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talk]
[Cine talk] 주인공 슈지의 망가진 얼굴, 마음에 든다
2012-02-14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컷> 니시지마 히데토시

아미르 나데리 감독에게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다. 유약함, 비밀스러움. 부드러움.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설레게 했던 모든 정의들을 일거에 깨버렸으니 말이다. 그것도 강펀치로. 영화에 목숨을 내건 <컷>의 주인공 슈지는 죽은 형을 대신해 야쿠자에게 돈을 갚기 위해 인간 샌드백이 된 남자다. 시종 무표정했던 <돌스>와 <좋아해> <제로 포커스>의 니시지마에게 얻어터져 붓고 피나고 일그러진 육체가 만들어낸 신음의 표정이 생긴다. 니시지마에게서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육체와의 대면! 슈지는 배우 니시지마에게 그토록 결연한 캐릭터다. 한국에 팬이 많다는 칭찬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좋아해>의 요스케와 닮았지만 연기에 대한 사뭇 진지한 답변만큼은 영화에 미쳐버린 <컷>의 슈지와 똑같다.

-<사요나라 이츠카>에 참여했던 한국 스탭이 “절대 한국에선 인기 없을 남자배우”라고 했다더니, 김태희씨와 함께한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 덕분에 한국 팬이 급증했다.
=<나와 스타의 99일>은 현장이 굉장히 즐거웠던 작품이다. 다른 때와 달리 스탭, 배우들과 모여 대사 연습도 하고. 아, 김태희씨가 일본어를 아주 많이 준비해서 깜짝 놀랐다. 인기는…? (웃음) 기분은 좋은데 사실 실감은 안 난다. 영화사에서 이번에 <컷>의 무대인사가 있는 상영회 티켓 경쟁이 심했다고는 하더라. 과연 많이 모일까 의문이다.

-많이 올 건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온 관객이 젠틀했던 니시지와 히데토시의 모습과 사뭇 다른 망가진 얼굴에 기겁하지 않을까. (웃음)
=개인적으론 <나와 스타의 99일>에서보다 <컷>에 나온 내 얼굴이 더 마음에 든다. 감독님이 처음에 날 보고 한 말도 그거였다. “보기엔 굉장히 어른스럽고 젠틀해 보이지만 그럴 리 없다. 지금까지 표현하지 않았던 에너지, 혼을 보여달라”고 하시더라. 그때 “진짜 보여줘도 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슈지의 망가진 얼굴에 내 진짜 에너지와 혼이 담겨 있다.

-<컷>이 배우로서 당신의 이미지를 바꿀 절치부심의 작품이었나 보다.
=<컷>은 각본이 완성된 뒤 참여한 영화가 아니라 2005년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감독님을 만나 그게 인연이 돼서 만든 영화다. 이란의 감독, 도쿄의 배우라는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한 장면을 두고 서로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하는 과정이 즐겁더라. 대화를 나누다보니 서로 닮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니 <컷>은 감독님과 내가 섞여 있는 영화다. 감독님이 “내가 찍고 있는 게 극중 슈지인지 니시지마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신 적도 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감독님이, 존 카사베츠 감독의 <사랑의 행로> 스탭으로 참여했는데 이후 계속 존 카사베츠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며, 나를 데리고 일본에서 그걸 만들어보자 마음먹었고 그래서 <컷>을 만들게 됐다고 하더라. 이란을 떠나 미국에서 일하는 감독이 나를 통해서 존 카사베츠의 정신을 표현해준 것이 너무 고맙다.

-<컷>은 개런티에 상관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독립영화 경험이 많은 당신에게 슈지의 선택, 슈지의 캐릭터는 어떤 의미인가.
=개런티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예산이 적든 많든 감독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일본에서 예술영화를 찍는 건 어렵고 단관영화관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배우도 독립영화만 해서는 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난 TV에도 출연하고, 규모가 큰 상업영화도 찍는다. 계속 즐겁게 일하려면 다양한 작품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 승부처는 독립영화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점점 인연이 쌓이고 그걸 통해서 작품을 하게 돼 다행이다. 이번에도 미국, 터키, 이란, 프랑스 프로듀서와 작업하고 후반작업은 일본과 한국에서 하면서 많은 이들을 알게 됐다.

-작품 선택에 인간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커 보인다.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노하우가 있나.
=딱히 내세울 만한 비결은 없다. 영화를 찍는 과정 자체가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과 호흡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감독이나 PD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매니저에게 전해 듣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인연이 시작됐다고 여긴다. 다른 배우들은 흘려들을 수도 있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부분인데, 난 그런 것에 민감하고 그걸 소중하게 여긴다.

-짐작과 달리 적극적인 면모이기도 한데, 그간의 캐릭터들을 보면 내성적이고 조용할 것처럼만 보인다.
=작품 속 모습만 보고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는데, 실제 나는 좀 다르다. 요즘은 내 밝은 성격을 동료들에게 들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촬영하면서도 웃음이 멈추질 않아 NG를 내는 일도 속출한다. 현장에 가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예전엔 현장에 가면 촬영 끝나고 함께 술도 마시고 어울릴 거라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배우가 된 것도 현장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당장 돈이 손에 안 들어와도 행복한 일을 하자고 생각했고, 촬영현장에서 일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장 대신 배우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웃음)

-<컷>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다음 작품이 어떨지 감이 오질 않는다.
=액션영화를 해보고 싶었고 <컷>에서 그런 것들을 보여준 것 같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다. 당장은 <하메룬>이라는 일본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휴먼드라마다. 일본 아니라 해외 감독들과의 작업은 계속 하고 싶다. 일본 감독과 작업할 때와 달리 외국 감독들은 내가 가진 다른 면모들을 보기 때문에 그게 내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온 형사, 이런 역도 좋으니 한국에서도 좀 불러줬으면 좋겠다. (웃음) 좋아하는 한국 감독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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