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널 보면 옛 홍콩이 떠올라
2011-10-10
글 : 주성철
두기봉의 신작 <탈명금>에서 순수한 삼류건달로 변신한 유청운

두기봉 영화에 유청운이 짧은 머리에 꽃남방을 입고 나온다면, 그건 무조건 봐야하는 영화다. 두기봉의 신작 <탈명금>에서 모처럼 그런 모습으로 등장한 유청운을 보는 건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두기봉 스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한 <무미신탐>(1995)을 비롯해 <진심영웅>(1998)과 두기봉의 수제자인 유달지가 연출한 <암화>(1998) 등에서 유청운은 ‘홍콩영화계 최고 인상파’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탈명금>의 유청운은 어딘가 좀 ‘모자란’ 모습이다. 계속 눈을 깜빡거리며 오지랖 넓게 아무 때나 나서는 조직의 늙은 똘마니다.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신 뒤 트림을 할 정도로 철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경찰서에 끌려간 형님을 보석으로 꺼내주기 위해 사방팔방 돈을 구하러 다니는 의리의 사나이기도 하다.

두기봉의 영원한 형제

1964년에 태어난 유청운은 양조위, 유덕화와 함께 출연한 TV시리즈 <녹정기>(1984) 등 홍콩 TVB 탤런트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동승 감독의 <신불료정>(1994)으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 국내에는 여명과 함께 출연한 <진심영웅>(개봉제목: <더 히어로>) 외에 각각 양조위와 장국영과 이연걸이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류맹의생>(1995), <색정남녀>(1996), <흑협>(1996) 정도만이 소개되어 그 진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홍콩영화계 내에서는 모든 감독과 배우들이 한번쯤 작업하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배우다. 가령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절은풍운>(2009)의 경우 작품을 연출한 맥조휘와 장문강 감독, 그리고 함께 한 상대 두 주연배우 고천락과 오언조 모두 ‘유청운과 함께 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두기봉, 위가휘의 <매드 디텍티브>(2007)가 개봉하면서 그 아쉬움을 얼마간 달랠 수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상관에게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하는 충격적인 모습은 그 카리스마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물론 <탈명금>의 유청운을 보며 왕년의 혈기나 광기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악당보다 더 험상궂은 형사를 연기하며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무미신탐>, 두 다리를 잃고 자기가 직접 만든 수레를 끌고 양손으로 줄을 타면서 복수에 나섰던 <진심영웅>, 라스트신의 거울 방에서 자신과 적의 잔상들이 눈부시게 비쳐지는 수십 장의 유리를 깨트리며 총격전을 벌였던 <암화>를 떠올려보면, <탈명금>의 유청운은 그냥 ‘바보’다.

향수를 부르는 의리의 사나이

그런데 이상하게 <탈명금>의 ‘표범’ 유청운은 계속 그 잔상이 떠오르는 인간적 매력으로 빛난다. 주식과 부동산 얘기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그는 두기봉의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정말 순수남의 결정체다. <천장지구>(1990)의 오맹달처럼 ‘형제’ 밖에 모르는 사나이고 한편으로는 <도성>(1990)의 주성치처럼 신묘한 재주를 지닌 것 같기도 한, 말하자면 ‘요즘 홍콩(혹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인간문화재 같은 남자다. 각박한 분위기의 <탈명금> 안에서 옛 홍콩의 정취를 머금은 남자라고나 할까. 그래서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그 ‘향수’라는 측면에서 두기봉의 또 다른 영화 <참새>(2008)의 임달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게 두기봉과 유청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원한 형제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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