생각은 없나?) 농구영화하면 농구해야 하고, 축구영화하면 축구해야 하나. (웃음)

청각장애인 야구단 그간 청각장애인이 운동을 한다고 하면 야구는 그들에게 쉬운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축구나 농구처럼 격한 움직임이 필요하지도 않고, 사인을 통해 작전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구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스포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에 따라 공이 나가는 방향이 달라진다. 청각장애인은 그걸 캐치하지 못하니까 일반 선수들에 비해 판단이 느리다. 흔히 야구를 멘털 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가만히 서 있어도 ‘파이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상남이 아이들에게 ‘기술’보다 ‘정신력’을 먼저 가르치는 것도 야구가 그들에게 힘든 운동이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그게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기도 하고.

성장 영화 초반, 슈퍼스타 상남은 징계를 당해 시골에 내려가는 게 탐탁지 않았다. 아마 야구를 추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상남’과 ‘야구’를 통해 ‘열정’을 배운다. 이 모습을 본 상남은 열정적인 시절의 자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다시 잡아가잖아. 그렇다고 영화에서 상남이 반성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글러브>가 어떻게 보면 빤한 구성의 성장드라마이지만 ‘신파’로 빠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이야기다.

어린 후배들과의 호흡 또래나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던 최근작과 달리 이번에는 김혜성을 비롯한 어린 후배들과 함께 연기했다. 실제 나와 내 친구들과의 관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두살 어린 후배라면 말과 행동을 조심하겠지만 워낙 나이차가 많이 나는 친구들이라 편하게 지냈다. 상남이 충주 성심학교에 가자마자 애들한테 막 대하는 것처럼 후배들한테 ‘잘해봐라’, ‘이렇게 하면 연기가 되겠냐’라고 편하게 말했다. 영화처럼 그 상태 그대로 현실에 대입이 되더라.

현재진행형 배우 영화 한두편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령 필모그래피가 100편인 게 뭐가 중요한가. 어떤 태도로, 어떤 연기로 100편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인간이기에 어떤 순간에 본능적으로 일희일비할 수 있지만 최대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귀가 두꺼워지도록 노력한다. 또 연말이라 ‘올해의 결산’이니 ‘새해의 계획’이니 그런 걸 하는 분위기다. 남들이 ‘올해 어땠냐’라고 물어보면 막연하게 ‘내가 올해 뭐 했지?’라고 되돌아본다. 물론 그걸 먼저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게 ‘올해’의 개념은 ‘한 작품이 끝났을 때’다. 매 순간, 매 작품 ‘현재진행형’인 거지. 그 점에서 이번에도 <글러브>라는 작품을 또 한편 했다.

차기작 영화사 봄에서 들어가는 <카운트다운>(가제)이라는 상업영화다. 액션, 휴먼, 드라마가 있는 이야기로, 신인감독의 작품이다. 출연 배우는 아직 조율 중이다.

스타일리스트 신래영, 류현민·헤어 김영주 부원장(jenny house)·메이크업 김효정(jenny house)·의상협찬 Ermenegildo Zegna, TIME homme, cp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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