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개봉해야 마땅한 동시대 최고 화제작들
2011-05-1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영화제, 5월 10일부터 22일까지
<공포의 변호사>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9주년을 맞아 5월10일(화)부터 22일(일)까지 기념영화제를 연다. 수입되고 개봉되어야 마땅함에도 상업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을 거라는 핑계로 국내 수입업자들에게 외면받은, 동시대 가장 뛰어난 최신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바벳 슈로더의 <공포의 변호사>, 스티브 매퀸의 <헝거>, 파올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 코스타 가브라스의 <낙원은 서쪽이다>, 브루노 뒤몽의 <하데비치>, 페드로 코스타의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다. 특별 상영도 있다. 지난 4월9일 세상을 떠난 미국 감독 시드니 루멧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데뷔 초기작인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와 그가 유작으로 남긴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상영한다.

한국에는 <위험한 독신녀> <머더 바이 넘버>와 같은 스릴러 감독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바벳 슈로더는 때로는 자만과 도취로 가득 찬 실패작을, 때로는 같은 에너지로 괴작을 만들어온 폭넓고 정력적인 영화 장인이다. <공포의 변호사>에서 그가 관심을 기울인 건 국제변호사 자크 베르제스다. 1950년대 이후부터 명성을 쌓기 시작한 베르제스가 그동안 변호를 맡아온 인물들 자체가 흥미롭다. 좌파와 우파 가릴 것 없는 테러리스트들, 전쟁 범죄자들, 나치들, 카를로스 자칼 같은 국제암살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무시무시하다. 그러니까 베르제스에 관한 다큐다. <일 디보>는 최근까지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의 유일무이한 희망인 파올로 소렌티노의 대표작이다. 토니 세르빌르라는 걸출한 배우를 전면에 세워 20세기 초 이탈리아 정계를 호령했던 실존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입체적인 구성과 블랙 유머의 감성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낙원은 서쪽이다>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작품인데 프랑스로 밀입국한 그리스 청년이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국경을 혹은 여러 지방을 거치며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겪게 되는 정치적 로드무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의 노년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낭만적 연출력과 인간애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일 디보>

브루노 뒤몽의 <하데비치>는 여전히 혹은 더 본론적인 자리에서 신과 인간의 사이를 들여다본다. 기독교의 신을 사랑하는 소녀와 이슬람의 신을 따르는 소년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신앙심이 깊은 소녀는 소년의 다른 종교를 접하면서 어떤 성장과 혼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브루노 뒤몽이 새롭게 만든 <무셰뜨>(감독 로베르 브레송) 버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페드로 코스타의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코스타는 샹송 가수이면서 영화배우인 잔느 빌라바르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다음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빌라바르가 속해 있는 공연과 그 준비과정을 언제나처럼 아름답고도 엄격한 공기로 포착해낸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는 어느 비오는 날 밤 결혼식을 치른 다음 별안간 세상을 뜬 아름다운 여인 앙젤리카의 시체를 찍으러 갔다가 죽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린 젊은 사진사가 주인공이다.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환영들로 가득하면서도 말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청량한 죽음의 상태를 그려내는 순간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젊은 감독의 정치적 영화를 보고 싶다면 1981년 아일랜드의 한 감옥에서 아일랜드 공화군 보비샌드가 실제로 벌인 옥중 투쟁에 관한 영화 <헝거>를,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고 싶다면 스파이크 존즈가 만들어낸 귀여운 괴물들과의 판타지인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면 된다. 모두 다 개봉을 촉구해야 할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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