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이라는 감독의 외침이 절실하던 순간이었다. 12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주인공 슈지 역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야쿠자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끊임없이 봐야 했다. 인간 샌드백이 된 슈지의 말끔한 얼굴은 부어오르다 못해 무너져 내렸고 온몸은 멍으로 가득해, 지켜보는 사람조차 몸 한구석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첫인사는 “여러분 힘드셨습니까? 동지애를 느낍니다”였다. 2월10일 CGV대학로에서 열린 <씨네21> 주성철 기자와 김영진 평론가의 <컷> 시네마톡은 그처럼 애써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꾼 뒤에야 시작됐다.
<컷>은 이란 감독과 일본 배우라는 묘한 화학반응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달리는 아이들> <라스베가스의 꿈>으로 잘 알려진 아미르 나데리 감독은 이번 작품에 예술에 대한 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과 의지를 담았다. 이란에서 태어나 영화를 연출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미르 나데리의 전력을 살펴볼 때 그가 일본 배우들과 일본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과 시도처럼 보인다. 영화는 슈지의 절실한 외침으로 시작된다. 그의 외침은 자본이 예술을 삼키고 그로 인해 영화다운 영화는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없는 현실에 대한 투지다. 얼핏 이데올로기 선동처럼 보여지지만 결국 슈지가 강조하는 것은 예술영화를 진정으로 즐기는, 그리고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길 바라는 마음이다. 존경하는 감독들처럼 훌륭한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그는 돈이 없어 영화 제작은커녕 겨우 불법 영화 상영회나 열며 살아간다. 어느 날 슈지는 형 싱고가 조직에 의해 처단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싱고가 12년간 성실히 일한 조직에서 처단당한 이유는 슈지의 영화에 제작비를 대기 위해 거액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자 조직의 구역을 중국인 패거리에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형이 죽음을 맞게 됐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슈지는 싱고가 진 엄청난 사채빚을 떠안게 된다. 야쿠자가 슈지에게 준 상환 기한은 단 12일. 돈을 갚을 능력조차 없는 슈지는 싱고가 죽어간 화장실에서 인간 샌드백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다. 12일 동안 맞아서 번 돈으로 빚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12일이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에서 슈지는 영화도, 돈을 버는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흥미로운 변신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컷>이 국내 관객의 관심을 끈 이유는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덕분이다. 지난 2월3일 <컷>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지난해 김태희와 함께한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쌓은 배우다. <좋아해> <사요나라 이츠카> 등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어필하며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슈지로 분하며 강력한 변신을 시도했다. 주성철 기자는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이렇게 악에 받쳐 소리지르는 모습을 처음 봤다. 사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조금 뻣뻣하다 싶을 정도로 작품에 자신을 숨겨왔던 배우인데 색다르다”라고 말하며 “배우의 변신만 봐도 <컷>은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짧은 감상을 전했다. 주성철 기자가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변신’에 주목했다면 김영진 평론가는 영화의 ‘화법’에 주목한 듯 보였다. 김영진 평론가는 “전작 <라스베가스의 꿈>도 그렇지만 <컷> 역시 단순한 메타포를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관객을 설득시키는 방식이 대단하다”며 아미르 나데리 감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컷>은 한 남자가 돈을 갚기 위해 인간 샌드백이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가진 듯 보이지만 작품은 예술에 대한 지독한 열망을 넘어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존경으로 꽉 짜여 있다. 슈지가 여는 불법 상영회에서 상영하는 작품들과 그가 매를 맞을 때마다 떠올리는 작품들은 영화를 통틀어 총 102편에 달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하여 히치콕, 오슨 웰스, 존 포드, 로베르 브레송 등 모두 세계 영화사의 한 대목을 장식한 감독들의 작품이다. 슈지는 엄청나게 두들겨맞은 다음날에도 오즈의 묘를 찾아가 비석을 매만지거나 영사기로 거장들의 작품을 틀어놓고 멍든 자신의 몸을 스크린으로 삼으며 위안과 휴식을 얻는다. 김영진 평론가는 해당 장면을 지목하며 “조금 유치해 보이지만 영화를 육체로 받아내겠다는 것으로 보였다”고 해설을 덧붙였다. “폭력이 상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선 영화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어떠한 상징으로 보인다.” 주성철 기자의 말처럼 영화가 슈지의 입을 빌려 내비치는 투지나 슈지가 온몸으로 받아내는 폭력은 단 한번도 그만 때려달라고 사정하거나 빌지 않는 그의 곧은 의지와도 닮아 보인다. 그렇기에 슈지의 행동은 “멀티플렉스가 오늘날의 예술영화들을 집어삼킨 시대에 진정한 예술영화가 곧 오락 그 자체였던 옛 시절의 정신을 다시 상기시키자”는 그의 외침과 맞물려 더욱 절실해진다.
좋은 영화를 향한 감독의 열망
“영화는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스토리만을 따라가며 영화를 보게 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영화를 보며 영화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육체성 그리고 유사 지각을 얻게 된다. 아미르 나데리는 이런 부분을 극대화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영진 평론가는 근래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아미르 나데리의 색다른 연출 방식을 대화의 주제로 올렸다. “아무리 복근이 있다 해도 보통 사람이면 전신 골절에 내장 파열로 벌써 죽었을 거다. 사실 전혀 설득력없는 얘기다. 누가 아파죽겠는데 <시민 케인>을 떠올리겠나. 그러나 그것 자체가 함축하는 통증이 있다. 고국에선 검열 때문에, 미국에선 투자 때문에 영화를 마음껏 찍을 수 없었던 아미르 나데리 감독이 가진 주류영화에 대한 울분,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화면의 물성으로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또한 그는 “아미르 나데리가 <컷>으로 우리에게 던졌던 문제의식이나 영화의 화두가 깊게 남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2월 시네마톡의 문을 닫았다. 아미르 나데리, 그리고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두 남자가 빚어낸 영화 <컷>에 그제야 우렁찬 “컷” 사인이 떨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