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거쳐오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한번쯤 들춰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실의 시대>에 묘사되는 청춘의 혼란에는 어떤 보편성이 깔려 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이 세계는 나와 어울리는가 그렇지 않은가. 1969년, 와타나베(마쓰야마 겐이치)는 자살한 옛 친구 기즈키의 애인 나오코(기쿠치 린코)와 재회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오코는 기즈키를 잃은 상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무렵 발랄한 동급생 미도리(미즈하라 키코)가 와타나베에게 호감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은, 청춘들이 겪는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이 단적으로 육체적인 접촉으로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기즈키와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한번도 젖지 않았던”) 섹스가 와타나베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사실에 나오코가 되풀이 절망하는 점, 와타나베가 나오코의 요양소를 찾을 때마다 유사 섹스로 마무리되는 시퀀스는 나오코가 육체적인 불감증 환자처럼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이 경험하는 정신적인 불감증은 이상적인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뿐 아니라, 공동체에 쉽게 편입하지 못하는 어떤 특정한 인간형들이 경험하는 고통스런 불화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란 안 훙은 이들이 살고 있는 60년대라는 세계의 공기 자체를 아예 거세해버림으로써 ‘사랑의 고통’으로만 이야기를 축소시켜버렸다. 청결하고 팬시한 진열장 같은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맥락없이 그대로 옮겨온 대사들을 낭창낭창 읊조릴 뿐이다. 덧붙이자면 이 앙상한 러브 스토리 안에서 가장 부당하게 다뤄진 캐릭터는 미도리와 레이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