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은 근래에 본 어떤 영화보다 난해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완벽한 독해가 불가능에 가깝고 심연을 파고들수록 복잡하게 다가오지만 이번 영화만큼 머릿속이 복잡해진 적은 없었다. 그건 이 영화의 독특한 시간 개념에서 오는 듯하다. 유준상이 맡은 주인공 성준은 비슷한 상황을 거듭 겪게 되는데 그것이 연속되는 시간의 축에서 벌어지는 일인지 같은 상황이 다른 뉘앙스로 반복되고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성준은 선배 영호(김상중)와 선배의 여자 후배 보람(송선미)과 함께 술집 ‘소설’을 찾는다. 그는 이곳의 주인인 예전(김보경)을 만나는데 그녀는 한때 사귀었던 경진과 똑같이 생겼다. 이 상황은 영화에서 세번 되풀이된다. 그 세번의 일은 3일 동안 연이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한번의 상황이 서로 다른 시점을 통해 반복해서 보여지는 것도 아닌 듯싶다. 성준은 괴이한 시간의 덫에 갇힌 신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파멸과 죽음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외려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물론 홍상수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은 엿보인다. 성준이 벌이는 엉뚱한 일이나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희한한 반응은 여전히 우리의 웃음신경을 자극한다.
능력으로 보나 지면의 성격으로 보나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를 평가하는 건 내 몫이 아니(라는 점에 무척 안도하고 있)다. 확실한 점은, <북촌방향>은 홍상수 감독의 또 다른 도약대가 아닌가 싶다. 그의 영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반복과 차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최근 그의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키워드인 ‘우연성’ 면에서도 그렇다. 한동안 홍상수 감독에 시큰둥했던 영화평론가 김봉석 선배도 “<북촌방향>을 통해 홍 감독이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이번주 특집기사 이후에도 여러 평론가가 <북촌방향>에 관한 다양한 비평을 써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제작자는 사석에서 “<씨네21>이 홍상수를 너무 편애한다”고 비판했는데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자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전문지’를 표방하는 우리로선 거듭 진화하는 이 놀라운 예술가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
CINDI에서 본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도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한국영화계에 대한 분노가 거칠게 표출된다’는 소문과 달리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이 스스로에게 행하는 치유 또는 주술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 김기덕 감독의 자아는 두개, 세개로 분열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고통도 서서히 벗는 듯 보였다. 영화 속 그의 말처럼 “이건 다큐일 수도 있고 픽션일 수도 있”기에 그가 치유됐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아멘>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가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힘을 다시 찾은 듯 보인다. 우리는 홍상수 감독만큼이나 김기덕 감독의 특집기사를 자주 만들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