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8월이다. <고지전> <퀵> <7광구>에 이어 올여름의 마지막 한국 블록버스터인 <최종병기 활>까지 공개됐다. 앞서 개봉한 영화에 비해 다소 관심에서 멀리 있던 프로젝트였지만 기자시사 뒤의 반응만큼은 앞선 영화들 못지않은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지난해 개봉한 <아저씨>와 비교할 수 있는 날렵한 오락영화라는 평가다. <최종병기 활>이 지닌 대중영화로서의 전략과 미덕을 살펴보고, 영화를 준비하면서 직접 활쏘기를 연습했다는 김한민 감독도 만났다. 이번 여름의 극장가에서 놓치면 안될 또 한편의 영화다.
<최종병기 활>은 3D영화가 아니다. 대규모의 오픈세트나 CG로 창조한 공간을 통해 크기를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 숨겨진 역사를 통해 역사관의 전환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2011년 여름시장에 뛰어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마지막 주자인 <최종병기 활>의 야심은 오로지 한국 고유의 활이 지닌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사극영화와 드라마에서 부수적인 무기로 활용되던 활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영화의 의지는 앞서 개봉한 <고지전>과 <퀵> <7광구>에 비해 작아 보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8월1일 공개된 <최종병기 활>은 이러한 야심이 오히려 상당히 구체적이고 또렷한 과녁이었다는 걸 입증했다. 영화는 오직 한 장의 활이 품은 쾌감을 폭발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활의 매력을 중심에 둔 이야기
영화에서 활을 쥔 남자는 활쏘기를 여흥삼아 살고 있는 남이(박해일)다. 어린 시절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그에게 남은 건 유일한 혈육인 동생 자인(문채원)과 아버지가 남겨준 활뿐이다. 아버지의 친구인 김무선(이경영)의 보살핌 속에서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과거를 보거나 무관이 될 수도 없는 처지인 그는 공부와 무예연마를 작파한 채 어떤 의지나 기대도 없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무선의 아들인 서군(김무열)이 자인과 혼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자인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는 남이는 동생의 혼인식 날, 한 켤레의 꽃신을 남기고 떠날 채비를 차린다. 그런데 하필, 그날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짐승 떼처럼 몰려온 청나라의 병사들은 조선인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며 인질을 사냥한다. 뜻밖의 재난에 자인과 서군 또한 포로로 잡힌다. 역적의 자식이 겪는 회의, 그리고 남이와 자인의 형제애로 활시위를 당기던 영화는 자인의 납치와 함께 시위를 놓아버린다. 이때부터 동생을 구하려는 남이의 활은 조선 땅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까지 날아간다.
<최종병기 활>은 <극락도 살인사건>과 <핸드폰>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순천에서 보낸 그는 뒷동산의 활터에서 종종 활 소리를 들었다. “활이 날아가는 소리, 그리고 과녁을 맞히는 타격의 소리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뒤 김한민 감독은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3부작’을 생각했고, 결국 병자호란의 한복판에서 활을 쏘는 남자를 떠올렸다. 이때만 해도 그가 겨냥한 과녁은 ‘활’보다는 ‘병자호란’이었다. 백성을 버린 임금의 배신과 그런 임금을 믿었던 남자의 분노, 북방의 만주족이 지닌 뿌리 등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현재에도 유효한 울림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최종병기 활>의 ‘제로 버전’은 압록강의 뗏목장이 무대였다. 청나라에 끌고 갈 인질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주인공인 남이가 정혼자였던 자인을 만나는 거다. 자인을 구하려고 인질들 사이에 봉기를 일으키고는 자인과 탈출하는데, 정혼자와 함께 붙어있다보니 박진감이 느껴지지 않더라. 결국 다시 활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구조로 선회했다.” 이야기의 구조가 바뀌면서 자인에게는 서군이라는 다른 정혼자가 생겼고, 남이에게는 탈출 대신 추격이라는 미션이 부여됐으며 역사적 메시지는 몸집을 줄였다. 