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깡패 아입니다. 공무원 출신입니다. 공무원.” 아내와 삼남매, 그리고 결혼도 챙겨줘야 할 두 여동생, 그런 가족을 위해 동료들과 거리낌없이 비리를 저지르던 세관원 최익현은 우연히 알게 된 ‘먼 친척’이자 부산 최대 폭력 조직 보스 최형배를 만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저 밀수품을 빼돌리고 뒷돈을 받아 챙기던 수준과는 거리가 먼, 나이트클럽을 두고 상대 조직과 맞짱을 뜨고 정치인들을 구워삶아 호텔 카지노의 운영권을 따내는 ‘로비의 신’이 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까지 왔는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검은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최익현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이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른다.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일명 ‘반달’의 길, 그렇게 허세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지독한 생존본능은 그를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간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감옥에 갇히기 직전 모습이라고 하면 맞을까. 최익현은 딱히 모델이 된 남자가 없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익숙한 일상의 비리 속에서 어디선가 꼭 본 듯한 ‘아저씨’이고 ‘꼰대’다. 술 한잔만 들어가면 누구나 왕년에 조직 생활도 했고 주변에 검사, 변호사 친구도 여럿 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저놈 저거 내가 아는데”라며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을 사실인 양 떠들어댄다. 물론 그걸 딱히 새겨듣는 사람도 없다. 어차피 ‘구라’가 구라를 낳는 허세의 세계다. “살면서 흔히 만났을 법한 그런 아저씨가 우연한 기회에 조직에 발을 담그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한 최민식은 “복덕방에서 ‘이빨 좋은’ 한 아저씨가 자신의 과거 무용담을 들려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내가 아직도 니 쫄따구가!” 세관 비리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동료들을 대신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총대를 메다시피 하고 직장을 나오게 된 최익현은 옛 상사를 만나 단숨에 제압한다. 물론 자신이 아닌 ‘동생’들의 힘으로. ‘엇, 이건 뭐지?’ 하는 표정과 함께 그때부터 최익현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된다. 그 허세의 상징은 바로 비어 있는 총이다. 그는 아마도 총알이 있어도 결코 장전하지 못할 것이다. “최익현이 선글라스 끼고 머리 빗어넘기며 건달이 돼가는 과정은 허세 가득한 한국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로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먹이 약하니까 내가 누구 동창이고 고향 선배라며 무조건 엮고 본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은 그런 로망을 포괄적으로 건드리되 한국적인 유머를 터치한다. 권력과 경제를 향한 동경이라는 한국 남자의 속물, 꼰대 근성을 유머와 연민 사이에서 그리는 것,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하지만 최익현은 철저하게 이중적인 인간이다. ‘혈연’으로 시작된 최형배에 대한 감정도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바뀐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기고만장할 때는 ‘가족 아이가, 우리가 남이가’ 외치다가 형배의 라이벌 조직 보스인 판호(조진웅)의 솔깃한 제안을 받았을 때는 냉큼 갈아탄다. 익현의 핵심은 바로 그 두려움 없는 이중성이다. 의리가 아니라 비즈니스만이 중요하다.” 감옥에 갇힌 형배가 풀려나오는 데 도움을 준 익현은 그의 감사인사를 받으며 “사람만큼 간사한 동물이 없지”라며 자신만 믿으라고 으스대듯 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간사한 인물이 바로 그다.
최민식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작품은 바로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다. 그 어떤 궁지에 몰리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가고 사랑이든 무엇이든 끝까지 자신은 순수하다고 믿는 혹은 착각하는 남자. 그런데 최익현의 더한 핵심은 그런 오해와 착각 혹은 위선과 가식의 이중성을 넘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통제력 상실에서 온다. 그는 익현에 대해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 말한다. “익현이 과연 건달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있을까? 아니, 그는 살기 위해서라면 지옥불에도 뛰어들어갈 남자다. 세관원 최익현이 우연히 히로뽕 10kg을 발견한 1982년의 그 어느 날부터 그의 인생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은 최민식이 이제껏 연기한 캐릭터 중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살인 행각을 멈추지 않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이나, 종국에 죄를 복기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절대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올드보이>의 오대수, 혹은 그저 불가마 속으로 담담히 스스로 기어들어갔던 <취화선>의 장승업을 닮았다. 물론 지나친 비약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민식은 그렇게 그 누가 앞길을 막더라도 늘 ‘끝을 보는 남자’였다. 이번에도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