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이탈리아의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아시아 고전 코미디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아시아의 웃음!>이라는 제목의 이 특별전은 일본, 홍콩, 중국, 필리핀, 타이, 기타 등등의 다양한 나라들의 코미디영화로 구성된다. 영화제 프로그램 자문위원인 나는 두편의 한국영화를 선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한형모 감독의 1959년작 <여사장>이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최근 출시된 1950년대 로맨틱코미디 DVD 박스 세트에 포함된 이 영화는 잡지사 사장인 조안나라는 여자주인공에 대한 영화다. 자신감 넘치고 아무도 두렵지 않은 그녀는 사무실 직원인 여성들에게는 상위직을 주고 남성들에게는 하위직을 준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여존남비’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어느 날 조안나는 거리에서 자신과 말싸움을 했던 남자가 직원 모집에 온 것을 보고, 복수하려는 마음에 그를 고용한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6, 7년 전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예술의 전당에 있던 시기에 기획한 1950년대 영화 상영전에서다. 조안나와 잘생긴 남자 직원 사이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이 얼마나 재밌어했는지 기억한다. 또 말이 안될 만큼 남성 우월 사상으로 회귀하는 결말에 몹시 충격을 받았던 것도 기억한다. 마지막에 조안나는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고, 책상 위의 현판은 ‘남존여비’로 대체된다. 무엇보다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조미령의 톡톡 튀는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관객은 그녀의 캐릭터를 따뜻하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초반부터 3분의 2까지 영화가 보여주는 에너지는 마지막의 기분 나쁜 결말 따위는 덮어버릴 만큼 훌륭했다.
한동안 나는 우디네 특별전에 <여사장>을 넣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다시 본 뒤 갑자기 이 영화를 선정하는 것이 좋은 결정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국 1961년에 만들어진 두편의 영화- 한편은 유명한 코미디언이 나오고 다른 한편은 서울의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를 선택했다(아직은 프로그램 내용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이므로 영화 제목은 생략한다).
영국 극작가 톰 스토퍼드는 최근 “웃음은 이해했을 때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을 통해 관객이 무엇이 진행되는지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관객의 가치와 관련된 그 무엇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다른 시대의 영화를 볼 때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의도한 바가 있었다 해도 현대의 관객은 화면상의 상황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관객으로 꽉 찬 극장에 앉아서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음으로써 그 영화에 대해 관객이 내리는 일종의 공동체적 평가를 경험할 수 있다.
<여사장>의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가치 사이로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여주인공 조안나는 허영심이 많고 바보스럽다. 그러나 조미령의 연기는 영화의 남녀차별주의적 메시지를 넘어 그녀의 존엄성을 살려낸다. 내가 영상자료원에서 그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조안나의 편을 들면서 웃음 속에서 그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보는 외국 관객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할 것이다. 종종 외국 관객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유머 감각은 예외다. 특별히 노골적이 아니라 부드럽게 살짝 표현되는 유머는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관객이 조미령이 영화에서 말하는 방식에 웃음으로 반응하는 반면,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볼 때 그 유머는 사라지고 만다. <여사장>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를 보는 재미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관객은 조안나에 대한 지지를 웃음을 통해 소리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외국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그 극장은 침묵으로 일관될 것이고, 영화의 성차별주의는 더 심각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100명 정도의 한국 관객을 우디네로 데려가 상영관을 채우지 않는 한 <여사장>을 우디네 프로그램에 초대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