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주목할만한 독립영화 4편
2012-03-07
글 : 송경원
<밀월도 가는 길>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한국영화계의 한축을 이끌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2007년부터 신설된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장례식의 맴버> <나는 곤경에 처했다> <파수꾼> 등의 장편영화들은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둠은 물론 성공적인 상업영화의 가능성마저 제시하며 그간 독립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켜왔다. 그 KAFA의 작품들이 올해부터는 <KAFA Films 2012: 그 네 번째 데뷔작>이란 타이틀로 관객과 안정적인 만남을 시도한다. 특히 이번 4기 개봉작 4편의 경우,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현직 영화인들의 충실한 멘토 과정을 통해 완성도있는 작품으로 거듭나 더욱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양정호 감독의 <밀월도 가는 길>은 학원폭력을 소재로 하여 현실과 가상이 섞여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섬 ‘밀월도’에 대한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동조(문정웅)가 소설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친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김태균 감독의 멘토를 거쳤으며 2011년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했다.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시선과 이색적인 소재, 더불어 학원폭력이라는 사회적 화두가 결합하여 주목할 만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김중현 감독의 <가시>는 반대로 서늘할 정도로 생생한 현실을 전한다. 지난해 16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되어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평범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가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뒤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윤호(엄태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인물을 동정하지 않는 카메라의 냉담함과 극도의 사실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멘토를 맡은 김태용 감독의 무게감있는 손길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판 <도가니>라고 할 수 있는 김선아, 박세희 감독의 <은실이>는 지체장애인을 성폭행하는 한 시골 마을에 관한 어두운 이야기를 다룬다. 여성감독들의 시선으로 성폭행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 사회비판적이고 예민한 소재를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을 위해 KAFA에서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과감하게 지원하고 있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마리이야기> <천년여우>의 이성강 감독이 멘토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최영석 감독의 <태어나서 미안해>는 루저들의 청춘반란을 기발하게 그려낸 참신한 컬트무비다. 1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받았던 솔직발랄한 이 영화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찌질한 20대 3인방의 사연을 통해 비틀린 희망과 가볍지만은 않은 웃음을 선사한다. 인간에 대한 감독의 애정어린 시선이 묻어나는 가운데 신선하고 실험적인 카메라와 과감한 연출을 거치며 활력을 얻은 캐릭터의 생동감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절로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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