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OH, SUNNY DAYS!!
2011-07-06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500만 관객 돌파한 <써니>… 좀처럼 식지 않는 열기, 왜?

6월19일은 <써니>에게 ‘써니’한 선데이였다. 강형철 감독의 <써니>가 주말 동안 27만1300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불러모으면서 총 관객수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로써 <써니>는 올해 초 개봉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총 관객수 약 479만명)을 제치고 2011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또, 개봉 당시 <트와일라잇> <오스트레일리아> <지구가 멈추는 날> 등 다소 부진했던 할리우드영화와 맞붙어 약 830만명을 불러들인 감독의 전작 <과속스캔들>(2009) 때와 달리 이번에는 6월22일 기준으로 <쿵푸팬더2>(450만명),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311만명),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196만명) 등 만만치 않은 여름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나온 성적이라 의미가 크다. 재미있는 건 개봉한 지 7주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써니>의 바람이 꺼질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6월22일 현재,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뜬 <써니>의 예매율은 19.44%로, 개봉 예정작 및 최신 개봉작인 <풍산개>의 17.23%와 <슈퍼 에이트>의 12.38%을 밀어내고 예매율 1위를 차지했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의 말에 따르면 <써니>는 평일에는 20~30%, 주말에는 무려 70%의 좌석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씨네21>은 <써니>의 흥행을 분석하고, 강형철 감독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써니>의 흥행 이유를 들었다.

월요일인 6월20일 오후 7시 CGV상암. 평일 저녁이라 극장 안은 다소 한산한데, 상영관 입구에는 한손에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 대여섯명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이중 한명인 이미선(46)씨는 “모두 근처 아파트 단지에 산다. 애들 밥 차려주고 아줌마들끼리 <써니>를 보러 나왔다. 애들이 엄마 세대 이야기라며 재미있을 거라고 추천하더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한상희(48)씨는 <써니>를 이미 한번 봤다. “지난주에 가족하고 봤는데, 내용상 여자들끼리 보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 데리고 나왔다. (웃음)” 지금 <써니>를 움직이고 있는 건 40대 이상의 중·장년 관객의 힘이다. CGV상암의 신기묘 매니저는 “현재 20~30대 관객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나 <슈퍼 에이트> 등 최신 개봉작에 몰려 있고, 40대 이상 관객, 특히 여성 관객이 <써니>를 선택하고 있다”면서 “덕분에 평일에는 22%, 주말에는 무려 70% 이상의 좌석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당장 상영관에서 영화를 내릴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써니>는 극장의 주관객층인 20, 30대를 비롯해 40대 이상 관객의 감성을 확실히 건드렸다. 영화의 배급사인 CJ E&M 마케팅팀 최민수 과장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가 그 시대를 산 30, 40대 이상의 관객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 시대를 살지 않은 20대 관객에게는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다”면서 “이는 ‘쎄시봉’, <나는 가수다> 등 현재의 사회적 트렌드인 ‘복고’와 잘 맞물린 것 같다”고 흥행 이유를 분석했다. <해운대> <퀵> <7광구> 등을 제작한 JK필름의 한지선 기획실장 역시 “1980년대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잘 연출한 것 같다. 그게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최민수 과장의 말에 동의했다.

향수를 넘어 대리만족 안겨줘

그러나 단순히 영화 속 과거 장면이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결론 내리는 건 다소 게으른 분석인 것 같다. 질문을 달리 던져보자. 사람들은 <써니> 속 과거 장면의 어떤 면에 흥미를 보였을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남동철 실장의 말이 이 질문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남동철 실장은 죽은 춘화(진희경)가 형편이 어려운 써니 멤버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이 영화가 대박날 거라고 생각했단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가 남성들에게 한때 우리 잘나갔지 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것처럼 <써니>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나를 위해 소중한 유산을 남기고 떠났구나 하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영화다. 사실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평소 꿈꿨던 판타지를 충족시키러 가는 거잖나. 그 점에서 <써니>의 기획은 영화의 완성도, 영화가 시대를 다루는 태도를 떠나 대중영화로서 영리한 것 같다.”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도 말을 전한다. “<써니>를 보고 아줌마들은 친구야 우리 다시 만날까? 이러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나름 화려했었어, 한때 나도 저 시대의 주역이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만족을 한다. 한마디로 현재 관객에게는 지금이 중요하다.”

