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의 제왕 혹은 천재. J.J. 에이브럼스의 신작 <슈퍼 에이트>(Super 8)가 지난 5월29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덥석 물어씹을 만한 떡밥이냐고? 물론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슈퍼 에이트>는 J. J. 에이브럼스의 자전적인 영화이자 스티븐 스필버그와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찬란한 유산에 대한 오마주다. 심지어 성장영화이자 괴물영화, 게다가 에일리언영화다. 대체 그 모든 걸 버무리는 게 가능하냐고?
떡밥은 또다시 던져졌다. J. J. 에이브럼스의 신작 <슈퍼 에이트>를 보기 위해 싱가포르 시내의 멀티플렉스에 모인 아시아 기자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던져대고 있었다. 이건 괴물영화인가? <클로버필드>의 속편인가? <로스트>의 괴물이 나온다는 게 사실인가? 알려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일까지 절대적으로 스포일러를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J. J. 에이브럼스의 신작을 아시아 최초로 보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특권 혹은 컬트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어떠한 정보도 없이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보기 위해 개봉날 극장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던 바로 그 기억의 소환 말이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한 <슈퍼 에이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이조차도 읽기 싫을 만큼 스포일러 결벽증에 시달리는 독자라면 이 페이지를 휙 넘겨버리고 곧바로 J. J. 에이브럼스와 엘르 패닝의 인터뷰로 넘어가도 좋다). 1979년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릴리안.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조이(조엘 커트니)의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아빠인 보안관 잭슨(카일 챈들러)은 비탄에 빠지고, 조이는 홀로 비극을 이겨내야만 한다. 탈출구는 있다. 조이는 아마추어 감독 지망생 찰스(라일리 그리피스), 마틴(가브리엘 바소), 캐리(라이언 리), 프레스턴(작 밀스)과 함께 ‘슈퍼 8’ (1955년 코닥이 개발한 것으로, 기존 8mm 필름·카메라의 성능을 개선한 시스템) 카메라로 좀비영화를 찍어 영화제에 보낼 계획을 세운다. 아이들은 엄마 없이 주정뱅이 아빠와 살아가는 조숙한 소녀 앨리스(엘르 패닝)를 여주인공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조이의 아빠는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앨리스의 아빠를 극도로 증오한다.
부모들의 반대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밤에 몰래 기차역에서 좀비영화의 한 장면을 찍기로 한다. 그런데 미공군의 운송열차가 갑자기 선로에 뛰어든 자동차와 충돌하면서 전복하고, 곧 미군 부대가 릴리안으로 들어와 사고를 수습한다. 문제는 그들이 수습해야할 것이 조각난 기차만은 아니라는 거다. ‘에이리어 51’에서 이송되던 거대한 괴물이 열차사고를 틈타 탈출했다. 게다가 이 괴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하고 자동차 부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괴물을 쫓던 군대는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아이들은 괴물에게 납치당한 앨리스를 찾기 위해 화염에 휩싸인 마을로 뛰어든다.
J. J. 에이브럼스에 따르면 <슈퍼 에이트>는 “코닥 이스트먼이 개발한 슈퍼 8 카메라로 영화를 찍던 1970년대 후반의 기억에서 시작된 영화”다. 어쩌면 J. J. 에이브럼스는 슈퍼 8을 이용해서 영화를 찍은 마지막 세대였을 것이다. 1965년 코닥 이스트먼이 제작한 슈퍼 8 카메라는 80년대 이후 소니가 비디오 캠코더를 개발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J. J. 에이브럼스는 여덟살의 나이에 슈퍼 8 카메라를 들고 괴물이 잔뜩 등장하는 아마추어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고, 친구들 중에는 이후 J. J. 에이브럼스가 제작한 <클로버필드>를 감독한 맷 리브스와 <300> <왓치맨> <슈퍼 에이트>에 참여한 촬영감독 래리 퐁도 있었다. 그러니까 <슈퍼 에이트>는 어린 시절 함께 아마추어 영화를 찍던 친구들이 30여년 만에 뭉쳐서 만들어낸 일종의 회고록인 셈이다.
