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冷たい熱帶魚 (1949)
감독 윤용규
상영시간 76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한국어
자막 한글 / 출시사 한국영상자료원, 블루키노
<전후의 풍경> 冷たい熱帶魚 (1955∼60년)
감독 박남옥, 신상옥, 김소동, 권영순
상영시간 410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한국어
자막 한글 / 출시사 한국영상자료원, 블루키노
화질 ★★★ / 음질 ★★☆ / 부록 ★★★
배우 최은희가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1960년대 작품들을 보며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최은희라는 배우에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런 것이다. 그녀는 전통적인 한국 여성상을 상징하는 배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최은희에 대한 기억이 대개 그녀가 1960년 전후에 출연한 작품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최은희가 연극 무대에 서고 영화에 데뷔한 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몇년 전이며, 그녀는 <새로운 맹서> <마음의 고향> 등의 작품으로 일찍이 이름을 알린 배우였다. 내가 지금껏 접한 최은희의 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해봐야 <무영탑>과 <지옥화> 정도다. 그녀가 서른 가까운 나이에 출연한 작품들이고, 사실 그런 작품들마저 보기가 쉽지 않다. 배우로서 그녀의 초기 얼굴을 보고 싶었던 관객에게 희소식을 전한다.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은 최은희의 출연작 중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작품인 <마음의 고향>을 비롯해 비교적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지옥화>와 <돈>을 드디어 DVD로 내놓았다.
최은희는 세 번째 출연작인 <마음의 고향>으로 배우의 자리를 확립했다. 해방기를 대표할 만한 한국영화이자 최초의 불교영화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이후 맡을 역할의 한 원형을 창조했다. 남편과 어린 자식을 여읜 과부의 섬세한 내면 연기는 십여년 뒤의 작품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그것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동자승과 마주한 목가적인 장면도 좋지만, 노승에게 지지 않고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다. 갓 스무살을 넘긴 여배우의 단단한 연기 속에 대배우의 자질이 이미 깃들어 있다. 이탈리아 포스트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인 <아두와와 그녀의 친구들>보다 2년 앞서 비슷한 소재에 도전한 <지옥화>는 최은희가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다. 잘록한 허리에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뇌쇄적인 눈길을 보내는 그녀를 보고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거머리에 온몸을 물리면서 연기했다는 클라이맥스는 혼을 빼앗을 정도로 장렬하다. 그즈음 <지옥화>의 최은희와 <검은 머리>의 문정숙이 연기한 팜므파탈에 비해 요즘 한국영화의 팜므파탈은 시시하기 그지없다. 최은희는 1958년에만 8편의 영화에 등장했는데, <어느 여대생의 고백>이 성공한 반면 <지옥화>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관객은 <돈> 같은 영화에서의 최은희 모습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1950년대 빈곤한 농촌경제의 보고서이자 <지옥화>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뒤엎는 <돈>에서 그녀는 가련한 시골 처자로 분했다. 남루해진 한복에 임자 잃은 돈을 주워 담는 장면에서 안타까움과 서늘함이 엇갈린다.
<마음의 고향>은 낱장으로 출시됐고, <지옥화>와 <돈>은 <전후의 풍경>이란 제목이 붙은 박스세트에 포함됐다. 2005년에 일본에서 발견된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바탕으로 제작된 <마음의 고향>의 DVD는 훌륭한 화질을 보여준다. <전후의 풍경>은 한국전쟁 이후 출현한 한국영화 중 사회적 기록으로 가치가 높은 네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미망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의 역사적 데뷔작이다. 감독 본인의 분투하던 삶을 반영하듯 당대의 여성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실로 놀라운 작품이다. 문정숙, 김진규, 최무룡이 출연한 <표류도>는 박경리의 원작을 멜로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50년 전의 신파가 별로 변하지 않은 채 작금의 통속적인 TV드라마로 이어져 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박남옥의 근황과 인터뷰를 담은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꿈>과 꼼꼼한 해설 책자를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