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희라는 이름을 마주할 때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떠올리지 않을 길이 없다. 산발한 채 여름 땡볕 아래 낫을 치켜든 그녀의 모습은 2010년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였다. 지난겨울 촬영한 민규동 감독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영화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분노의 폭발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뿜어내는 영화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죽음이라는 슬픔을 침잠시키는 영화다. 그러나 이런 영화에서도 서영희가 맡은 신선애라는 인물은 김복남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신선애는 도박에 빠진 남편 김근덕(유준상)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살림살이를 던지면서 격하게 싸우고 맞는 이 장면은 유준상과의 절묘한 호흡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영희가 맞는 연기의 1인자라는 농담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구타유발자라는 얘기도 있고 시작부터 과격하긴 한데…. 멀쩡하지 않지만 남편도 있고, 가족도 있고, 단칸방이지만 집도 있어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CEO이기도 해요. (웃음) 김복남에 비하면 굉장히 업그레이드된 거죠. 신선애는 근근이 살아가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여자가 아니에요.” 서영희는 김복남과 신선애를 연결시키지 않았다.
서영희는 김복남이라는 캐릭터를 벌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 같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이후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상 받으면 세상이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웃음) 훈장 같은 게 생긴 것 같아 기분은 좋은데 그건 잠깐이고 잘해야 된다는 걱정과 부담만 2만배는 더 생긴 것 같아요.” 실제로 서영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촬영하면서 “많은 배우들 가운데 거슬리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는 이번 영화가 오랜만의 촬영이기도 했지만 <질투는 나의 힘>(2003)으로 첫 스크린 연기에 도전할 때 만난 배종옥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질투는 나의 힘>은 첫 작품이라 짠한 게 있어요.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전 30대가 됐고…. (웃음) 다시 배종옥 선배님과 만났는데 감동적이고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인연은 민규동 감독과도 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에서 서영희는 임창정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커플인 하선애를 연기했다. 공교롭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맡은 역할과 같은 선애라는 이름이다. “KBS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복남이를 했었거든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잘됐잖아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똑같은 이름 두번하면 영화 대박날 텐데라고 말했어요. (웃음)”
배종옥, 민규동 감독과의 재회, 함께 연기하고 싶었던 유준상과의 만남까지. 서영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다. 서영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배종옥이 연기한 김인희 캐릭터가 탐난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욕심낼 수 없는 역할이지만 그 나이가 되면 꼭 해보고 싶어요.” 이 말의 뜻을 곰곰이 곱씹어보자. 서영희는 김복남 캐릭터로 대중에게 또렷이 각인됐지만 사실은 그전부터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발산해왔다. 그러니 이제 김복남은 잊어도 좋을 것 같다. ‘5월의 신부’ 서영희는 이제 더이상 남편 복 없는 여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