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엽위신] 전설적 영화 리메이크, 부담보단 영광이다
2011-04-01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천녀유혼> 후반작업차 방한한 엽위신 감독

<천녀유혼> 리메이크작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장국영과 왕조현의 슬픈 사랑으로 기억되는 <천녀유혼>은 <영웅본색>이나 <천장지구>만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신조협려 2006>(TV)을 비롯해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2008)를 통해 ‘여신’으로 떠올랐던 유역비가 왕조현이 연기한 섭소천으로 변신하고, 첸카이거의 <매란방>(2008)에서 여명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여소군이 장국영이 연기한 영채신을 맡는다. 거기에 오마가 연기했던 퇴마사의 비중이 늘어 고천락이 그를 맡아 중요한 변화의 축이 될 예정이다.

제작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과거 <황비홍> 시리즈를 촬영했으며, 최근 <명장>(2007), <8인: 최후의 결사단>(2008) 등을 촬영한 중화권 최고의 촬영감독 황악태가 참여했고, 무엇보다 <살파랑>(2005), <도화선>(2007), <엽문>(2008) 등을 탄생시킨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인 중견 흥행 감독 엽위신이 리메이크를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장국영과 왕조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 때문인지, <천녀유혼>은 많은 팬들이 리메이크를 바라지 않는 작품 중 하나지만 엽위신이라면 호기심이 동하는 면도 있다. 어쨌건 그 역시 장국영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만의 색깔로 승부할 생각이다. 중국과 홍콩에서 4월22일 개봉하며 국내에서는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천녀유혼>은 현재 한국에서 후반작업 중이며, 제작 또한 합작 형태로 이뤄져 이후 한·중 합작의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 같다. 후반작업차 투엘필름을 찾은 엽위신을 만나 새로운 <천녀유혼>에 대해 물었다.

-<살파랑>과 <도화선> 등을 통해 한국에 팬들이 많은데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엽문>도 그렇고 견자단 혼자 홍보활동을 펼친 느낌이다.
=음, 나는 불러줘야 오는데 딱히 초청을 받은 적이 없다. 나도 무척 아쉽다. 공짜로 관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데. (웃음)

-<천녀유혼> 후반작업을 한국에서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일단 <천녀유혼>의 기본적인 정서는 멜로영화인데 더 섬세한 기술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전 오리지널 <천녀유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보다 판타스틱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잘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여러 방법을 검토한 결과 한국 업체들의 CG 수준이 높았고 최종적으로 투엘필름과 하게 됐다.

-장국영과 왕조현의 <천녀유혼>은 홍콩과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녀유혼>은 홍콩에서도 시대극으로서, 그리고 멜로영화로서 거의 표준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좋아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고전 중 하나다. 게다가 장국영의 존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전히 홍콩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부담도 부담이지만 그보다 일단 엄청난 영광이다.

-이번 <천녀유혼>에서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된 건 기존 <천녀유혼>의 영채신(장국영)보다 오마가 연기했던 퇴마사 연적하의 비중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인가.
=첫째 장국영이 연기한 영채신 캐릭터가 워낙 세다. 그걸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걸 깨뜨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영채신으로 캐스팅된 여소군 본인도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는데 “옛날 <천녀유혼> 같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웃음) 둘째로는 옛날 <천녀유혼>에서 영채신과 섭소천(왕조현)이 함께 있을 때 연적하가 좀 어색하게 서 있다가 자리를 비켜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무척 인상적이어서, 어쩌면 연적하도 섭소천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로 연적하의 비중을 늘렸고 그렇지 않다면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장국영, 왕조현의 <천녀유혼>도 이한상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천녀유혼>의 리메이크다. 혹시 그 작품도 참고했나.
=물론이다. 이한상의 <천녀유혼>, 정소동의 <천녀유혼> 두편 모두 동일선상에 놓고 다 참고했다. 두편 다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좀더 세밀하게 분석했다. 중요하게 염두에 둔 것은 모두 당대의 흥행 영화들이라 당시 관객이 어떤 요소에 끌렸을지 분석하는 일이었다.

-그 외 또 기존 <천녀유혼>과 달리 가려고 하는 부분이 있는지.
=캐릭터도 그렇지만 액션과 미술에서도 큰 차이가 있을 거다. 영채신이 머물기 위해 찾았던 난약사가 전통적인 모습의 절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난약사는 유럽풍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뭣하지만 독특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설정했다. 그 공간에 물이 있고 그 밑에 지하세계가 또 있다. 혜영홍이 연기하는 가장 악한 요괴가 거기 봉인돼 있는 설정이다. 액션적인 부분에서도 아무래도 과거보다 CG 분량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 물론 그 균형을 찾는 작업도 중요했다.

-왕조현에 이어 섭소천을 맡게 된 유역비는 현재 중화권 여배우들 중에서 딱히 다른 이름을 떠올리기 정도로 절묘한 캐스팅이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일단 연기를 아주 잘하고 무용을 했던 배우라 액션에도 능하고 와이어 액션도 잘 소화했다. 드라마 <신조협려 2006>에 소용녀로 나온 모습을 본 적 있는데 청순하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를 비롯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영화를 많이 안 해서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당신과 여러 편을 함께 작업했고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변화로 내세우는 연적하로 출연하는 고천락에 대해서도 얘기해달라.
=<폭렬형경>(1999)으로 만난 고천락은 이후 <건시열화>(2002), <도화선>(2007) 등을 함께 하면서 말도 잘 통하고 호흡도 좋다. 그런데 <천녀유혼>의 연적하처럼 캐릭터와 배우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든 건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기대되는 측면도 있다.

