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은 이때 나는 다른 일로 바빴고 순전히 TV로 실제 경기를 봤던 심재명 대표가 밀어붙인 영화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나리오 초고 보고는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심재명 MK픽처스 시절 개발했던 영화라 이때는 회사에 참모가 많을 때였다. 몇몇 참모들은 ‘진 게임의 아줌마들이 나오는 영화를 누가 봐’ 하는 분위기였다. (웃음) 그런데 이은 대표가 이거 400만 영화라고 흔들림 없이 가라고 했다.
<파주>
이은 나 역시 마음에 든 작품이었지만 수익을 내긴 힘들어 보였다. 이리저리 계산해보니 4억원 정도 적자를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프로덕션 자체를 4억원 적자 선에서 맞추고 들어갔던 영화다.
심재명 시나리오를 읽고는 좋았는데 손해는 뻔해 보였다. (웃음) 그래도 하고 싶은 영화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을 봐도 알 수 있듯 명필름에서 두번 정도 작업한 감독들은 최호 감독을 빼고는 모두 한번 정도는 꼭 만회를 해줬는데, 박찬옥 감독은 청년필름과 함께했던 <질투는 나의 힘> 포함해 두번 다 손해였다. 이제는 박찬옥 감독이 ‘저 시나리오 새로 하나 썼어요. 보내드릴게요’라고 메일이 오면 클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웃음)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은 1995년 김현석 감독의 <대행업>이라는 시나리오를 보고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심재명 대표가 극구 반대했다. (웃음)
심재명 지금보다 더 연극적 상황의 시나리오여서 못마땅했다. 10년도 더 지나 영화로 만들면서 많이 바꿨다. 최다니엘 역할은 애초에 발가락 양말 신고 다니는 40대 남자였는데 전체적으로 나이를 줄였다. 그러면서 한결 경쾌한 느낌이 났다. 요즘엔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방식이지만 당시로선 무척 낯선 영화였을 거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이은 결과적으로 보편성이 먹힌 거다. 사실 명필름 전체 필모그래피로 보면 다른 극영화들이 거둔 성적보다 딱히 나은 게 아니다. 들어간 시간과 노력은 거의 1천만 관객 영화에 들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웃음) 그 과정에서 진이 다 빠졌지만 수익률과 별개로 정말 특별하고 뿌듯한 프로젝트였다.
심재명 둘 다 원작을 무척 좋아했다. 오히려 참모들이 거의 다 반대했다. 하지만 둘 다 명필름이 언젠가 애니메이션을 한다면 이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보경 대표가 음악 프로듀서처럼 이지승 작곡가도 끌어와 주는 등 온갖 두뇌와 노력을 쏟았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할 때 이은 대표의 넘버원 엄지손가락이 결정적인 힘이 됐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우리 딸의 엄지손가락이 큰 힘이 됐다. (웃음)
<건축학개론>
이은 제주도에 터를 사서 집을 짓자고 했다. 제작비는 15억원 선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보편적인 첫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통할 거라고 봤다. 너무 좋고 착한 시나리오가 있으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웃음) 심재명 대표와 함께 정말 좋아하는 멜로영화가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인데 우리 멜로드라마는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심재명 <광식이 동생 광태>에 단기기억상실이라는 모티브가 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 속 영화’ 같은 걸 먼저 보여주는 것과 플래시백이라는 장치가 있다. <건축학개론>은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과거와 현재가 동등하게 가면서 과거의 일을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납뜩이’라는 대중적 코드도 충분히 먹힐 것 같았고.
<두레소리>
이은 지난해에 중앙대 후배 조정래 감독이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제목으로 완성한 영화인데 음악도 좋고 모처럼 신선한 영화였다. 직원들과 고민하다가 개봉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감독이 판소리 고수인데, 말하자면 두레소리는 음악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원들한테 짐 하나를 더 얹어준 거 같아 정말 미안한 기분이었다. (웃음)
심재명 일단 노래가 너무 좋다. 마지막 노래 장면은 거의 전율이 생길 정도다. O.S.T도 나왔다. 재밌는 게 주인공 중 김슬기양은 옛날 <대장금>에서 ‘오나라 오나라’ 그 노래를 부른 친구인데 어느덧 영화 속에서처럼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