김한민 감독에게는 관객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던 전작에 대한 반대급부적 선택이기도 했다. “나로서는 장르적인 풍부함을 위한 노력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관객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싶더라. 조금은 거칠더라도 메시지나 감동을 쉽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활의 에너지를 묘사하려다보니 장르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으로서는 관객을 위해 한발 물러선 것이었지만 이야기와 메시지의 크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은 태도는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오빠의 이야기에서 납치된 연인이나 가족을 찾기 위해 말을 달리던 서부극의 사나이들을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최소한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질주의 에너지를 영화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보자면 <테이큰>이나 <아저씨> 같은 작품을 연상할 수도 있다. 수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보자면 이야기의 빈약함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최종병기 활>의 이야기는 딱 필요한 만큼의 감정을 설명한다. 액션을 강조했던 이전의 한국 사극영화들 가운데에서 <최종병기 활>의 모델을 찾자면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활을 주무기로 삼았던 진립(안성기)이란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무사>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만을 설정한 뒤 액션의 쾌감에 밀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한 영화였다. <최종병기 활>의 명징함 또한 영화에서 날아가는 화살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과녁을 향해 집중하는 대중영화의 에너지
<아포칼립토>의 추격전이 지닌 심플한 매력을 담고자 했고, 기존의 사극영화나 드라마가 지닌 무협적인 액션은 지양하려 한 김한민 감독은 활의 강도와 스피드를 활의 성격만큼이나 직접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시위를 당기고, 쏘고, 맞는 활쏘기의 과정 자체에 액션의 쾌감이 모조리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활시위를 당길 때 활이 뒤틀리는 소리와 조금씩 흔들리는 화살, 목표물을 노리는 눈빛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서스펜스, 순식간에 날아가는 화살의 스피드, 그 화살이 상대방에게 맞는 순간의 물리적 타격감은 <최종병기 활>의 액션을 폭발시키는 요소들이다. 흔히 영화에서 무기의 위력을 강조하고자 쓰이는 관습적인 연출 또한 <최종병기 활>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무기에 좌충우돌하는 적의 소동을 웃음으로 풀어내거나, 휘둥그레한 눈과 떡 벌어진 입의 리액션을 삽입하는 등의 꼼수 말이다. 오히려 극중에서 남이가 대항하는 쥬신타(류승룡)와 그의 무리는 남이보다도 더 강한 활과 체력, 그리고 조직력을 갖춘 전사들로 묘사돼 있다. 이러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남이가 상대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거나,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파악하고, 시간차 공격을 노리는 등의 작전을 벌이는 것도 온당한 설정일 것이다. 무엇보다 <최종병기 활>의 액션을 실제에 가깝게 만든 건 쏠 때마다 줄어드는 화살의 개수다. 쏘았던 화살을 다시 줍거나, 적이 쏜 화살들을 수거하고, 때로는 직접 만들고, 심지어 몸에 맞은 화살을 뽑아 쏘기도 하는 세밀한 설정은 영화의 결정적 순간에 감정적인 울림까지 증폭시킨다. 캐릭터와 무기, 액션의 스타일이 흥미로운 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병기 활>의 후반부는 한국 액션의 인상적인 성취로 회자될 듯 보인다.
한국 대중영화의 특징 가운데 때로는 장점이고 때로는 단점이 되었던 것은 영화의 매력을 저인망식으로 낚으려는 태도였다. 어떤 장르든 어떤 소재든 웃음과 슬픔이 짝패를 이뤄야 하고,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강박은 곧 소재가 지닌 흥미와 장르의 본래적인 즐거움을 저해시키곤 했다. 그에 비해 <최종병기 활>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모두 소재를 위해 고민됐으며 촬영과 연출 또한 소재의 에너지를 발현하는 데에 집중한 영화다. 오직 한 과녁만을 향해 날아가는 <최종병기 활>의 궤도는 분명 흔히 볼 수 없었던 대중영화적인 미덕일 것이다. 일타필살(一打必殺), 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