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しね)! 증오심에서 터져나온 저주, 혹은 생각없이 내뱉는 욕이거나 낙서에 불과한 이 단어가 영화 <고백>의 공기다. 살해당한 딸의 어머니가 벌이는 복수극인 동시에 자의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10대 소년, 소녀들의 비극을 그린 영화는 측정 불가능한 살인의 무게를 탐구한다. 장난으로 던진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진심어린 증오가 대수롭지 않게 사라져버린다. 복수를 당하는 방식은 같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고백>은 가벼운 살인과 무거운 복수, 그리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가벼운 태도와 무거운 시선을 연쇄적으로 충돌시키며 지옥도를 연출하는 영화다.
그날은 어느 중학교의 종업식이 있던 날이다. 1학년 B반 담임인 유코(마쓰 다카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생들에게 우유를 나눠준 뒤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 에이즈 보균자 판명을 받은 그와의 이별, 그가 남긴 딸 마나미,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던 유코는 마나미를 죽인 범인 A와 B가 이 반에 있다고 밝힌다. 선생의 딸을 그가 가르치던 학생이 죽였다는 사실보다 끔찍한 건 그녀의 복수다. “방금 그 학생들이 먹은 우유에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혈액을 넣었어요.” 사건의 발생부터 추리를 거쳐 복수까지 이른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끝이 아니다. 유코의 고백을 통해 소년 A와 B,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같은 반 학생들은 괴물이 되어버린다.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다.
<고백>은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인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란 카테고리로 연결되는 이 소설은 유코의 고백으로 시작해 B반 반장인 미즈키, 범인 중 한 사람인 나오키, 나오키의 엄마, 그리고 또 다른 범인인 슈야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원래 유코의 고백만을 그린 단편소설 <성직자>에 다른 이들의 고백을 덧붙여 쓰여진 <고백>은 그 때문인지 불필요한 이야기를 일부러 늘리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는 소설이다. 원작과 달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원작의 순차적인 고백을 동시적으로 진행시킨다. 새로운 형식에 조응하는 인물들의 에너지는 원작보다 세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는 슈야의 사연과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미즈키의 시선, 종업식 이후 결벽증과 대인기피증을 갖게 된 나오키와 그런 아들을 지키려 하는 엄마의 절망은 섬뜩한 기운과 동정심을 함께 드러낸다. 또한 원작에 없던 반전을 통해 유코의 복수를 더욱 집요하게 묘사하는 한편, 영웅심리에 빠진 슈야의 자의식을 가혹하게 꼬집는다.
<고백> 속 인물들의 비극은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어긋나면서 벌어진다. 듣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되거나, 진실을 듣고도 자신이 믿고 싶은 말들만 가려내거나,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거나. 활자에 의존하는 원작 소설보다 영화에서 이런 특징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건 흥미로운 점이다. “원작에서는 인물들이 모두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나카시마 데쓰야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사람의 본질과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전제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정서와 달리 유려한 이미지와 활력있는 리듬으로 구성된 영화의 영상미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한 여자의 일생에 걸친 비극을 화려한 뮤지컬 형식으로 연출했던 나카시마 데쓰야는 <고백>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춤과 노래가 주인공 마츠코의 에너지를 드러냈다면 <고백>의 활력은 죽음의 무게를 고민하지 않는 시대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듯 보인다. 유코가 고백하는 첫 시퀀스에서 선생의 말 따위는 귀담아듣지 않는 아이들의 행동과 표정은 유코의 차분한 화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마음껏 웃고 떠드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10대 소년, 소녀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야기의 비극과 연관지으면 그들의 해맑은 표정은 곧 영화의 가장 섬뜩한 이미지다. 과연 그들에게 죽음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화려한 영상과 경쾌한 리듬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소름이 돋는 순간, <고백>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