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싸움 대상 감별법
2011-11-25
글 : 김혜리
홍대 앞 상상마당 1층에서는 뮤지션 타블로의 신보 ≪열꽃≫의 가사를 손글씨와 레터링으로 옮긴 캔버스들이 그의 인터뷰 동영상과 함께 전시 중이다. 부르는 사람의 육체에서 나오는 랩의 유일무이한 억양과 지문만큼이나 개성을 감식할 수 있는 필체. 두 가지가 잘 어울린다.

10월30일

밀린 <BBC> 영화 팟캐스트를 들으며 빨래를 개는데, 서울에 사는 청취자가 보낸 사연이 소개됐다. 주한 영국인으로 짐작되는 이 애청자는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Shawshank Redemption>이 한국에서는 <쇼생크 탈출>로 개봉했다며 제목이 대놓고 스포일러라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해왔다. 추측하건대 주변 한국인 친구들이 이 지적에도 심드렁했던 점이 고국의 팟캐스트에 호소하고픈 심정을 발동시킨 모양이었다. 진행자 사이먼 마요와 평론가 마크 커모드는 “호오, 과연 그렇군요. 영화가 얼마간 진행될 때까지는 팀 로빈스가 탈옥을 할지 안 할지 모르잖아요?”라면서 공감을 표해주었다. 흠, 나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다. 덧붙여 <장화, 홍련>의 일본 개봉 제목인 <단스>(장롱)를 보고 뭐 이런 노골적인 힌트가 제목이냐고 내가 펄쩍 뛰자 일본 친구가 어깨만 으쓱했던 허무한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라디오에 사연이나 보낼까.

11월2일

SNS가 생활 속으로 들어온 이후 아니 내가 SNS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 이래, 먼 곳에 사는 친구들과 잡스러운 일상사와 오밤중의 망상을 나누는 일이 잦아졌고 이는 결과적으로는 사람들과 작심하고 마주앉아 대화하는 시간을 갉아먹었다. 오호 통재라? 그러나 도구를 일단 받아들었다면 구태여 이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너는 펫>의 언론 시사를 기다리다 능력과 독립적인 성격이 도리어 콤플렉스인 원작의 여주인공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고독한 작가 지망생과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상기한 나는, 개점 휴업 중인 페이스북 담벼락에 ‘스미레’라는 두 여자의 공통된 이름이 일본어 사용자에게 풍기는 뉘앙스가 무엇인지 일본에 사는 불특정 다수 친구들에게 묻는 메시지를 올렸다. ‘봉자’와 ‘티파니’ 같은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다혜’와 ‘문숙’만 해도 두 이름이 떠올리게 만드는 얼굴은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SNS는 정녕 유용했다. 못 본 지 13년째인 일본인 친구는 출장지 방글라데시로부터 “스미레는 제비꽃이라는 의미야. 작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독립적이고자 애쓰는 이미지를 가졌어. 일본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보다 그 곁에 겸손하고 가냘프게 서 있는 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도쿄의 페이스북 이웃은 “겉보기에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정신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입니다. <너는 펫>의 여주인공이 외강내유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 작명”이라는 설명을 보내왔다. 아하, 그렇군.

11월3일

스미레라는 이름에 관한 친구들의 말대로다. 로맨스로서 <너는 펫>의 원안이 갖는 차별적 소구력은, 연약하고 귀여운 여성이 은연중에 우대받는 사회에서 남자들의 열등감에 학을 뗀 기골장대하고 독립적인 여자가 남녀간의 권력이 역전된 예외적 관계를 경험하며 돌파구를 찾는다는 대목에 있다. 여기서 메시지를 보다 선명히 하려면 여자가 특출한 미인이 아닌 편이 낫겠지만 장르의 관행상 그 점은 눈감아두기로 하자. 각설하면 <너는 펫>은 여자쪽에 무게중심을 둔 이야기일 때 흥미로우며 시대와 접속한다. 반려동물도 아니고 애완동물 자격으로 ‘입양’된 미청년 모모는 원작 만화와 일본판 드라마에서 여자의 과부족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백지 같은 존재이며 초반부 과거사가 베일에 가려진 그의 진공 상태는 섹시한 신비로움으로 작용한다. (모세는 아니지만) 강물에 떠내려온 바구니에 담긴 사내아이를 우연히 건져올린 여자에게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애정과 책임감. 다시 말해 억압없이 스스로 그 방식과 규칙을 결정할 수 있는 관계. 이것이 <너는 펫>이 여성 관객에게 발휘하는 매혹의 핵심이다.