세대별 관객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 말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써니>가 500만 관객을 돌파한 6월19일 일요일 CGV상암.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여고생 김미선(18)양은 “1980년대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김완선 정도? 어린 써니 멤버들의 이야기가 우리 학교 생활과 크게 다른 건 없더라. 우리 학교에도 칠공주, 일진 같은 게 있고. (웃음) 매점에서 싸우기도 하고 학교 축제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그냥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써니>가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몇주 전에 <써니>를 봤고 <슈퍼 에이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한 50대 아줌마 관객은 <써니>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어른 써니 멤버들이 왕따당하는 나미(유호정)의 딸을 구해주는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딸 같은 아이를 그렇게 못 때리지만 우리 아이가 왕따당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 장면이 의외로 통쾌하더라. (웃음)” 관객은 영화 속 과거 장면들을 통해 추억을 공유하면서 <써니>에 공감한다. 나아가 어린 관객이든 중·장년 관객이든 써니 멤버들의 무용담을 통해 현재를 확인하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1980년대, 복고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 하고 싶었던 건 40대 여성들의 인생과 그 아이러니함이었다. 무엇보다 그 세대의 무용담을 그리고 싶었다”는 강형철 감독의 말처럼 <써니>가 다루는 과거는 관객에게 ‘향수’가 아니라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려던 건 아니었을까.

1980년대라는 시대 풍경을 비롯해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나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와 같은 귀에 익숙한 1980년대 인기 팝송, 젊은 세대들을 염두에 둔 듯한 빠르고 세련된 편집 등 영화의 여러 요소를 아우르는 강형철 감독의 연출력은 남녀노소 관객들을 쉽게 이야기로 안내했다. 전작인 <과속스캔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휴먼드라마, 가족영화 장르의 힘을 재확인했다. 심재명 대표는 “강형철 감독은 여러 세대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이야기의 군데군데 배치할 줄 아는 것 같다. 그 점이 어린 세대와 어른 세대 모두 만족시킨 것 같다”면서 “가족영화는 장르 특성상 개봉 초기에 관객을 파워풀하게 불러모으는 힘은 다소 약할지 몰라도 어느 지점만 거치면 불이 확 붙는다”고 전했다.

과거의 흥행영화 공식과 달라

<써니>는 과거의 흥행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배우는커녕 대중에게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와 스크린에 한동안 나오지 않던 중견배우가 단체로 주인공을 맡았다. 이로 인해 이야기가 다소 산만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써니>에 흥행을 보장할 만한 확실한 요소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개봉 첫주에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가차없이 극장 간판에서 내려지는 현실에서 <써니>가 여름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역시 개봉 전 흥행할 만한 요소가 없었던, 그러나 흥행에 성공한 <헬로우 고스트>와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제작·배급한 N.E.W.의 장경익 이사는 SNS를 통한 마케팅 환경을 그 이유로 꼽는다. 장경익 이사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역시 개봉 2주째 잠시 주춤했지만 SNS를 통한 입소문이 관객에게 퍼지면서 오래갈 수 있었다”면서 “물론 SNS가 현재의 배급 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키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매주 극장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어떤 면에서 불편한 장면이 있긴 하나 대중의 눈높이를 최대한 고려했다는 점에서 <써니>는 <과속스캔들> <해운대> <헬로우 고스트> 등 최근 흥행영화의 계보를 잇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이는 관객보다 한발 빠른 기획을 하거나 스타감독이 연출하고 스타배우가 출연했던 과거의 흥행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다만 <써니>의 흥행으로 우려되는 건 <써니>의 아류작이 연이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과거 <친구>가 개봉하면서 유사 조폭영화가 등장했고, <추격자> 이후 스릴러영화가 봇물 터진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해운대>를 연출한 윤제균 감독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써니>는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빠른 편집, 개성있는 캐릭터 등 이른바 강형철표 요소들 때문에 흥행할 수 있었던 거지 이 작품이 흥행했다고 해서 다른 감독이나 제작자가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관객에 대한 진정성은 그대로 가지되 또 다른 기획을 고민해야 한다.” 어쨌거나 <써니>가 어디까지 ‘써니’할 수 있는지가 지금부터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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