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남성의 증명 3부작’의 완성
2012-02-09
글 : 주성철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1932)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미국을 지배하는 세력인 갱단에 대한 고발이자, 국민의 안전과 자유에 대한 위협이 날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무관심한 정부에 대한 고발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으로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정부는 바로 당신의 정부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됐다는 자막과 함께 갱스터 무비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방식은 <스카페이스> 이래로 (윤종빈 감독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라고 밝힌) 마틴 스코시즈의 <좋은 친구들>(1990)과 <카지노>(1995), 그리고 마이크 뉴웰의 <도니 브래스코>(1997) 등 여러 영화들이 따라 보여준 방법이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그와 반대로 실화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실화와의 접합성을 오히려 높이는 효과를 준다. 과거 80년대 부산을 주름잡았던 세관 공무원의 전설적 비리 무용담에다, 경주 최씨 충렬공파라는 혈연의 사슬까지 더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국인에게 너무나 낯익은 장면들이어서 사실상 ‘실화가 아님’이라는 자막이 무의미하다. 개별적인 사건들이 허구라 해도 박정희의 얼굴로 시작해 전두환과 노태우를 거쳐 영화 속 늙은 최익현(최민식)의 현재 ‘꼰대’ 얼굴(그것이 누굴 상징하는지 굳이 상상할 필요는 없지만)로 마무리되는 <범죄와의 전쟁>은 그 자체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지난 시절의 풍경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꼰대 아버지 최익현이 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도 그렇다. <스카페이스>의 오프닝 자막을 살짝 바꿔 말하자면 “이 꼰대는 바로 당신의 아버지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르성과 사회성을 엮어내다

윤종빈 감독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마틴 스코시즈 영화들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범죄와의 전쟁>은 ‘좋은 친척들’ 혹은 ‘갱스 오브 부산’쯤 될 것이다.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갱스터 무비의 장르성과 당대 한국사회의 사회성을 하나로 엮으면서 거기에 어떤 입체성을 부여했는지 바라보는 것, 그리고 주인공 최익현의 질긴 흥망성쇠의 라이프 스토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범죄와의 전쟁>은 기존 한국 조폭영화들의 상투성과 작별을 고하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사의 여러 걸작, 수작 갱스터 무비들의 시대성과 세련되게 조응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인물들에 대한 연민 없이 갱스터 장르를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카지노>에서 박스 팬츠만 입고 일을 보다가 누군가가 방문했다는 비서의 얘기에 무척이나 점잖게 정장 바지를 골라 입는 에이스(로버트 드 니로)의 행동거지에서 오는 그 묘한 거리감. 어쩌면 <범죄와의 전쟁>을 채운 전반적인 정서는 바로 그것이다.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계기로 우연히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잡게 된다. 그러면서 암흑가의 진흙탕 같은 협잡을 장르적 쾌감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컨벤션들을 ‘범죄와의 전쟁’ 시기를 전후한 당대의 현실과 다소 거칠지만 딱히 모나지 않게 엮고 있다. 그것은 최익현과 최형배가 바로 ‘먼 친척’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좋은 친구들>에서 아일랜드계라는 이유로 토미(조 페시)와 달리 마피아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지미(로버트 드 니로)와 헨리(레이 리오타)라면 익현이 얼마나 부러울까. 리들리 스콧의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프랭크(덴젤 워싱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갱스터 무비의 ‘낙하산’이 바로 그다. 더불어 시대배경을 1980년대로 옮기면서 의상과 액션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한핏줄 영화’들과 자연스레 다른 길을 걷게 된 측면도 있고, 세관 공무원과 조직 세계 사이에서 일명 ‘반달’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성취한 지점도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 보여주는 입체성은 지극히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여러 상황들에서 기인한다. 세관원들의 비리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부양가족이 가장 적은 사람이 대표로 ‘독박’을 쓰기로 한다. 이미 그전 장면에서 익현에게 자식이 셋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관객은 ‘살았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료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하나같이 자식들이 다섯에 넷에 익현보다 더한 가장들이다. 얼핏 합리적으로 보였던 선정방식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혹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구호가 지배하던 시절의 현실과 만난 것이다. 또한 감옥에 잡혀간 형배를 구해내는 데는 ‘로비의 신’ 익현의 ‘구라’가 한몫 거든다. 그런데 그 로비란 게 어디서도 보지 못한 방식이다.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아버지와 인척 관계가 닿은 익현은 검사나 경찰이 아니라 종친회를 장악해 해결한다. <범죄와의 전쟁>은 기존 갱스터 무비들에서 보지 못한, 그러니까 판사나 경찰청장 혹은 보스보다 위에 군림하는 ‘어르신’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반달’을 초월하는 익현이라는 캐릭터

