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활이 가진 속성을 그대로 액션화했다”
2011-08-16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최종병기 활> 김한민 감독 인터뷰

-직접 활쏘기를 연습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실력인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웃음) 1년 정도 속성으로 배웠는데,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거나 내가 움직이면서 맞힐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영화에서 과녁에 맞는 화살은 직접 내가 쏜 거다. 에어건 같은 걸로 쏠 수도 있는데, 화살 깃이 흩트러져서 보기가 싫더라. 명색이 활영화인데, 깃털이 엉망이면 안되겠다 싶어서 직접 쐈다.

-활을 공부해보니 어떤 매력이 있던가.
=일단 우리나라의 활이 가장 진화돼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크기는 작으면서도 장력이 좋다. 서양 활은 크게 휘어져 있지만 우리나라 활은 휘어진 활의 양쪽을 다시 부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더라. 대나무와 참나무, 뽕나무를 민어부레로 접착해서 만든다는데, 1년에 딱 한 시기에만 만들 수 있다. 화살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영화에 쓰인 육량시나 애깃살 외에도 많은 화살이 있었다. 무엇보다 활은 선 자세에서 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진짜 오리지널한 사법은 기마사법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구려 벽화에도 그려져 있듯 사냥과 전투를 위한 사법이 한국의 전통이었다는 거다. 역사를 보면 주몽이나 이성계 같은 왕들도 모두 활에 능통했고, 지금까지 단절되지 않은 전통 중 하나인데, 왜 활을 부각해서 만든 영화가 없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조선에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왜 그대가 인재가 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지 않나.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최종병기 활>을 만들면서, 그동안 활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것도 있을 것 같다.
=활이라는 건 긴 거리를 두고 싸우는 무기다보니 액션의 박진감을 만들기가 어려웠겠더라. 서로 멀리서 쏘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보여주면 재미없지 않나. 그래도 <최종병기 활>은 나름의 드라마구조가 있었고, 게다가 활과 화살의 종류에 캐릭터를 매칭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그림이 나올 거라고 봤다.

-액션의 컨셉은 어떻게 고민했나.
=활이 가진 속성을 그대로 액션화하면 좋을 것 같았다. 겨냥하는 순간의 정적인 느낌과 날아갈 때의 스피드, 타격될 때의 파열감 같은 게 모두 액션의 요소였다. 그런데 이 과정을 구성하다보니 컷 수가 많아지더라. 반복적인 장면을 피하다보니 다양한 앵글이 필요했다. 사운드상에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부각하려고 했다.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다가오는 소리의 질감이 지닌 차이, 일반 화살과 육량시가 내는 소리의 차이 등을 구현하고 싶었다. 사운드팀에 이야기했더니 “애리조나 사막에 가서 화살 소리를 따와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말 그렇게 했다. 그런 노력 때문에 액션의 ‘엣지’가 살지 않았을까 싶다.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었나.
=플롯에서는 <아포칼립토>의 추격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인 배경이나 캐릭터가 없다보니 허한 느낌이더라. 하지만 그처럼 미니멀한 구조로 만들어보고픈 욕구는 강했다. <에너미 앳더 게이트>의 소련군 병사와 독일 대령의 대비가 주는 느낌이 이 영화에 들어온다면 쾌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김성수 감독님의 <무사>는 이 영화의 리얼리티와 액션을 만드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됐다. <무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질감을 구현하기는 힘들었을 거다.

-자인이라는 여성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민폐 캐릭터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남자들보다 아녀자들이 활을 더 잘 쏘았다고 하더라. 실제로 1950년대까지 정부에서 주최하는 활쏘기 대회가 있었고, 당시 우승을 차지한 사람들이 대부분 아녀자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자에게 상을 주는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도 있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활을 쏘는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 자인을 만든 거다. 사실 <최종병기 활>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던 버전도 있었다. 제목을 말하자면 ‘화냥년의 복수’다. (웃음) 그러니까 만약 압록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온 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고향에 돌아온 여성의 80, 90%가 자살을 했다더라. 이혼율도 높았다고 한다. 사대부들의 가식적인 면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끌려갈 때는 숨어 있다가 돌아오니까 나몰라라 하는 건 비열한 짓이지 않나. 바로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 (웃음)

-영화에서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이 많다. 개, 말, 노루, 무엇보다 호랑이의 등장을 놓고 말이 많았을 것 같았다. <극락도 살인사건>의 열녀귀신 같은 캐릭터처럼 보였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산신령이나 수호신 같은 느낌을 원했다. 그래서 황호가 아니라 백호가 어떨까 싶기도 했다. 안 그래도 CG팀에서 이 장면 때문에 많이 걱정을 하며서 제발 백호만은 참아달라고 하더라. (웃음) 호랑이를 넣은 건 왠지 나와줘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민족적인 정서 면에서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보면 경외시하면서도 민화에 그릴 정도로 친근하게 느꼈던 동물이지 않나. 등장하는 것 자체로도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더라.

-주인공인 남이보다도 쥬신타와 그의 일당인 니루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했을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면 그들에게도 훨씬 더 많은 전사가 있었을 것 같은 인상이다.
=처음에는 그 무리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았다. 수화로 대화하는 노가미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쥬신타와 약간의 동성애적인 느낌이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 배우인 료헤이가 연기했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서 그런 캐릭터로 만든 게 아니라 원래 듣지 못하는 만큼 다른 촉이 발달한 전사로 설정했었다. 그외에 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전사와 채찍의 달인, 그리고 형제로 설정한 니루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이와의 균형을 볼 때, 총합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액션사극은 영화보다도 오히려 TV드라마를 통해 많이 보여졌다. 지금 방영 중인 <무사 백동수>나 <계백>도 있지만 <추노>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도 있었다. 그들과의 차별점도 크게 고민했을 것 같다.
=일단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무협적인 액션을 피하려고 했다. 무술감독이 그래서 더 답답해하고 힘들어했을 것이다. 현란한 액션 대신 실제적인 액션을 만들면서 무술팀의 역할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화살이나 칼에 맞아 쓰러질 때나, 말에서 떨어질 때의 타격감은 무술팀이 아니면 연기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캐릭터나 이야기 면에서는 퓨전사극의 함정을 피하려 했다. 자칫하면 너무 정형화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사극이 될 것 같더라.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생각하고 있나. 혹시 또 사극인가.
=당분간은 사극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최종병기 활>에서 구현한 액션을 토대로 해서 임진왜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일단 그전에 준비 중인 작품은 미스터리 스릴러 사극이다. 어떤 픽션보다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사극은 스탭들의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돼 있는 안정화된 장르다. 그런 두 가지의 매력 때문에 사극에 끌린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