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독일 영화계의 큰 별이 지다
2011-03-02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장미의 이름> <향수> 만든 독일의 영화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
<향수> 현장의 베른트 아이힝거.

독일 영화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지난 1월24일, 독일 영화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가 LA의 한 식당에서 식사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61살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독일 영화계가 충격과 시름에 빠졌다.

지금까지 메인스트림 독일 영화계는 아이힝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콘스탄틴 영화사라는 거대 영화사를 통해 수많은 성공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어떤 해는 콘스탄틴 영화사의 영화가 독일영화 점유율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그 파워는 막강하다. 아이힝거의 특기는 세간의 화제가 되는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여 히트시키는 것이다. 성공의 발판은 81년작인 울리 에델 감독의 <크리티아네 F: 우리는 초역의 아이들>(Christiane F: Wir Kinder vom Bahnhof Zoo)이다. 원작은 크리스티아네라는 15살 마약중독 소녀의 실화를 다룬 르포 서적으로, 이 책은 1979년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독일사회에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저소득 빈곤층 거주지 노이쾰른 지역에서 살아가던 크리스티아네는 헤로인에 중독된 뒤 약을 구하기 위해 서베를린 초역에서 거리 매춘을 했다. 아이힝거는 이 실화를 포착해 극영화로 만들어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600만마르크를 투자한 영화는 3600만마르크를 벌어들이고 47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2차대전 이후 독일영화로서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였다. 이 영화는 그가 1979년 재정 위기에 있던 콘스탄틴 영화사 지분의 4분의 1을 매입한 이후 투자, 제작한 영화라 성공의 의미는 더욱 컸다. 그 뒤 30여년간 아이힝거는 7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승승장구했고, 콘스탄틴 영화사의 성장과 활약 역시 눈부셨다.

80년대 미하엘 엔데의 동화를 각색한 <네버 엔딩 스토리>(1984),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1986), 울리 에델 감독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1989)를 제작한 그는, 최근 <몰락>(2004), <향수>(2005), <바더 마인호프>(2008)처럼 할리우드적인 대규모 상업영화에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그냥 할리우드적이기만 한 영화들은 아니었다. 베른트 아이힝거는 독일인의 정서에 맞는 대작을 기획해 국내외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둠으로써 단순히 할리우드를 좇아가는 상업영화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는 뮌헨과 LA를 오가며 미국에서는 주로 상업성을 고려한 <레지던트 이블> 같은 장르영화에 투자하는 반면, 독일에서는 나치, 적군파 등 독일 현대사와 관련된 영화(<몰락> <바더 마인호프>)의 제작에 힘을 쏟았다. 모두 독일인과 독일 역사에 관한 아이힝거 자신의 고민이 녹아든 영화들이었다.

영화에 대한 집념도 크고 그만큼 손도 컸던 아이힝거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이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저작권을 얻기 위해 그가 무려 20년간이나 작가와 출판사를 설득했다는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향수>의 저작권으로 무려 1천억유로를 지불했다. 그는 회사 이사진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이 책은 스타나 마찬가지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며 어마어마한 저작권을 두말없이 지불한 동시에, 결국 영화로 만들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아이힝거는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 현장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기로도 유명했다(인터넷을 검색하면 현장에서 감독,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가 즐기던 차림은 운동화에 청바지였다. 물론 하넬로레 엘스너, 카차 플린트, 코린나 하르푸흐 등 독일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의 끝없는 염문도 아이힝거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사망 직전 아이힝거는 오스트리아 희대의 어린이 유괴사건인 ‘나타샤 캄푸쉬’ 이야기를 3D영화로 만드는 일을 추진 중이었다. 그는 보수적인 독일 영화계를 설득하며 미래영화에서의 3D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지난 2월7일 드물게 따뜻한 햇살이 비치던 날 뮌헨의 미하엘교회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독일의 유명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1천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와 독일 영화계의 마지막 거물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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