<범죄와의 전쟁>은 무엇보다 최익현 개인의 드라마다. 마틴 스코시즈의 <분노의 주먹>(1980)이나 <좋은 친구들>, 혹은 송해성의 <역도산>(2004)처럼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의 변신과 배신, 그리고 전성기와 파국을 시대상에 녹여낸다. 히로뽕 한 봉지를 어떻게 해처먹으려고 ‘일본놈들이 어쩌고, 우리 역사가 어쩌고’ 하던 비리 공무원이 우연히 알게 된 먼 친척 형배를 통해 건달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에게 찾아오는 분기점은 세번이다. 첫 번째는 옛날 세관에서 함께 일하던 상사, 그러니까 일을 그만두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배를 술집에서 만난 뒤 갑자기 ‘동생’이 된 조직의 ‘넘버 투’ 창우(김성균)가 그를 묵사발로 만드는 것을 본 날이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하는 표정의 익현을 덩그러니 남겨두고서 카메라는 클럽 내부를 롱숏으로 잡고, 그는 이제부터 굳이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얻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손은 그날부터 형배를 그대로 따라하는 데 쓰인다. 형배가 후배 조직원의 ‘거시기’를 쓱 훑고 지나가면 자기도 그대로 따라한다. 물론 당한 조직원의 표정은 ‘점마 뭐고?’다. 형배가 차를 나르는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만질 때 그 역시 몹시 따라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만큼은 또 쉽지 않다. 어쨌건 여전히 아이 생각, 마누라 생각을 하는 ‘반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분기점은 말 그대로 권력에 취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달려가는 지점이다. 호텔 내 파친코를 개업하고, 말하자면 형배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업 분야를 개척하고 정치인들과의 만남도 갖는다. 오히려 형배가 아니꼬운 눈초리로 나이든 정치인들을 바라보고 익현이 90도로 인사하라며 다그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반달이라는 처지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보통 사람이자 건달, 그 두 가지 성격을 왔다 갔다 해서가 아니라 그 둘 모두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익현이 ‘자기 사람’으로 데려온 매제(마동석)를 보라. 그는 태권도 사범이어서 싸움도 곧잘 할 것 같지만 반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싸움을 잘해서 건달이 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와 비교할 때 익현은 그저 자기의 욕망과 권력만 좇는다. 동생들이 아무리 뒤에서 비웃어도 신경 쓰지 않고, 형배가 진지하게 건달이냐고 물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제 그는 적당히 얹혀가는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형배를 밀어내 보스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세 번째 분기점은 형배의 라이벌 조직인 판오(조진웅)와 손을 잡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쌓아온 ‘혈연’ 형배와의 의리나 미안한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흔쾌히 손을 맞잡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뭐라고 변명할까’ 하는 귀찮은 궁리에 가깝다. 이로써 익현과 형배가 여러 위험한 순간을 거쳐온 원동력이 혈연이든 연민이든 결코 순수한 연대의식에서 오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된다. 익현은 정말 자기밖에 모른다. <카지노>에서 카지노 입장이 금지되고 온갖 권리가 박탈당하는 와중에도 기어이 자신의 사업을 이어나가고, 급기야 나이 든 보스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친구인 에이스의 여자(샤론 스톤)까지 넘보는 니키(조 페시)처럼 익현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선 그 무엇이라도 할 남자다. 클럽에서 창우가 가짜 그룹 소방차를 섭외한 것을 알고 그 횡령한 돈을 ‘반띵’하자고 초라하게 말하는 매제의 순박함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진짜 반달은 실전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태권도의 돌려차기를 기어이 해보려는 매제일 것이다. 그렇게 익현에게 반달이냐 아니냐는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윤종빈이 그려내는 한국사회의 풍경화

궤변과 허세의 달인 최익현을 상징하는 것은 비어 있는 총이다. 저 멀리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1994)에서 용대(박중훈)가 끝까지 들고 있던 그 총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사실 익현은 장전된 총은 겁나서 들고 다니지도 못할 것이다. 그게 반달 익현과 건달 용대의 차이점이다. 그렇게 <범죄와의 전쟁>은 반달이자 꼰대 최익현을 통해 들여다보는, 편법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한국사회의 풍경화다.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파이란>(2001)의 강재(최민식), 감금되기 직전의 <올드보이>(2003)의 대수(최민식)라고나 할까. 그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최민식은 이렇게 자신의 대표작에 한 작품을 더 추가했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은 늘 현실의 소재를 취해 그 누구보다 집요하게 그를 파고들었던 윤종빈 감독의 첫 번째 시대극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를 거쳐 <범죄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윤종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표현은 바로 그의 이전 단편영화인 <남성의 증명>(2004)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군대 화장실이거나 지하 룸살롱, 그리고 횡령과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이트클럽이라는 어두운 세계였다. 거기서 남자들은 기어이 자신을 증명하려고 제대한 선임을 찾아가고, 떠난 여자친구에게 칼을 겨누며, 내가 누구인데 못 알아보냐며 허세를 부렸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군대, <비스티 보이즈>의 호빠, <범죄와의 전쟁>의 건달, 그렇게 그는 줄곧 환경을 달리하며 ‘남성의 증명 3부작’을 완성했다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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