나는 이 원작을 2011년 한국에서 다시 각색하는 영화 <너는 펫>이 앞서 말한 핵심을 유지한 채 온 사회가 유능한 여성을 백안시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설정을 다듬기만 해도 즐길 만한 장르영화가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너는 펫>은 각색 과정에서 엉뚱한 지점을 손봤다. 패션지 에디터 은이(김하늘)의 직장 묘사는 일본 드라마에 견주어도 비현실적이고- 특히 ‘동업자’로 가득한 기자시사에서 더 커 보이는 약점이다- 배우 김하늘은 은이의 피로와 초조함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건강하고 사랑스럽다(사실 은이 캐릭터야말로 작품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의 30대 후반 여배우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녀가 보통 남자보다 건장하고 우월한 ‘커리어우먼’을 표현하기 위해 시종 신는 굽 높은 구두는 간혹 실제로 연기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모진 대접을 받아도 연신 고무공처럼 명랑하게 튀어오르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장근석의 캐스팅은 적절하지만 그의 모모는 어딘가 별나라에서 온 듯한 천진함이 덜하고 그냥 매우 멋있는 20대 젊은이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쓸쓸한 기운이 옅어진 여자와 강해진 남자의 로맨스는 원작의 요철을 깎아먹으며 평범한 연상연하 커플의 승강이에 근접한다. 또한 펫으로 입양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인지 이 영화의 모모는 동생이 떠맡기고 간 6개월 선불 세입자로 등장하는데 이 변화는 그가 펫 역할까지 수용하는 이유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어버린다. 세태를 반영하려는 시도의 흔적은 남아 있다. 도입부에서 꽃미남 이미지를 적극 소비하는 여자들의 모습이나 황혼 이혼에 직면한 은이 아버지의 일화가 그렇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들은 영화의 중심 삼각관계가 형성된 다음부터는 더이상 드라마의 흐름에 종합되지 않고 흩어져버린다.

11월7일

“당신의 아기는 남의 손에 맡기고 백인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평생 하녀로서 열일곱명의 백인 아기를 키운 흑인 여성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은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지만 목에 걸려 끝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강력한 오프닝이다. 인종차별이 극성스러웠던 미시시피주 흑인 여성들의 수난사를 그린 <헬프>는 달리 보면 영화 전체가, 첫 장면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할 수 없음’의 상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자유주의자 작가 지망생 스키터(에마 스톤)가 이 사회적, 심리적 실어증을 극복하도록 에이블린과 그 친구들을 설득하고 그리하여 봇물처럼 터진 말들이 책으로 묶여 파장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에이블린과 흑인 여성들이 말을 잃은 까닭은 1차적으로는 백인들의 물리적 보복이 무섭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그녀들의 삶이 어떤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대목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인터뷰의 존재 의의를 찾으며- “그래, 묻지 않으면 대답도 없어”- 직업적 아전인수의 감흥에 젖었다). 흑인 여성들의 침묵은 결코 할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재갈 물린 에이블린은 신에게 올리는 기도조차 글로 쓰는 것이 수월하다고 느끼고 시시때때로 가슴속에 아우성치는 이야기를 노트에 적는다. 스키터에게 사연을 구술하던 첫날, 입을 떼기 힘들어하던 그녀가 결국 자신의 공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시사적이다. 마침내 에이블린을 포함한 흑인 여성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었을 때 그것은 한데 모여 허위의 장막을 찢는 거대한 칼이 되지만 여인들은 미처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우린 그저 이야기를 한 것뿐이잖아.” 그런가 하면 지배계급인 백인 여성들의 언어 역시 다른 형태의 감옥에 갇혀 있다. 스키터의 남자친구는 “생각한 대로 말하는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야”라고 말한다. 한편 자신의 행동이 인종차별이라고조차 생각하지 않는 백인 마님들은 입을 열 때마다 진심과 진실에서 멀어진다. 그녀들의 언어는 이기심과 편견을 그럴싸하게 장식하고 명분을 끼얹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헬프>는 인종차별이 노골적으로 행해진 시대에 흑인 여성들이 감내한 고통에는 남성들의 그것과 다른 요소가 있었음을 일러준다. 그들의 노역에는 감정의 짐이 포함돼 있었다. 에이블린은 손수 키운 열일곱명의 주인집 아기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엄마처럼 유모를 따르던 백인 아이들은 자라서 고용주가 되어 그들을 하대한다. 혹은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차별한다. 살면서 무엇이 싸워야 할 대상인지 모를 때 감별법이 하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속이도록 만드는 모든 것들은 당신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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