-옛날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홍콩에서의 지명도와 별개로 당신은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나.
=당대 가장 잘나가던 영화사 중 하나인 시네마시티(신예성)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그냥 허드렛일을 하는 막내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20대 초반 내가 시네마시티에 들어가 맨 처음 참여한 작품이 바로 장국영의 <위니종정>(1985)이다.(웃음) 그러면서 스크립터도 하고 조감독도 하면서 <야반일점종>(1995)으로 데뷔하게 됐는데 다행히 흥행에 성공해 운이 좋았다.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정칙사다. 시네마시티에서 만나 내가 계속 따라다녔는데 이후 감독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당시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액션영화라면 무조건 좋아했다. 이소룡을 좋아했지만 딱히 중국 무협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액션영화들도 좋아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표에 항상 영화평을 쓰고 별점도 매겼다. 전날 신문에서 재밌다고 한 영화가 있으면 꼭 극장에 보러 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대부분 영화가 별로였다. 참 많이 모았는데 지금은 다 없어져서 아깝다. 그러다 영화 일을 하게 되면서 가장 관심이 간 게 시나리오작가였다. 왜냐하면 “쟤들도 쓰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나”하는 건방진 생각이었다. (웃음)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하는 건 참 불합리하고 설득력이 없는데 왜 저러지, 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할 거 같은데’하는 생각? (웃음)

-데뷔 이후 누아르와 호러, 코미디는 물론 <신투차세대>(2000) 같은 홍콩식 블록버스터 영화도 만들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가운데 <폭렬형경>이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동의한다. 사실 <폭렬형경>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내 것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게 <폭렬형경>의 오진우처럼 뭔가 약점을 지닌 주인공이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도, 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 그걸 과장되게 드러내고 부각시키는 걸 즐긴다. 그건 <천녀유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천녀유혼>은 당신이 만든 작품 중 사극을 새로이 해석한 <줄리엣과 양산백>(2000)이나 <비협소백룡>(2004)을 떠올리게도 한다.
=일단 나로서는 현대물보다 시대극이 훨씬 힘들다. 고증이 어려운 데다 그 고증에는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찮은 영화라면 관객은 그 영화에 나오는 걸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령 ‘청나라 시대가 배경인데 왜 명나라 옷을 입고 있나’ 하는 지적들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 두 작품은 아예 대놓고 자유롭게 간 영화들이라 사실 정통 사극이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줄리엣과 양산백>은 내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에 비하면 <천녀유혼>은 정통 사극이라 할 수 있지만 판타지이기 때문에 또 자유로운 면이 있다.

-지난 몇년간 당신의 영화들은 견자단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에 대해 평가한다면.
=<살파랑> 때 처음 만났다. 그전부터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살파랑>이라는 프로젝트를 들고 나를 찾아온 거다. 사실 그 전에 모 영화에서 내가 드라마 부분을 맡고 견자단이 액션을 맡아 연출한 적이 있다. 사정상 그렇게 된 거라 내가 크레딧에 올라가진 않아 제목은 밝힐 수 없지만 그때 나를 잘 본 것 같다. (웃음) 액션 연출과 동작 설계에 관한 한 견자단이 현재 홍콩 최고인 것은 뭐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고, 늘 본인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아직 한창 전성기라 그의 시대는 더 계속될 거다.

-현재 홍콩 영화계의 젊은 감독 중에 두기봉 감독을 모델로 삼는 이들이 많다. 당신은 어떤가.
=같이 일해본 적은 없지만 일단 그는 내 우상이다. 그의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데 한번은 영화제 수상 소감을 들으며 크게 감명받기도 했다. “어떤 영화를 찍건 찍어놓은 결과물인 영화가 연출한 자신에게도 떳떳한 것은 물론, 그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 대표와 관객, 그렇게 모두에게 떳떳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건 내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나 역시 ‘엽위신 사단’이라고 할 만한 것을 꾸려가고 있는데 현재진행형이다. 당연히 계획은 있는데 다만 게을러서 진행이 느릴 뿐이다. (웃음) 그리고 그의 영화 중에서는 <PTU>(2003)를 가장 좋아한다.

-홍콩 영화계에서 현재 주목하는 후배 감독이 있다면.
=내 조감독이기도 했던 곽자건이다. <폭렬형경>과 <용호문>(2006) 등에 시나리오작가로 참여하기도 했고 최근 <푸른 이끼>(2007), <타뢰대>(2010) 등을 연출했다. 꼭 내 조감독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괜찮은 감독이 될 것 같다.

-최근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나 서극의 <적인걸> 등 중화권 블록버스터들이 후반작업을 한국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각기 다른 회사에서 작업하는 점도 독특하다. 게다가 <천녀유혼>은 후반작업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합작 형태로 진행됐다.
=아무래도 기술력의 차이 때문일 텐데 투엘필름에서 함께하면서 레코딩도 다 했다. 작업된 프린트를 체크해봐도 솔직히 홍콩보다 훨씬 질이 좋다. 그리고 한국 회사와 합작하게 된 데는 <천녀유혼>의 무게감도 있었다. 과거 홍콩영화가 중화권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 때 대표적인 흥행작이 바로 <천녀유혼>이었기 때문에 이후 한국 개봉 결과가 어떨지도 궁금하다.

-차기작 <개심마법>도 후반작업 계약을 맺고 한국과 작업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류 등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업적인 고려 때문인데, 그래서 이승기나 원더걸스를 캐스팅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들이 워낙 대륙을 포함한 중화권 시장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 <개심귀> 시리즈는 황백명, 장만옥 등이 출연하고 우스꽝스러운 귀신이 등장하는 홍콩의 대표적인 하이틴 코미디영화였다. 이승기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왠지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꼭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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