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도둑들] 첫 공개! 최동훈이 말하는 <도둑들>
2012-04-30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범죄의 재구성> <타짜>팀에 이정재, 김수현, 임달화까지… 상반기 최고 기대작 <도둑들> 이야기

<전우치>는 12세 이상 관람가였다. 한국형 판타지에 대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최동훈의 영화에 굳이 <아바타>와 대전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 순간 흥행사 최동훈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부디 본연의 역할로 돌아올 것! 청소년 관람불가로 규정되는 영역, 즉 인간의 욕망이 각종 범죄와 접점을 이루어 들끓고 아귀다툼하는 그 세계는 최동훈을 최동훈답게 만들어줄 의심할 바 없는 하나의 브랜드였다. 그리고 그건 <타짜>(2006)의 고니가 밤거리를 걷는 첫 장면에서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의 고독을, 사정 봐주지 않고 도심을 질주하던 <범죄의 재구성>(2004)의 카체이싱 장면에서 <스피드>의 쾌감을 또 한번 맛보고 싶은 관객의 순진한 바람이었다.

<전우치>(2009) 이후 2년 만의 신작이지만, <범죄의 재구성> <타짜>로 이어지는 범죄 3부작으로 따지자면 무려 6년 만이다. <도둑들>은 한·중 도둑이 합심해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스케일 큰 절도극이다. 전매특허 사기극이 절도극으로 바뀌었지만, <도둑들>은 우리가 최동훈 감독에게 그토록 바라던 범죄와 액션과 욕망과 좌절, 그리고 화려한 캐스팅과 빠른 편집, 장르적 쾌감이 공존하는 영화다. 7월 개봉을 앞두고 후반작업에 한창인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의 지난 제작과정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공개되지 않았던 현장 스틸컷도 함께 수록한다.

점보레스토랑 안의 마카오 박(김윤석),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잠파노(김수현).

-<도둑들>은 애초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은 ‘범죄 3부작’으로서 기대가 크다. 다들 <전우치>로의 외도를 끝내고 다시 본령으로 돌아오는 걸 반기는 분위기인데.
=사실 3부작을 의도한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고 그때그때 재밌는 영화를 하려고 하는 거다. 큰 의도는 없고 정말 재밌어서 한 거다. 한번 결정하면 적어도 2년은 꼼짝없이 쏟아부어야 하고, 전적으로 한 작품에 사로잡히게 된다. <타짜>를 끝내고 바로 <도둑들>을 했으면 지금 같은 영화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간에 <전우치>를 한 게 연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전우치>는 본인에겐 새로운 시도였지만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 단절을 가져온 의외의 도전이기도 했다.
=<타짜>가 끝나고 난 뒤엔 뭘 해도 <타짜>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제작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다. 만약 그때 <도둑들>을 했다면 <타짜>와 연결돼서 비슷한 영화라는 느낌을 주는 데 그쳤을 거다. <전우치>는 소재나 장르나 모든 부분에서 전작과 다른 영화였고, 덕분에 많이 힘들었지만 나에겐 일종의 외출과 같은 작품이었다.

-결코 가벼운 외출은 아니었다. <전우치>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기존 두 작품에서 이어지던 승승장구의 반열에 ‘흠’을 낸 필모그래피기도 했고.
=아주 무거운 외출이었지. (웃음) 조카가, 친구들이 너무 좋아한다면서 <전우치> 속편을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건 안된다, 어른들은 싫어한다고 해줬다. (웃음) 그런데 <전우치>를 하면서 CG, 특수효과 등 여러 가지 두렵게 드꼈던 기술이 는 것은 고무적이다. 덕분에 <도둑들>이 확실히 덕을 봤다. 예를 들면 이번에 고난이도 와이어 액션을 소화해야 했는데 이미 <전우치>에서 다 해본 거였다. 스탭들도 모두 <전우치>팀이라서 한번 경험이 있으니 수월했다. 다들 실력이 늘어 매우 잘했다. 겁도 없어졌고.

액션의 가능성 커진 <도둑들>

2010년 6월 촬영 첫날. 최동훈 감독과 배우들의 모니터 체크.

