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피와 폭력의 미학
2012-03-07
글 : 주성철
장철 특별전: 피바람이 분다, 3월6일부터 2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돌아온 외팔이>

장철 감독은 홍콩 누아르의 모든 것을 만든 사람이다.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오우삼이 그의 조감독이었고 그의 영화에서 장철 감독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굳이 덧붙이지 않더라도 상업적인 스타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천변만화하는 다작 관행을 놀라운 수준으로 이어갔으며, 무엇보다 피와 폭력이 처연하게 난무하는 풍경의 액션영화들을 통해 당대 젊은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외팔이>(1967)가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고통과 쾌락이라는 모순된 이중주와 잔혹미는 이후 장철 영화를 규정짓는 육체성의 시작이자, 왕우를 당대 최고의 흥행 배우로 각인시켰다. 이렇듯 쇼브러더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이끈 장철 감독의 15편을 엄선한 특별전 ‘피바람이 분다’가 오는 3월6일(화)부터 21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대자객>(1967)과 더불어 장철과 왕우의 호흡이 절정에 달한 작품은 바로 <심야의 결투>(원제 <금연자>(1968))다. 정패패가 연기하는 여걸 금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금전의 <방랑의 결투>(원제 <대취협>(1966))속편 격인 <심야의 결투>는 <방랑의 결투>를 완성한 호금전이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던 중 쇼브러더스를 떠나게 되면서 장철에게 맡겨진 프로젝트다. 처음부터 각본의 오리지널 컨셉에 찬성하지 않았던 그는 주인공을 아예 왕우로 바꿔버리고(오우삼처럼 그는 여자 주인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바야흐로 대량의 피와 잔혹한 폭력과 남성주인공의 순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장철식 폭력미학의 꽃을 피웠다. <돌아온 외팔이>(1969) 이후 시리즈 116의 3편 격인 <신외팔이>(1971)는 왕우가 장철의 필모그래피에서 하차한 뒤 새로이 합류한 강대위와 적룡이 출연한 작품으로, 이전보다 스케일이 큰 대규모 세트에서 완성돼 보다 활극적인 느낌을 강화시켰다. 거대한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대결이 압권이다.

이후 강대위와 적룡의 콤비 플레이는 눈부셨다. <13인의 무사>(1970), <쌍협>(1971), <자마> (1973) 등 두 사람은 늘 협동해서 싸우고(<첩혈쌍웅>에서 등을 맞대고 총격전을 벌이던 주윤발과 이수현을 떠올리면 될 듯) 서로에 대해 우정 이상의 동성애적 애정을 고백하는 모양새였다. 장철이 <수호지>를 여러 편으로 영화화할 때 적룡이 호랑이로 맨손으로 때려잡는 무송이었다면, 강대위는 수려한 외모에 풍류를 즐길 줄 알며 무엇보다 눈치와 ‘말발’이 끝내주는 연청이었다. 이후 장철은 새로운 액션스타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조련했는데 장철과 포학례의 공동 연출작인 <마영정>(1972)은 진관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장철의 남자들 중 어리고 장난기 많은 대표적 ‘소자’(小子) 느낌 배우였던 부성을 내세워 <사조영웅전>(1977)을 만들었다. 진관태는 적룡, 부성은 강대위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진관태는 최근 엽위신의 <용호문>(2006) 등 여러 편에 출연하며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만, 부성은 막 전성기를 탄탄히 다져갈 나이인 1983년 오토바이 사고로 채 서른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차수>

쇼브러더스를 떠난 장철은 대만에서 쇼브러더스 스튜디오의 대만지사로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 저예산 무협영화 제작을 계속했다. 1977년에서 1982년까지 새로이 발굴한 다섯명의 배우 라망, 녹봉, 손건, 강생, 곽추를 매번 똑같이 데리고 1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각종 무술과 기계체조로 잘 훈련된 이들을 일명 ‘베놈스’(Venoms)라 불렀고 이들이 출연한 12편의 영화를 ‘베놈스 필름’이라고 불렀다. 왕우, 적룡, 강대위가 맹활약하던 시절의 장철 영화들과 비교하면 스타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액션 연출의 정교함과 보다 기괴한 육체성의 탐닉을 보여줬다. <오독>(1978), <철기문>(1980), <차수>(1981)가 바로 장철의 대표적인 후기작들이며 상영작에서 빠져 있는 <잔결>(1978)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보드웰이 “장철의 육체성 훼손의 극단이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펼쳐지는 작품”이라며 매혹을 표하기도 했는데 위 세 작품 역시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18일(일) <대자객> 상영 뒤에는 장철 영화의 팬을 자처하는 <킬리만자로>의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가 참여해 장철 감독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도 마련되어 있다. 상영작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시간표는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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