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당신의 사랑에 대한 '중간점검'을 <파리, 사랑한 날들>
2011-04-06
글 : 주성철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다. 장(미카엘 코헨)은 노천카페에서 오렌지를 먹고 있는 가브리엘(에마뉘엘 베아르)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후 두 사람은 카페 화장실에서 정사를 나누다 쫓겨나기까지 할 정도로 서로의 육체와 정신을 탐닉하며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만나고 싸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두 사람은 이별을 택한다. 헤어지고 난 뒤 가브리엘은 다시 장의 집을 찾는다. 옛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며 다시 관계를 회복해보려 하지만 왠지 그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의 원제처럼 사랑이란 결국 끝을 알고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리, 사랑한 날들>은 황폐한 사랑의 기록이다. <베티 블루>(1986)처럼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큼 오히려 상처를 내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프랑스 멜로영화의 어떤 한 유형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사랑 자체를 의심하고, 자기가 잘못한 일임에도 오히려 상대를 탓하며 획 돌아서버리는, 말하자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이유없는 행동과 감정들이 영화 전체를 채우고 있다. 서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멋진 연인들이라 생각하지만 그 어떤 커플들보다 이별을 밥 먹듯 한다.

더불어 <파리, 사랑한 날들>은 끝나지 않은 사랑의 기록이다. 어쨌건 그들은 한 사람이 죽어 없어질 때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미친 듯이 싸우고 난 다음에도 가벼운 미소 하나로 다시 팔짱을 끼는 것이 연인이니까. <쉘위키스>(2007)의 ‘친절한’ 남자주인공으로 익숙한 미카엘 코헨이 주연은 물론 연출 데뷔작으로 삼은 작품이 바로 <파리, 사랑한 날들>이다. 반가운 얼굴 에마뉘엘 베아르 또한 옛 느낌 그대로는 아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거의 각본이 없는 것처럼 다투고 헤어지고 만나고 화해한다. 세상 사람 저마다의 사랑에 대한 ‘중간점검’의 영화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