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밋밋한 액션으로 완성된 생기없는 신화의 세계 <신들의 전쟁>
2011-11-16
글 : 주성철

타셈 싱의 <더 셀>(2000)과 잭 스나이더의 <300>(2007)이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이후 할리우드영화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내러티브와 별개로 설계된 듯한 판타스틱한 CG의 향연은 한동안 어떤 트렌드처럼 향유됐다. 실내건 로케이션 촬영이건 마치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세트처럼 사고하는 그 방식은 특수효과 테크닉의 발전에 따르는 자연스런 부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혹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엘 토포>(1970)나 <홀리 마운틴>(1973)처럼 세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론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한 단지 ‘빈약한 내러티브와 화려한 비주얼’이라는 이분법으로 구획짓기 힘든 뭔가가 있다는 인식하에 특수효과 만능의 시대에 있어 당대의 기술을 사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감성으로 흡수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신들의 전쟁>이 주목받은 이유 역시 그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던 타셈 싱이 그를 종결 혹은 확장할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이미 그는 <더 셀>은 물론 100% 야외 로케이션으로 완성한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을 통해 자신의 감각이 굳이 세트에만 한정돼 있지 않음을 과시한 바 있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찬 하이페리온 왕(미키 루크)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신들을 향한 전쟁을 선포하며 세상은 거대한 혼란에 빠진다. 인간 세계의 혼돈이 극에 달하자 인간들의 전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올림푸스의 규율을 지켜야 하는 신들은 자신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한명의 인간을 ‘신들의 전사’로 추대하기로 한다. 한편, 평범한 신분의 테세우스(헨리 카빌)는 하이페리온 왕의 폭정으로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에 나타난 예지자 페드라(프리다 핀토)는 그가 바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예언하고, 테세우스는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의 뜻을 대신할 유일한 전사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예지자의 말에 따라 신화 속 불멸의 무기 ‘에피루스의 활’을 찾게 된 테세우스는 하이페리온 왕과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한다.

어딘가 생기 없어 보이는 세트의 표면과 질감, 극도의 불안감을 동반하는 차가운 조명과 공기, 그리고 인물들의 흔들리는 눈빛 등 <신들의 전쟁>은 초반부에 드러나는 악의 무리 타이탄의 지하감옥 비주얼부터 타셈 싱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겹친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타셈 싱이라는 이름보다는 액션의 전시라는 연장선에서 <300>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할 영화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타셈 싱이 어떤 ‘원전’을 접하게 되면서 벌어진 자연스런 현상이랄까. 타셈 싱의 매력이 오리지널을 짐작하기 힘든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에서 왔다면 ‘신화의 세계’란 다소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MMA 기술들을 접목한 액션신들은 마치 한국 액션영화의 그것을 보는 듯 파괴력있는 맨손대결의 쾌감으로 완성됐다. 좁은 복도에서 수평 트래킹으로 펼쳐지는(그것도 여러 번!) 테세우스의 액션은 <올드보이>(2003)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젠 이렇게 넘겨짚는 것 자체가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닌 시대가 됐다. 액션 연기를 준비한 배우들이 서울액션스쿨에서 연습한 것 같다고 얘기해도 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종종 번쩍이는 남성적 액션신들, 그리고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타셈 싱 특유의 색감과 질감이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신들의 전쟁>의 문제는 그와 별개로 정작 매력적인 신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포세이돈과 아테나 등은 틴에이저 무비의 존재감없는 조연들처럼 느껴진다. 신에 도전하는 왕으로서 미키 루크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지만 테세우스 혼자 그 무거운 비주얼의 짐을 지기에는 벅차 보인다. 그리하여 세계관과 별개로 <300>을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로 소비했던 두터운 남성 관객층, 그리고 타셈 싱의 비주얼 그 자체를 갈구했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어딘가 어정쩡한 위치에 선 영화가 됐다. (<신들의 전쟁>은 2D, 3D 모두 개봉하며 기자시사회는 2D로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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