-전우치의 비주얼이 <전우치>를 만드는 데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고 들었다. <도둑들>은 다이아몬드를 손에 쥔 이미지에서 시작한 건가.
=<전우치> 때는 전우치가 개랑 다니면서 도술을 하면 너무 재밌겠다, 남대문 위에 서 있는 비주얼이 있으면 멋지겠다 하는 장면에서 시작했다. <도둑들>의 경우엔 각자 재능을 가진 도둑들이 떼지어 걸어오면 재밌겠다 싶었다. 도둑들끼리 서로 이야기꽃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재밌겠더라. 그 장면에서 출발했다. 그때가 <전우치> 후반작업하러 부산에 갈 때였는데 촬영감독이랑 공항에서 “뭘 털까. 비행기 털면 어떨까. 근데 공항은 너무 평면적이라 재미가 없지 않을까?” 이러면서 이야기를 막 구성했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짜릿짜릿하더라.

-이번엔 사기가 아니라 절도다. <타짜>는 화투판의 사기였고, <범죄의 재구성>도 ‘창혁’(박신양) 일당이 은행을 터는 걸로 시작하지만, 결국 큰 틀은 그걸 둘러싼 도둑들간의 사기였다.
=맞다. <도둑들>이 그래서 전작들보다 더 육체적이다. 사실 사기극을 쓸 때는 취재하기가 쉬웠다. “내가 왕년에 사기 좀 쳤었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도둑은? 취재를 할 수가 없다. “내가 도둑이었는데…” 하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다. 도둑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을 거다. 반대로 사기꾼은 실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연기’를 하는 게 표면에 드러난다. 이렇게 사기와 도둑질의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에 영화적 재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도둑들>은 도둑이 잠입하고 도망 나오고 하는 장면에서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사기극이 액션을 연출하는 게 힘들다면, 도둑은 바로 액션으로 연결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한 신에서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장면의 재미가 더 커지는 거다.

카지노 안의 뽀빠이와 마카오 박.

-<타짜>에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부분 중 하나는 직접 발로 뛰어 취재 해서 쓴 생생한 시나리오였다. 도둑이 모두 드러내기를 꺼려한다면, 디테일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겠다.
=확실히 사기는 연구를 잘하면 될 것 같더라. (웃음) <타짜> 때 도박하는 기술을 알려준 분이 있었는데 그걸 배워서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타짜> 때 도박하는 손장면은 다 내 손 찍은 거다. 너무 재밌더라. 도박 실력이 늘게 되니 괜히 영화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도둑들>은 그런 자문이나 연습은 불가능했다.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내가 이 건물을 턴다면 어떻게 접근하면 될까. 미술관을 가면, 그림보다 이 미술관을 어떻게 털까에 골몰했다. 밤마다 건물 조감도를 그려가면서 터는 걸 상상하는 거다.

-<도둑들>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를 수식하는 한국형 케이퍼 무비에 대한 답안 같은 영화였다. 이 장르로만 세 번째 도전이니 새로운 목표치가 있을 것 같다.
=장르영화는 계속해서 비슷한 구도로 다른 색깔을 끌어내야 하는 작업이다. 장르영화의 작업이 보기보다 쉽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어떤 느낌이냐면, 운동장에서 똑같은 유니폼 입고 뛰는 선수들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다 비슷비슷하게 뛰는데 한 선수만 유독 다른 느낌을 주는 거다. 좀 비틀거나 독창적이거나, 그걸 해내야 한다.

-<도둑들>을 ‘각자의 장기를 가진 도둑들이 작당모의해서 최고가의 다이아몬드를 훔친다’로 정리한다면, 공개된 사진 속 멋진 도둑들의 면모만 봐도 어쩔 수 없이 <오션스 일레븐>이 떠오른다.
=<오션스 일레븐>이랑 같으면 굳이 영화 만들겠나. 그건 일종의 판타지다. 훈훈하게 털고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근데 <도둑들>의 도둑들은 그렇게 매끄럽게 헤어지지 못한다. 정서상으로 보자면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와 더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장면마다 주인공이 따로 있는데 이게 조합 같기도 하고, 또 각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는 구조다.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의 배경이 서울, 홍콩, 마카오, 부산인 것도 인물들에게 각자 역할이 있어서다. 찍고 보니 오히려 <미션 임파서블>이랑 비슷하더라. 사실 뭘 만들어도 <오션스 일레븐>을 피해갈 수는 없을 거다. <범죄의 재구성> 때도 지인이 시나리오 보고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영화 접어야겠다’ 하더라. <오션스 일레븐>이랑 비슷하다며. 시사회 때 가슴 졸이며 영화 보러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근데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의 일을 수행하는 구도는 너무 많다. 범죄영화라면 그런 구도를 택할 수밖에 없다. 왜냐, 실제 도둑들이 그럴 거니까.