70~80년대 스필버그와 엠블린에 바치는 오마주
만약 최초의 아이디어에서 멈췄다면 <슈퍼 에이트>는 70년대 후반에 유년기를 보낸 소년들의 성장영화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J. J. 에이브럼스의 영화다. 그는 오랫동안 네바다의 ‘에이리어 51’에서 열차로 운송되던 괴물이 사고로 세상에 풀려난다는 컨셉을 영화로 만들길 꿈꿨다. 캐릭터나 이야기는 전혀 없는 하나의 구상에 불과했다. J. J. 에이브럼스는 얼토당토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둘을 합치면 어떨까?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 그가 끌어들인 또 다른 사람은 역시 슈퍼 8 카메라로 아마추어 영화를 만들며 경력을 시작한 선배, 스티븐 스필버그다. “J. J.가 슈퍼 8으로 영화를 만드는 아이들 이야기를 엄청난 규모의 SF와 합치자고 제의한 순간, 나는 완전히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둘의 만남은 일종의 운명에 가깝다. J. J. 에이브럼스와 맷 리브스는 15살의 나이로 LA의 ‘슈퍼 8 영화제’에 자신들의 단편을 출품했고, 그걸 본 스필버그 어시스턴트의 제의로 스필버그의 오래된 8mm 영화를 재편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을 가진 자들을 위한 선물
사실 J. J. 에이브럼스로서는 제작자 스필버그의 참여가 <슈퍼 에이트>의 필요조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슈퍼 에이트>는 70~80년대 스필버그와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에 바치는 거대한 오마주에 가까운 영화다. 80년대 엠블린 영화들(<E.T.> <그렘린> <구니스> <백 투 더 퓨처> 등)은 소년소녀들의 성장을 초현실적인 소재로 버무려낸 오락거리였다. 많은 비평가들은 엠블린의 아이들이 판타지의 세상 속에서 유사가족을 찾아 정착하는 것이 보수적인 할리우드 정치학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돌아보면 지나치게 손쉬운 비판이었다. 오히려 엠블린의 영화들은 상처받은 아이들의 내적인 상처를 외계인, 차이나타운에서 구입한 작은 털북숭이 괴물, 시간을 달리는 자동차, 지하 동굴에 정박된 해적선을 통해 스크린에 물화하며 한 세대의 마음을 위로했다. 게다가 좀더 느끼한 소리를 하자면 무엇보다도 엠블린의 영화에는 꿈이 있었다. 관객의 소망을 완벽하게 대리 충족시켜주는 엔터테인먼트의 꿈이었다. 아마도 80년대 유년기를 보낸 세대에게 엠블린의 영화는 클래식의 위치를 마음속에서 점하고 있을 것이다.
J. J. 에이브럼스는 8mm 영화만들기와 엠블린 엔터테인먼트라는 두 가지 유년기의 기억을 <슈퍼 에이트>에서 되살리고 싶어 한다. 특히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지장은 이야기와 비주얼 곳곳에 진득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이건 막무가내로 과거를 돌아보려는 개인적인 회고록에 머무르는 영화는 아니다. 만약 100자로 <슈퍼 에이트>를 표현한다면 “<구니스>와 <E.T.>가 <클로버필드>를 만났을 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J. J. 에이브럼스는 여전히 J. J. 에이브럼스다. 그는 <로스트>와 <클로버필드>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 과시한 21세기적으로 세련된 장르 감각을 이 즐거운 회고록에 덧붙인다. J. J. 에이브럼스가 <슈퍼 에이트>에서 만들어낸 괴물은 마치 <클로버필드>의 괴물과 <E.T.>의 외계인을 합쳐놓은 듯한 존재다. 도대체 그런 존재를 우스꽝스럽지 않게 영화 속에서 창조해내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J. J. 에이브럼스를 대신해서 답하자면 이미 8mm 영화만들기와 엠블린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추억을 끝내주는 괴물/에일리언 장르와 버무린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니었던가. J. J. 에이브럼스는 ‘타임 워프’라는 개념으로 <스타트렉>의 역사를 새롭게 열어젖혔던 것처럼 여기서도 기막힌 아이디어로 서로 다른 장르와 이야기를 서커스하듯 뛰어넘는다.
J. J. 에이브럼스의 서커스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엠블린의 추억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슈퍼 에이트>의 퀼트처럼 직조된 이야기는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로튼토마토닷컴의 이른 리뷰어들 중에서 ‘유일하게’ 썩은 토마토를 집어던진 <Badass Digest>의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 “이건 대체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성장영화인가? 노스탤지어 영화인가? 미쳐 날뛰는 에일리언영화인가? 아니면 오해받은 에일리언영화인가? 이 모든 것의 어떤 결합인가? 영화는 결코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가? J. J. 에이브럼스는 <슈퍼 에이트>가 회고와 성장과 엠블린에 대한 오마주와 괴물과 에일리언 장르가 마구 섞인 칵테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떡 벌어지는(혹은 눈물이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건 정말이지 순수할 정도의 야심이다.
2011년에 당도한 엠블린 영화 <슈퍼 에이트>는 개인적인 향수를 미끼로 지금 할리우드가 잃어버린 순결한 오락영화의 즐거움을 재연하는 영화다. 일급의 떡밥에 이어지는 특급의 오락. J. J. 에이브럼스는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의 역사에 근사한 오마주를 하나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