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스터클래스’라는 표현보다 ‘대화’라는 말이 좋아요. 질문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네요.” 미카엘 하네케와 클로드 샤브롤이 사랑한 매혹의 여배우는, 그녀를 보기위해 모여든 관객들에게 이토록 친근한 말투로 포문을 열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가르침을 받기보다 영화와 인생에 대해 툭 터놓고 담소를 나눈다는 느낌이었다. 7일 오후 3시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룸에서 ‘이자벨 위페르-나의 삶, 나의 영화’라는 주제로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다섯 번 여우주연상을 받은, 가장 뛰어난 프랑스 여배우”라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소개 아래 이수원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이자벨 위페르와의 만남은 시작됐다. 기조 특강 없이 관객이 묻고 위페르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마스터클래스 강연을 지면에 옮긴다.
봉주르! 안녕하세요(웃음). 1999년에 프랑스 대표단의 일원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는데 12년 만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새로 지은 영화제 전용관이 굉장히 웅장하고 인상적이네요. 어제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제 생애 그렇게 긴 레드카펫은 처음 밟아본 것 같습니다(웃음). 저는 올 여름 한국 배우들과 함께 홍상수 감독님의 신작 촬영을 마쳤습니다. 영어로 촬영했는데 프랑스인인 저도 외국어를 하고, 함께 출연한 한국배우 유준상, 문소리, 정유미, 윤여정씨도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흥미로웠어요.
홍 감독님과의 작업은 저에게 하나의 모험이었습니다. 비관습적이고 시적이며 우아한 그의 연출방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배우는 내면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고, 현실의 여행은 그런 배우의 인생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했어요. 이 두 가지 방식의 여행이 조화를 이루는 게 바로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촬영 당일에야 시나리오를 받고 연기하는, 그야말로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그런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줄거리가 궁금하시다고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저는 영화에서 세 가지 버전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각 버전의 인물들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까지만 얘기할게요.
제가 <피아니스트>의 여교수처럼 강렬한 인물을 종종 맡다보니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역할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란 상상이 주가 되는 직업입니다. 어떤 역할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아요. 제가 <보바리 부인>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보바리 부인이 실제로 어땠는지 누가 알겠어요? 저는 제가 보여주고 싶은 보바리 부인을 연기할 뿐입니다. 연기자는 그처럼 완전한 자유를 느끼며 작품에 임해야 합니다. 물론 그건 연기자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감독을 만났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지요. 감독은 미장센이나 분위기의 측면에서 배우들에게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게는 <의식>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함께한 클로드 샤브롤이 바로 그런 감독이었습니다.
인간 이자벨 위페르로서, 제 삶을 규정하는 프레임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에 대한 의혹과 확신, 이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는 점이 제 인생의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소망하는 모습과 실제로 삶에서 발견하게 되는 모습, 이 두 가지 요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