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곧잘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다. 어른들은 혼냈지만 나는 때가 되면 음악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나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노하우였는데 사실, 비효율적이었다. 몇 십분을 제외하고 내내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음악이 훨씬 더 잘 들리고, 어떤 작품은 다 끝날 즈음에야 음악을 감지하게 된다. <말하는 건축가>는 후자였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에야 아, 음악이 있었지, 했다.
나는 다큐멘터리 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상계동 올림픽> 같은 작품들로 접해서 그런지 다큐멘터리란 일단 기록이며,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향하고, 그러므로 음악(이란 연출)은 그 본래의 힘을 해치는 장식이라 믿는다. 하지만 <말하는 건축가>에는 음악이, 춘천의 자두나무집처럼 숨어 있다. 강민국 음악감독과 정재은 감독은 어쩌면 정기용 건축가마냥 조화와 숨음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다. 여기서 음악은 또 다른 풍경이다. 한 사람이 사라져가는, 동시에 뭔가를 남기는, 일종의 대화라고 부를 법한 그 삶을 기록할 때, 피아노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그게 너무 아름답고 순해서 몇번이나 다시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