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공작소]
[영상공작소] 이야기에 맞추어 배치하라
2011-09-01
글 : 지민 (영화감독)
지민 감독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3) - 종이 편집하며 빈곳 메우기

1. 종이 편집이란?

캐릭터를 만들고, 영화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찾았다면 이제 그 재료를 ‘이야기’에 맞추어 제대로 배치할 차례입니다.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편집을 하기 이전에, 종이 편집을 해보면 영화의 빈틈을 메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얼개를 한눈에 보기에도 좋고요. 종이 편집은 말 그대로 종이로 먼저 편집을 해보는 거예요. 어떤 화면과 어떤 소리를 사용할지, 어떤 사진을 먼저 놓을지, 어디에 붙일지를 문서로 정리해보는 겁니다.

먼저, 이야기의 줄거리를 한번 쭉 적어보세요. 줄거리를 보면서 영화가 어떤 장면으로 시작할지, 누가 등장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이렇게 써놓은 줄거리가 우리 영화의 ‘시놉시스’가 되는 겁니다. 내레이션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영화의 전체 길이는 어느 정도가 될지 등의 간단한 개요도 함께 적어둡시다. 세부적인 내용은 실제 편집을 하면서 수정될 수도 있으니, 큰 얼개를 정하고 부분부분 아이디어를 메모 해두는 것도 좋겠죠.

시놉시스가 완성됐다면 이를 바탕으로 사용할 자료들을 정리해봅시다.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편집 프로그램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일기장이나 물건처럼 새로 촬영해야 하거나 스캔을 받아야 하는 것을 구분해둡니다. 나중에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두면 도움이 될 거예요. 이렇게 모아둔 자료를 순서대로 정리하면서 더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함께 적어둡니다.

2. 스토리보드에 이야기를 적어보자

이제 스토리보드를 이용해 보다 구체적으로 종이 편집을 해볼게요. 위 사진처럼 비디오와 오디오로 구분되어 있는 스토리보드를 이용합니다. 비디오에는 사진이나 동영상, 기타 애니메이션 등의 이미지 자료를 순서대로 배치합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사진을 인화해서 붙여놓아도 되고, 번거롭다면 간단한 설명으로 대신해도 좋습니다. 편집 단계에서 자막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나 효과를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기에 미리 메모해두세요. 오디오에는 영화에서 들리게 될 모든 소리를 쓰는데, 대사, 효과음, 내레이션, 음악 등으로 구분해서 적어보세요.

3. 빈틈 채우기

스토리보드에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옮겨 적다보면 빈틈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엄마의 이야기는 한참인데, 쓸 수 있는 사진은 한두장뿐이거나 사진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장면들도 있을 수 있지요. 이미 지나가버려서 촬영하기 힘든 장면들도 있고요. 화면을 더 재미있게 꾸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집에 있는 인형을 이용해서 인형극을 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두 개의 선>(사진1, 2)을 만들 때, 종이인형을 사용했어요. <두 개의 선>은 제가 임신하면서부터 촬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영화에서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문득 어릴 때 종이인형에 옷을 갈아입히며 놀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인 저와 제 파트너의 모습을 딴 종이인형을 만들고 나무젓가락을 붙여 인형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인형극을 해서 넣으니 사진에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야기가 잘 전달된 것 같았고, 촬영을 위해 인형극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가족들끼리 함께 영화를 만든다면 재밌는 놀이라 생각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3, 4, 5에서 보이는 <늑대와 돼지>(オオカミとブタ-オオカミわブタを食べようと思った。>는 유튜브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작품인데요, 연속된 사진을 수천장 찍고, 인화한 사진들을 연결해놓은 다음 다시 수천번 연속촬영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6번 사진은 제이미 케네디와 스투 스톤의 <Circle Circle Dot Dot>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입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레고 인형을 가지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당장 사진을 수천장씩 찍어서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영상 작품들을 참고해서 화면을 구상해보세요.

화면과 함께 고민해야 할 또 하나는 바로 소리입니다. 영상 작품은 보이는 화면에 집중하다가 상대적으로는 소리에 신경을 덜 쓰기도 하는데요, 다양한 소리를 통해 영화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소리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요. 대사나 내레이션은 직접 읽어서 녹음할 수 있고, 화면에 어울리는 ‘효과음’을 만들어 넣어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스토리보드를 보면서 어떤 소리가 들어가면 좋을지 상상해보세요. 대자로 뻗은 채 거실에서 자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사용한다면 코고는 소리를 넣을 수도 있고, 달려가며 신나게 노는 아이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사용한다면 아이의 웃음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어요. 녹음기가 있다면 녹음기를 사용하고 없다면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에 있는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있어요. 캠코더가 있다면 영상으로 촬영하고 편집 단계에서 소리만 사용할 수도 있고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일상의 소리를 발견하는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해보는 건 어떨까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나 세면대에 물이 흐르는 소리, 동네 슈퍼의 시끌벅적한 소리, 키보드 치는 소리 등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리는 정말 많으니까요. 또 소리를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칼싸움을 재현하기 위해 젓가락을 부딪치며 소리를 내거나 걸어가는 장면을 위해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려보기도 하면서 소리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겨보세요.

필요한 대사나 내레이션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녹음하면 되는데요, 녹음할 때는 가능한 조용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소리만 담길 수 있도록 합니다. 최근에는 지역별로 미디어센터가 많이 있어서 비교적 싼 비용으로 녹음기를 대여하거나 녹음스튜디오를 빌릴 수도 있으니 근처에 미디어센터를 찾아 이용해보세요.

종이편집이 다 되었다면 마지막으로 스토리보드를 쭉 읽어보면서 내가 만드는 영화가 어떤 이야기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정리됐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봅니다.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영상 편집을 하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내용을 한눈에 보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이 마지막 점검이라 생각하고 꼼꼼히 훑어보세요.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한 문장으로 전체를 요약해보는 거예요. 어떤 캐릭터가, 어떤 갈등을, 무엇을 통해, 어떻게 풀어가는 이야기인지 말이죠. 정리가 잘된다면 이제 편집을 시작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