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작품 <수취인불명>, 2번째 작품 <나쁜 남자> 등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만 보면 김기덕 감독의 전속 프로덕션이라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만드는 속도를 고려하면 LJ필름의 3번째 영화도 김기덕의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LJ필름이 그리는 영화사의 전모는 이제 막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이다. 송해성, 정지우, 민규동, 김태용, 변혁 등 쟁쟁한 젊은 감독들이 LJ필름에서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LJ필름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또다른 이유이다. LJ필름 대표 이승재(38)씨는 자신의 영화사가 감독들에게 장기적인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다. 기획아이템이나 시나리오 없이도 감독계약을 맺고 시나리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스템. “감독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영화의 질이 달라진다”고 믿는 프로듀서 이승재씨의 철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LJ필름을 만들기 전 <인샬라> <파란 대문> <인터뷰>의 프로듀서를 했던 이승재씨는 94년 처음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뒤 <복음과 상황>이라는 진보적 기독교 월간지를 창간해 3년6개월간 출판계에 몸담았던 그는 신씨네가 운영했던 영화기획아카데미를 거쳐 신씨네 마케팅 실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제작에 마음을 두고 시작한 일이라 <은행나무침대> 마케팅을 끝내자마자 소설 <인샬라>의 판권을 사서 프로듀서 신고식을 치렀다. <인터뷰>를 마치고 창립한 LJ필름은 영화계 밖에서 종잣돈을 끌어온 영화사. 5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포석이 가능한, 신뢰할 만한 자본이 이승재씨의 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쁜 남자> 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LJ필름에서 기대를 많이 한다던데 어떤가.
=김기덕 감독 영화를 제작하는 건 기본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하는 것이다. 이번엔 이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최근 분위기가 좋긴 하다. 기대를 한다면 그래도 김 감독 영화 중에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거다. 사실 이런 영화를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축적된 데이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대안없이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 하는 식이니까 앞에 개봉했던 작가영화들도 어려움을 겪은 거라고 본다.
-김기덕 감독 영화만 내리 2편을 만들었다. LJ필름이 김기덕 감독의 프로덕션이냐는 오해를 살 만한데 부담스럽지 않았나.
=사실 여러 감독들과 같이 하기로 했지만 김기덕 감독하고는 제일 나중에 얘기가 됐다. 그런데 워낙 이분이 작업을 빨리 하니까 먼저 만들게됐다. <나쁜 남자> 개봉도 안 했는데 벌써 다음 영화 얘기를 하고 있다. 우려를 하긴 했다. 주위에서도 김 감독하고만 하면 오해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고. 하지만 김 감독하고 1∼2년 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준비가 됐다면 먼저 하는 게 당연하다.
-<수취인불명>으로 손해를 많이 보지 않았나.
=다 합치면 2억원 정도 손해가 날 것 같다. 사실 2억원도 안 볼 수 있는 손해인데 김 감독을 프로모션하느라 돈을 써서 난 것이다. 베니스영화제를 겨냥해 자료집을 만들고 기자들 초청하고 하는 데 오버해서 돈을 쓴 게 있다. <수취인불명>뿐 아니라 김 감독을 프로모션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쓴 돈이라 예상 못한 손해는 아니다. 결국 <나쁜 남자>도 만들고 앞으로 만들 영화도 있고 해서 이렇게 쓴 돈은 이후 작품들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도 이렇게 예산보다 돈을 더 쓰면 어떡하냐고 걱정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김 감독과 3편을 같이 만들었는데 김 감독의 어떤 면에 끌리는가.
=<파란 대문>을 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얘기한 게 있다. 김 감독은 6∼7번째 영화부터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그때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결과적으로 6∼7번째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 김 감독을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순수하고 정열적이다. 영화의 주제나 미학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높이 평가한다. 충분히 다른 감독과 차별화된 색깔을 유지해갈 감독이다.
-김 감독 영화를 만들면서 느끼는 특징이 있을 거 같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매우 빨리 찍는데.
=사실 김 감독 영화 스탭들은 다시 안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워낙 빨리 진행되고 김 감독 스타일이 한 장면 끝나면 다음 장소에서 기다리면서 재촉하는 타입이라 스탭들은 그만큼 노동량이 많다. 반면에 정해진 시간을 정확히 지켜 끝내기 때문에 좋아하기도 한다.
-<나쁜 남자>는 김 감독의 다른 영화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던데.
=순제작비가 7억5천만원 들었다. <수취인불명>보다 2억원 정도 더 쓴 셈이다. 사창가 세트를 만드는 데 돈이 들었다. 김 감독은 실제 있는 사창가를 도둑촬영해서라도 찍자고 했지만 세트를 짓는 편이 여러모로 옳다고 판단했다. 시장의 논리로 따지면 김 감독 영화는 5억원 정도가 적정예산이다. 제작비 5억원이면 비디오, 공중파, 케이블, 해외판권 다 팔아서 손해는 안 볼 수 있다. <나쁜 남자>는 제작비를 더 써서 부담이 있었지만 그만큼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봤다. 지금 분위기로는 손해는 안 볼 것 같다. 김 감독 영화 만든다고 투자자와 얘기하다보면 얼마 벌까가 아니라 얼마 손해볼까부터 얘기하게 된다. 그래도 김 감독 영화가 영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