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마키아벨리처럼!
2011-05-30
글 : 장영엽 (편집장)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 연기한 마이클 파스빈더

마이클 파스빈더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린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선술집에서 독일어 한마디 잘못했다가 저세상으로 떠난 미군 중위 아치 히콕스,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선택한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를 연기한 배우라고 말하면 좀더 친숙할 것이다. 파스빈더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스필버그의 전쟁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영화 <300>의 단역으로 얼굴을 비추던 그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아일랜드 공화군 출신 정치범 보비 샌즈를 연기했던 스티븐 매퀸의 <헝거>(2008)부터였으니까. 그러나 고작 3년 전부터 주목받게 된 서른세살의 뉴페이스라고 방심하면 큰코 다친다. 그가 마블의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이하 <퍼스트 클래스>)의 주연을 꿰찼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클 파스빈더는 2013년까지 모든 스케줄이 예약된 남자다. 그를 예약했었거나 지금 막 예약한 감독들의 리스트를 보자. <댄저러스 메소드>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헤이와이어>의 스티븐 소더버그, <프로메테우스>의 리들리 스콧, <트랜스>의 대니 보일, 제목 미정의 뱀파이어영화를 연출한다는 짐 자무시…. 이 소식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대중은 아직 파스빈더를 잘 알지 못하지만, 할리우드 내부 관계자들은 이미 그를 미래의 스타로 점찍어놓았다는 것.

마이클 파스빈더에 대한 감독들의 사랑에는 이유가 있다. 그를 캐스팅한 감독들의 개성으로 미루어볼 때 파스빈더는 상업영화와 인디영화, 블록버스터와 장르영화, 밝은 역할과 진지한 역할 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10년의 무명배우 생활 동안 갈고닦은 연기력이 파스빈더의 큰 자산이다. 그는 감독들이 주문한 연기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입히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퍼스트 클래스>의 경우 감독 매튜 본은 브라더후드의 창시자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에릭 렌셔)을 연기하는 그에게 ‘숀 코너리의 제임스 본드’를 주문했다고 한다. 코너리가 본드를 연기하며 보여줬던, 세련되면서도 선 굵은 남성성을 보여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파스빈더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 “나는 매튜가 주문한 내용을 에릭의 신체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생각하는 에릭은 목적의식이 대단히 투철한 사람이다. 그는 마키아벨리처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으며 결국 필요한 것을 얻는다.”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를 연기했던 이언 매켈런이 브라더후드 그룹의 리더로서 위엄과 파괴적인 힘을 보여줬다면, 파스빈더가 생각하는 <퍼스트 클래스>의 과제는 돌연변이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에릭 렌셔의 맹목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스빈더는 나치 수용소에서 학대를 받으며 인간에 대한 증오를 키웠던 렌셔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이후 엑스맨의 리더가 되는 찰스 자비에와의 갈등뿐만이 아닌, 에릭 렌셔만의 ‘자전적 드라마’를 목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로 마이클 파스빈더라는 이름을 좀더 빨리 떠올리게 될 것임은 물론이고.

사진제공 :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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