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당장 산악 지역으로라도 가는 게 좋겠습니까?
2012-01-25
글 : 김도훈
<딥 임팩트>부터 <나는 전설이다>까지 종말론을 소재로 한 유명한 영화들의 진실 혹은 거짓

머릿속으로 종말의 광경을 떠올려보시라. 아마도 당신은 할리우드 종말론 영화의 한 장면을 자연스레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지구가 할리우드영화처럼 종말을 맞이하게 될까? 몇 가지 종말론 영화들이 그리는 종말론의 진실 혹은 거짓.

<딥 임팩트(1998)>

세상이 종말론으로 들끓던 20세기 말에 만들어진 <딥 임팩트>는 ‘소행성 충돌’이라는 가장 인기있는 종말론을 다룬다. 미확인 혜성이 지구의 충돌 궤도에 들어서자 지구인들은 남은 몇 개월 동안 모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이를 막으려 한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일부 종말론자들은 태양계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행성 X가 2012년에 지구와 충돌한다고 믿는다. 행성 X란 해왕성보다 멀리 떨어져 있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가상의 천체다. 2008년에는 일본 고베대학 연구진이 태양계에 9번째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는 행성이란 소리다. 그런데 행성 X는 수메르 문명에도 등장한 바 있다. 수메르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태양계에는 나비루라는 행성이 존재하고, 나비루가 다시 지구에 접근하는 날 큰 재앙이 일어난단다. 종말론자들은 행성 X와 나비루가 같은 행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NASA는 행성 X건 나비루건 간에 2012년에 충돌할 예정이라면 이미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하여간 소행성이나 거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2012년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종말의 과학적 근거는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실제 사건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랜 지구 역사에서 소행성 충돌은 빈번하게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공룡 멸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가설도 지지를 얻고 있다. 만약 공룡을 멸종시켰던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노아의 방주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소행성이 충돌하면 두터운 먼지층이 대기를 뒤덮고 태양을 차단하면서 지구는 핵겨울을 맞이하고 말 거다.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당신이 충돌 지역과 최대한 먼 대륙의 산악 지역에 살고 있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희미하게나마 있다. 하지만 딥 임팩트에서 살아남더라도 뒤따르는 빙하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딥 임팩트 이후의 세계는 아마도 영화 <더 로드>와 비슷할 것이다. 나라면 차라리 딥 임팩트와 함께 준엄한 종말을 맞이하는 편을 선택하겠다.

<나는 전설이다>(2007)와 <새벽의 저주>(2004)

갑자기 퍼진 바이러스로 인류가 뱀파이어 혹은 좀비로 변하고, 아비 어미도 몰라보는 인간들은 서로를 뜯어먹으면서 자멸한다. <나는 전설이다>는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주지만 오리지널 영화 <오메가맨>의 암담한 마지막 장면이 더욱 설득력있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사실 인간은 뱀파이어나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서로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이대로 가다간 문명이 자멸할 건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2012년에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종말의 과학적 근거는
사회현상적으로 따지자면 가스통을 든 어버이연합과 좀비에게서 비슷한 부분을 굳이 찾아낼 수도 있겠다(반대파들은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을 ‘촛불 좀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뱀파이어나 좀비와는 달리 어버이연합의 수명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다행이다.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좀비나 뱀파이어가 된 채 살아가는 것도 생존을 의미한다면, 가능성은 꽤 높다.

<4번째 단계>(1974)

갑자기 개미들이 지능을 얻게 된다. 집합적인 지능을 무기로 삼은 개미들은 기술력을 진화시켜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결국 인류는 개미 문명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사울 바스가 연출한 이 컬트영화는 뭔가 농담 같지만 꽤 진지하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지금 장난하냐?

