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첫 상영. 관객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열차를 피해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떴다. 영화 역사상 이 세계 최초의 ‘활동사진 상영’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요란스러운’ 순간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1959년 칸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날이 아닐까? 그로부터 반세기하고도 2년이 지난 2011년. 누벨바그의 주역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에 관한 다큐멘터리 <누벨바그의 두 사람>(Deux de la Vague)이 개봉했다.
영화는 59년 5월 당시 칸영화제에 초청받아 승승장구하는 트뤼포, 썰렁한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실을 떠나며 “칸에 내려갈 돈이 필요한데… 트뤼포 이 나쁜 자식. 내 생각을 좀 해줄 수도 있었잖아”라며 지인에게 구시렁거리는 장 뤽 고다르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누벨바그의 두 사람’을 소개한다(참고로 이 영화는 역사학자 앙투안 드 베크의 집요한 아카이브 수집을 바탕으로 매 상황 정확한 출처를 밝힌다. 고다르의 발언도 지인의 증언을 근거로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있다). 부르주아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고다르와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일찌감치 소년원 생활까지 경험한 트뤼포. 두 사람은 영화라는 예술에 동시에 빠져들었고 똑같이 21살에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고다르와 트뤼포는 시나리오를 공유했을 뿐 아니라(<네 멋대로 해라>는 원래 트뤼포의 시나리오였다), 촬영된 러시를 공유할 정도로(<물의 이야기>(Une histoire d’eau)는 트뤼포가 촬영한 러시를 고다르가 편집해 완성한 단편이다) 절친했다.
하지만 고전영화의 기본틀은 존중하되 자기만의 방식으로 더 발전시키고자 했던 트뤼포와 달리 고다르는 고전영화 문법의 전격적인 부인을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를 존중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68년 5월항쟁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고다르는 73년작 <사랑의 묵시록>을 본 뒤 트뤼포를 부르주아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트뤼포는 고다르를 이상주의 얼간이로 명명하며 결별을 선언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영화에 장 피에르 레오를 번갈아 출연시키며 직간접적으로 라이벌 관계를 이어갈 뿐 84년 트뤼포가 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더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시네필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줄거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누벨바그의 두 사람>은 고다르와 트뤼포가 나누었던 친구, 동료, 라이벌의 관계를 역사적인 고증과 정돈된 드라마를 통해 가끔 무릎을 치게 만드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인터뷰를 넣다면 전체 흐름은 망쳤을 터
시나리오작가 앙투안 드 베크와 연출자 에마뉘엘 로랑 인터뷰
지난 1월13일 저녁 파리 MK2 보부르점에서는 시나리오작가 앙투안 드 베크와 연출자 에마뉘엘 로랑을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앙투안 드 베크는 고다르와 트뤼포의 전기를 집필해 이미 잘 알려진 영화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계획하게 되었나.
=에마뉘엘 로랑 누벨바그를 재조명하는 영화를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는데 앙투안을 만나면서 급격한 발전이 있었다. 연출로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앙투안이 가진 ‘즙’을 잘 짜내는 것밖에 없었다.-제목은 어떻게 결정했나.
=앙투안 드 베크 에마뉘엘이 말했듯, 누벨바그에 관한 전체적인 재조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의 영화로 집약하기에는 너무 많은 ‘거리’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일반적이지 않으면서도 누벨바그의 중심 골자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고다르와 트뤼포의 전기를 집필한 경험으로) 두 사람을 기준으로만 자료를 모으고 또 삭제했다. 그러니 제목이 <누벨바그의 두 사람>인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고다르와 트뤼포가 주인공인 건 자명한 이치이지만, 둘 사이의 ‘아들’ 격이라 할 수 있는 ‘장 피에르 레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생존해 있는 고다르, 레오와 만나서 인터뷰할 생각은 없었나. 왜 아카이브 화면만을 고집했나.
=앙투안 드 베크 장 피에르 레오를 만나서 두 사람에 관해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얘기를 하던 중 그가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동시에 하는 걸 무척 꺼린다는 걸 깨달았다. 고다르는 알다시피 인터뷰하기 무척 어려운 상대다. 게다가 트뤼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목적이라면… 뭐 얘기 안 해도 알 것이다.
=에마뉘엘 로랑 두 사람의 인터뷰를 싣는 게 목적이었다면 방법을 찾아냈을 거다. 하지만 아카이브와 역사적인 자료 화면이 주를 이루는 영화에 인터뷰를 삽입하게 되면 전체적인 흐름을 망치게 될 거라고도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