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읽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랬는지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일각수의 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20대를 생각할 때마다 그 문장들이 먼저 떠오른다. 90년대 초반 언저리에 하루키를 읽은 내게, 하루키는 어쩔 수 없는 90년대의 얼룩이다. 트란 안 훙과 라디오헤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와 조니 그린우드의 조합은 추억을 정조준한다. 재차 고백하자면, 영화관에서 어쩔 수 없이 몇번이나 눈물이 핑 돌았다. 나오코와 와타나베, 미도리 때문이 아니다. 추억을 관통당했기 때문이다.
사운드트랙에서는 <나오코가 죽었다>가 가장 인상적이다. 와타나베가 외딴 바닷가에서 목놓아 우는 장면. 이때 화면에는 음악만 흐르는데 거대한 질량의 사운드가 들이닥치는 게 장관이다. 영화를 본 다음엔 이런 각성이 남는다. 나는 이 소설을 첫 키스도 하기 전에 읽었다. 이메일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러니까 60년대와 90년대가 별반 다르지 않게 여겨지던 시절에 읽었다. 이제는 결코, 절대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그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