종말의 과학적 근거는
개미를 걱정하기보다는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당신의 애완용 고양이를 걱정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일부 고양이 애호가들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고양이 행성에서 보낸 스파이들이다.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상용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외모 하나로 순식간에 인간사회를 파고들었다. 소름끼치지 않는가?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오늘날 지구에는 1만2천∼1만4천종의 개미가 살고 있다. 개미는 탁월한 조직사회와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능력이 있으며 일반적인 곤충을 훌쩍 뛰어넘는 23년 정도의 수명을 갖고 있다. 그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전체주의 조직사회적 습성에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더한다면, 포기하라. 인간이 개미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드래곤 헤드>(2003)

신칸센을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터널에 갇힌다. 겨우겨우 빠져나오니 일본은 재로 뒤덮인 지옥으로 변해 있다. 지구가 종말한 것이다. 이유를 찾던 아이들은 결국 불타오르는 후지산과 마주한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2012>에서도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초대형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옐로스톤 화산은 60만년 주기로 분화했는데 마지막 분화로부터 이미 64만년이 지났다. 만약 옐로스톤이 분화한다면 마그마와 화산재가 미국 영토의 60%를 뒤덮을 것이다. 호주의 한 과학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토바호에 있는 지구 최대의 화산이 2012년에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백두산과 후지산의 분화 가능성이 슬슬 기어나오고 있다. 뭔가 지각 아래 붉은 친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다.

종말의 과학적 증거는
화산이 폭발하면 주변의 생물만 뜨거운 마그마나 화산재로 죽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수마트라의 토바호 화산은 이미 7만4천년 전에 분출한 바 있다. 먼지가 몇년이나 태양을 가려 빙하시대가 찾아왔고, 대규모 생물 멸종 사태가 발생했으며, 심지어 당시 인류의 60∼90%가 사망했다. 2억5천만년 전 페름기 말 일어난 지구 역사상 최악의 대멸종 역시 시베리아 트랩이라 불리는 거대 화산의 분출 때문에 일어났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구상의 거대한 화산이 연속적으로 폭발한다면 지구는 가망이 없다.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거대 화산의 분출로 인한 멸종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인류의 10% 정도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내신성적 상위 10%, 소득수준 상위 10%에 드는 것보다 어려울 건 분명한 사실이고.

<노잉>(2009)

MIT 교수는 50년 전 타임캡슐 속에서 나온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일어난 재앙을 예고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게다가 종이에 따르면 종말도 머지않았다. 교수는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국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 폭풍으로 인류는 멸종한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태양계에서 두 번째로 큰 목성은 11년 주기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목성이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태양은 수소폭탄 수억개가 동시에 터지는 위력의 폭풍을 발생시킨다. 미 항공우주국과 미 해양대기청이 주최한 우주기상주간회의에서는 2012년에 발생할 태양 폭풍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1859년의 폭풍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종말의 과학적 증거는
태양 폭풍은 자구 자기장을 역전시켜 전세계의 통신수단과 전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에 발생한 태양 플레어로 인해 캐나다 퀘벡주 전체의 전기가 9시간 동안 정전된 바 있다.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영화에서처럼 강력한 태양 폭풍이 발생한다면 100마이크로테슬라에 달하는 방사선이 오존층을 완벽하게 갈가리 찢어버리고 방사선은 지표 속으로 1km 이상 뚫고 들어간다. 굴을 파고 들어가봐야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나라면 기름을 바르고 옥상에 올라가 조금이라도 빨리 몸이 증발하길 기도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1959)

중국과 미국의 핵전쟁으로 북반구의 인류는 멸종했다. 겨우 살아남은 미국의 핵잠수함 한척이 핵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유일한 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희망을 찾아나서지만, 방사능은 결국 기류를 타고 남반구까지 다가오기 시작한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세상에는 여전히 핵무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핵발전소다. 우리는 자연재해에 너무나도 취약한 핵발전소의 공포를 후쿠시마 사태로 다시 한번 깨달은 바 있다.

종말의 과학적 증거는
대규모 지각 변동, 소행성 충돌, 화산 폭발과 지진 등 모든 종말론의 시나리오에는 핵발전소의 파괴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항상 뒤따른다. 인류는 스스로 발밑에 지뢰를 묻어둔 셈이다.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라. 빠른 죽음, 혹은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 다른 답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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