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80년대를 거쳐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던 시기에 이르기까지 취재나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나.
=범죄와의 전쟁 당시 검사였던 분이 취재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70, 80년대 악명을 떨쳤던 범서방파의 김태촌, 양은이파의 조양은, OB파의 이동재 등 3대 깡패의 전성기에 대한 얘기도 재밌게 들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히로뽕의 아시아 제1수출국이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한 깡패 두목이 있었는데 스폰서라 불리는 사람과 친인척 관계였다는 얘기를 들어 거기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
-그렇다면 실화에 바탕했다는 자막을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나. 당신이 좋아한다는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의 도입부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렇긴 한데 그런 식으로 자막을 넣는 게 나한테는 좀 불편했다. 실화를 영화화한다는 게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 같기도 한데 그런 설정이 너무 마케팅적으로 쓰인다는 느낌도 있어서 뺐다. 아무튼 <좋은 친구들>은 거의 100번을 봤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리고 나에게 최고의 미드는 <소프라노스>다.
-내레이션은 어떤가. 그 두 영화 모두 내레이션이 전반적으로 중요하게 쓰였다.
=실제로 <좋은 친구들>처럼 한 남자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1인칭 내레이션을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쓰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입을 방해할 것 같아서였다. 지나치게 극적이지 않고 덤덤하게 엔딩을 끝내야 하는데 그 느낌이 잘 전달될까 고민됐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방식이 아니다보니 낯설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비스티 보이즈> 때도 그렇게 할까 하다가 결국 안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찬욱 감독님의 <친절한 금자씨>가 그런 걸 잘 썼는데 그건 영화 속 인물이 아닌 다른 화자다. 그래도 언젠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톤 앤드 매너로 내레이션을 쓰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
-당시 부산에서 세관 공무원의 전설은 어마어마했다. 당신이 부산 출신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디테일에 대한 경험이나 들은 얘기는 없나.
=아버지가 예전에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셔서 아버지 친구분께 많은 얘기를 들었다. 당시는 세관 공무원에 합격하고도 익현과 같은 자리를 얻기 위해 브로커에게 100만원 정도를 줘야 했다더라. 그런데 그 브로커가 도망가서 돈을 날린 사람이 있었다더라. 그래서 그 브로커 잡는 데 1년이 걸렸고 100만원을 받아서 다른 브로커에게 줘서 그 자리를 차지했단다. (웃음) 화장실에 밀수품 보관하는 얘기도 들은 거다. 너무 밀수품이 많으니까 숨길 데가 없는 거다. 밤에 퇴근할 때 가져가려고 화장실에 가면 종종 없어져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런 물건이 없어졌다고 밖으로 얘기할 수도 없고. 아이가 셋인데도 불구하고 총대를 메고 세관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도 들은 거다. (웃음)
-익현이 살던 집이 부산 영도로 보이는데 형편이 피면서 이사 트럭 타고 뭍으로 나가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나도 어려서 영도에서 살았다. 익현이 여동생한테 돈 주는 장면도 실제 우리집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 아버지에게 고모가 무려 넷이나 있어서 다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었다. 나중에 적금 든 걸 막내고모 결혼할 때 다 주는 걸 보고 어머니가 무지 열받은 적도 있다. (웃음) 그러면서 아버지가 경찰 공무원으로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처럼 어떤 나쁜 짓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많은 식구를 위해 그러셨다면 나도 의도치 않게 공범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회 가족주의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 ‘원죄’가 종교적이든 사회적이든 다 존재하는 것 같다.
-당신의 단편 <남성의 증명>(2004) 마지막 장면은 “영어공부 시간을 좀 늘려야겠다”로 끝난다. 영화에서 익현도 아들에게 계속 영어공부를 닦달한다.
=그것도 내 경험이다. (웃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침에 밥 먹을 때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영어 단어를 외웠다. 정말 지겹고 괴로운 주입식 교육이었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성문종합영어 단어를 다 뗐을 정도니까. 그래서 중학교 때 영어시험은 무조건 다 만점이었다. 그런데 바로 한계가 드러났고 지금도 회화는 엉망이다. 그때도 아버지는 ‘검사가 최고’라고 하셨다. 젊은 친구들이 나이 든 경찰들에게 쌍욕하고 그러니 한도 맺히셨을 거다. 누나가 좀 아버지 성향과 맞아서 판사가 됐고 나는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를 닮아 게으르고 잠도 많아 이렇게 됐다. (웃음)
-익현을 보면서 <PD수첩>의 이른바 ‘떡검사’ 편에 나온 스폰서 남자를 떠올렸다. 건달은 분명히 아닌데 돈만으로 검사들을 쥐고 흔들었던.
