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talk]
[Cine talk] 사랑을 상실하고 우린 어떻게 슬퍼할까
2011-04-19
글 : 김용언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 영화화한 트란 안 훙 감독

“서른일곱살이던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로 시작하여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로 끝나는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는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한 시절을 극도로 아름답게 묘파하며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의 영화화를 계속 거부했고, 마침내 20여년이 지난 뒤에야 타국의 감독 트란 안 훙의 끈질긴 요청에 두손을 들었다. 트란 안 훙은 마쓰야마 겐이치와 기쿠치 린코를 캐스팅하여 <상실의 시대>를 완성했고, 너무 유명한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늘 그러하듯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지난 3월28일 트란 안 훙과 가졌던 화상 인터뷰를 전한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건 언제였나.
=1994년 프랑스어로 번역된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다. 책을 막 읽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싶었고, 그때부터 영화화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다른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편집 과정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스푸트니크의 연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와 몇몇 단편집을 읽었다. 지금 일본에서 또 다른 영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하루키의 소설에서 큰 영감을 받고 있다.

-<상실의 시대>는 근사한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투쟁이기도 하다. 당신에게는 그 지점이 어떤 식으로 와닿았는가.
=학생 시위 부분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관객에게 설명하기 힘들다. 그 당시 자유를 위한 투쟁이 있었고, 개인주의의 발현도 있었다는 것 정도만 표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 남자가 첫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을 상실했을 때의 감정, 그 뒤 어떻게 회복하고 삶을 지속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시점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원작은 37살 남자가 과거을 돌이켜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에선 한두 가지 내레이션을 제외하곤 현재의 청춘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나는 노스탤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작에서 매력적으로 느꼈던 점은 멜랑콜리의 감정, 어떤 것을 잃었을 때의 우울함이다. 과거를 좋은 기억으로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상처를 기념하듯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그때 그 시점에서 그가 얼마나 아프고 슬펐는지, 그 끈끈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체험된’ 감정은 싫었다.

-영화에선 와타나베보다 나오코가 주인공처럼 여겨진다.
=그 점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라고 본다. 나의 첫 번째 디렉션은 와타나베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역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게 마련인데 나오코가 그런 인물이다. 반대로 미도리는 부드러운 역이다. 미도리가 미래의 아내라면 나오코는 독약 같은 문제적 여자다. 나오코는 아내가 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배경은 나오코의 요양소가 있는 초원이다. 소설 속 초원은 매우 고요한 이미지였는데, 당신이 그리는 초원은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같다.
=음, 에밀리 브론테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웃음) 나오코의 고백 장면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로케이션 장소를 신중하게 찾았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 둥글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공간. 우리가 찾아낸 초원은 에로틱하기보다는 관능적이었다. 대신 나오코의 고백이 매우 터프하고 격렬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긴장감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매우 빠르게 부는 바람이 필요했다. 바람과 빠른 보폭의 걸음이야말로 관객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감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신적인 고통을 이야기하더라도 관객에게 육체적이고 실질적인 감각을 전달하길 원했다.

-원작에서도 60년대 유행하던 노래들은 매우 비중있게 묘사되는데, 영화에선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 외에는 대부분 독일 60년대 익스페리멘털 밴드 CAN의 음악을 사용한다.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레벨에서는 비틀스보다 CAN의 곡들이 더 강했다. 처음엔 도어스 음악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음악감독 조니 그린우드(라디오헤드 멤버이자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음악을 맡았다)가 CAN을 추천했다. 그가 옳았다. 도어스보다 덜 알려진 음악을 사용할 때 캐릭터의 진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너무 유명한 곡들은 관객에게 저마다 사적인 경험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건 영화 속 감정이 아니니까 피하고 싶었다.

사진 : 도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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