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의 ‘준식’은 따져 물을 게 많은 남자다. 2차대전, 일본군으로 징집돼 소련 포로수용소로, 독일군으로, 또다시 미군 포로가 된 믿기지 않는 대장정은 너무 영화 같아서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쳐두자. 그럼 그가 거쳐간 전투 속, 전쟁으로 사지가 갈가리 찢겨나가고, 인성이 남김없이 파괴되는 현장을 모조리 목도하면서도 마라토너에 대한 신념과 착한 본성을 잃지 않는 건 가능한가? 속수무책의 판타지 속 이 기묘한 남자에 대한 책임을 물을 단 한 사람.
시사가 끝난 뒤 만난 장동건은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전투를 치르는 듯 참여했다던 현장에 대한 기억도 추억이 되었나 싶다. 준식의 고난을 몸으로 시각화하고자 8kg을 감량해야 했고, 추위에 얇은 군복 하나로 버텨야 했던 고난의 촬영현장에 대해서도 이젠 웃으며 응수한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참 많이 지난 것 같다. 내가 <마이웨이>를 언제 찍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 3개월은 집에서 여유도 부렸다. 아기가 태어났고, 그간 집을 비웠으니 좀 충실히 집에서 보내기도 했고….” 영화에 대해선 오히려 담담한 반응이다. “아무래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전쟁의 참상으로 미쳐가는 진태(<태극기 휘날리며>)가 연기자로서 보여줄 게 많은 배역이었다면 이번엔 준식을 통해서 주변 인물들의 변화를 살피는 연기를 했다. 그게 틀이고 구속일 수 있지만 배우로서 결국 이런 캐릭터에 임하는 건 선택의 문제다.”
총제작비 280억원. 충무로 기술력의 실험이 집대성될 작품. <마이웨이>는 한때 ‘대한민국의 대표 미남배우’란 수식을 벗으려 시도한 배우였다가 이젠 ‘대작배우’란 부담이 전가된 게 아닐까 하는 염려에 대한 또 한번의 도전과 같은 작품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욕심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만든 길이 아닌데도 자꾸 나한테 길이 놓이더라. 어떤 사람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길인데, 내겐 허락되는 거다. 그냥 궁금해서 간 적도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쩌면 내가 근성이나 적극성이 덜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막상 그는 이번에야 그 부담이 오히려 상쇄되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더 재미있어졌다. 한때는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던 영화들을 다시 돌이켜보면 본질적인 이유가 아닌데 하지 않았던 적도 있더라. 지금은 다르다. 자유로워지는 시기라고 할까?” 그는 자신에게 온 이 또렷한 징후를 스스로 분석한다. “결혼과 아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됐다. 자연인으로서 겪은 큰 변화가 내 직업적 가치관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좀더 현실적이 되면서 내가 기존에 가졌던 족쇄를 푼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벌써 다음 영화를 촬영 중이다.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의 리메이크작인 허진호 감독의 신작 <위험한 관계>(가제)에서 그는 중국 배우 장쯔이와 호흡을 맞춘다. “대작영화를 한편 하고 나면 그다음에 일종의 결핍감이 느껴진다. 그다음엔 그것과는 다른 성격의 작품을 찾는 거다. <해안선>도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하고 나서 굳이 찾아서 한 거고, 허진호 감독님 작품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끌린 거다.” 대중이 원하는 작품과 배우로서 자신이 원하는 작품 사이의 합일점, 그 역시 그 간극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온 배우다. “항상 결과를 예상하고 영화를 찍지만 늘 예상이 틀리는 게 영화다. <친구>는 순전히 내 개인의 만족을 위해 도전한 거였는데 결과는 뜻밖의 호응이었다. 항상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상쇄해줄 건 결국 관객의 호응이다.” 어느덧 마흔에 접어든 그. “나 역시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다. 생각해보면 난 대중이 내게서 보고 싶어 하는 걸 너무 안 했지 싶다. 앞으로는 그런 작품들에도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