=시나리오 다 썼을 때 그걸 봤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 방송에 나온 통화 내용을 인용해 대사를 쓰기도 했다. ‘우리는 동지적 관계에 있고 뭐 꼭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하나’ 하는 부분에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 좋아서 딱 썼다.
-내내 “살아 있네”라는 대사가 귀에 맴돈다.
=옛날 고향 친구들끼리 놀 때 쓰던 말이다. 일종의 ‘죽이네’ 같은 의미다. <도니 브래스코>에서 조직원들이 내내 “Forget about it”(쫑내)라는 말을 쓰고 그걸 들은 경찰들이 재밌다며 따라 쓰는데, 일종의 그런 대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최민식과 하정우 외의 주요 배역들은 낯선 배우들이다.
=검사 역의 곽도원은 <핸드폰>에서 형사로 나왔는데 짧지만 무척 인상적이어서 꼭 한번 같이 해보고 싶었다. 하정우 역시 <황해>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어 그를 추천했다. 창우 역의 김성균 역시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다. 그 두 사람은 양쪽에서 자신의 애티튜드가 예상 가능하면 안되는 인물들이다. 좋은 검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헷갈려야 하고 창우 역시 자신의 충성도를 명확하게 드러내면 안된다. 잘 알려진 배우들도 관심을 보였지만 그러면 되게 뻔할 것 같았다.
-역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최익현이다. 그를 어떻게 두고 접근했나.
=정권이 바뀌면서 시대가 역행하는 것 같고 죽은 아버지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쁜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한국 근현대사는 얼마나 기회주의자들의 역사인가. 박정희도 평범한 교사로 시작해 최익현처럼 얼마나 변신의 귀재였나. 최익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보통 아버지이지만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 역시 아버지 세대의 룰과 법칙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생각도 했다. 싫으면서도 닮아가는 그 이상하고 역겨운 느낌 있잖나.
-영화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익현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어디라고 봤나.
=익현이 호텔 파친코 개업식 때 형배를 데리고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봤다. 그 지점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물론 그게 대중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거기서 관객이 좋아해줄까 아닐까 하는 게 숙제였다. 그때의 관건은 나의 고민을 넘어서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배우들의 연기라고 봤다. 물론 두 배우가 정말 잘했다. 그건 내가 기존 한국 조폭영화에서 싫어하는 두 가지 정서와 맞닿아 있는데, 첫 번째는 조폭들이 꽃남방 같은 거 입고 무술 고수들처럼 싸우는 거고 두 번째는 자신을 연민하는 순간이다. 계속 경계하고자 했던 게 바로 그 두 가지다.
-형배나 판오 위로 더 힘있는 나이 든 보스가 없다는 게 의아했다.
=실제로 김태촌이나 조양은 같은 사람들도 20대 후반에 최고 보스가 됐다. 흔히 아버지 없는 세대, 뭐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조폭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없는 거다. 그러니까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 같은 갱스터 무비를 하고 싶어도 그런 나이 든 보스들의 바탕이 나오지 않는 거다. 우리에게 재밌는 것은 외국처럼 마피아나 흑사회 얘기가 아니라 정치다. 영화에도 살짝 나오지만 당시 실제로 안기부에서 파친코 지분 조종이나 관리를 직접 했다. 당시 무식했던 깡패들은 그게 법률로 정해져 있는 건 줄 알았다더라. (웃음) 말하자면 아까 없다고 했던 아버지의 자리에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깡패들이 정치권에 힘을 보태준 게 우리라며 막 설쳐댔다. 그들이 그렇게 갑자기 까불고 사고치고 다니니까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쇼를 기획했다. 그리고 취재를 하다보니 <모비딕>에서 다뤘던, 안기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이 범죄와의 전쟁 선포 불과 1주일 전에 <한겨레> 신문에 났었다. 바로 그걸 덮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거다.
-당신의 세편의 장편영화는 그전 단편 제목인 ‘남성의 증명’으로 관통된다.
=의도한 건 아닌데 늘 같은 고민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그렇게 안 살면 되고 그렇게 안 만들면 되는데 일종의 발악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늘 좌절하고 수난을 겪었다면 다음 영화는 현실이 어떠하든 그걸 성장하고 극복하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예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통이나 냉소만이 미학의 핵심이라고 보는 측면이 있는데, 그외의 것으로도 그에 닿고 싶은 마음이랄까. 얼마 전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을 봤는데 그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평소 그들처럼 영화를 끝내놓고는 전혀 다른 5분을 덧붙인 느낌이다. 장률의 <두만강>에서 마지막에 노파가 다리를 건널 때도 그 비슷한 느낌으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게 바로 그거다. 그러니까 새 영화는 이전 세 영화와 아주 많이 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