배우 캐스팅은 결혼과 같다, 한평생 같이 간다

한국 도둑들을 만나러 들어오는 중국 도둑 4명.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같은 영화가 할리우드 케이퍼 무비의 현재적인 답안이라면,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는 한국형 케이퍼 무비로 정의된다. ‘한국형’이 뭐라고 생각하나.
=<오션스 일레븐>의 영향은 별로 없고 내게 케이퍼 무비로서 영원히 최고의 작품은 <리피피>(1955)다(프랑스 감독 줄스 다신의 영화. 인간의 약한 본성이 완벽한 계획을 좌절시키는 숙명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할리우드영화는 너무 매끄럽다. 캐릭터가 빛나지 않고 플롯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플롯을 갈고닦아서 그걸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스타의 이미지를 그대로 대입해서 그 이미지가 곧 캐릭터가 돼버린다. <도둑들>에도 한국의 엄청난 스타들이 출연하지만, 기존 영화에서 그들의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를 연기한다. 그게 한국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전체 이야기에 방해가 안될 정도로 각 캐릭터의 사는 모습을 넣고 싶었다. 드라마는 빠르게 흘러가야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보이길 바라는 거다. 마카오 가서도 한국 도둑들은 술 마시고 신세한탄도 하고 그런다. 한국에서처럼. (웃음)

-장르 특성상 가져가야 할 빠른 템포에선, 이런 선택이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가 조금 느려질 수 있지만, 이 장르에서 요구되는 너무 빠른 템포, 바삐 움직이기만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타짜>보다는 좀 빠르다. 컷을 많이 아끼고 싶었는데 하고 보니 3천컷이 넘더라.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졌는데, 예전에는 리듬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같이 흘러가는 게 좋은 리듬이다 싶다. 장면에 맞게 템포를 조절하는 게 점점 재밌어지더라.

-한·중 연합, 총 10명의 도둑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다.
=결국 장르는 외피에 불과하고 내 마음을 끄는 건 좋아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딱 집어 어떤 거다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타짜> 때도 원작 만화와 영화 캐릭터를 다른 인물로 간 건 현실에 존재하는, 내가 원하는 캐릭터로 바꾼 거였다. <도둑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로 시작했다.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무려 10명의 주연이 등장하는 영화라 캐스팅 순서도 골치 아팠을 것 같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아예 배우를 정해놓고 쓰는 걸로 유명하다. 바꿔 말하자면 배우에 관해서 무지 까다롭단 소리다. 그래서 ‘최동훈 사단’이란 말이 생기나보다.
=배우랑 대화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배우를 탄다’. 어떤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하느냐가 내겐 매우 중요한 문제다. 결혼과 똑같다. 그 배우와 한평생 살아야 하는 거다.

-그중에서도 김윤석에 대한 애정은 특히 커 보인다. <범죄의 재구성> 때 형사로 작은 역을 선보인 게 시작이고 <타짜> 때의 징글징글한 도박꾼 아귀는 김윤석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중요한 족적을 남긴 역할이 됐다. <전우치>와 <도둑들>까지 이번이 네 번째 작업이다.
=전체 범죄를 설계하는 마카오 박 역할은 배우 김윤석 말고 다른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상상이 안될 정도로 당연히 그여야만 했다. 영화하고자 처음 마음먹었을 때 하늘에서 기중기 추 떨어지듯이 윤석 선배가 연상되더라. 일단 윤석 선배가 마카오 박을 한다고 설정하고 나면 이후의 시나리오는 잘 풀린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인물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나면 된다. 아예 시나리오 쓰기 전 만나서 술 마시면서 같이 마카오 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김윤석이 든든한 버팀목이자 카리스마를 발산한다면, 이정재는 도둑의 비주얼 담당으로 역할이 뚜렷하다.
=와이어 세팅 전문가인 뽀빠이 역할인데 과연 정재씨가 할까 싶었다. <범죄의 재구성> 때도 시나리오 줬는데 안 했었는데. (웃음) 그땐 많은 배우들이 ‘No’를 했다. 그전에 나랑 친한 김용화 감독과도 하고(<오! 브라더스>), 임상수 감 독과도 했으니(<하녀>) 어떻게 잘 이야기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김용화 감독에게 같이 술 한번 하자고 해서 임상수 감독 팔면서 시나리오를 줬다. (웃음) 예상과 달리 반응이 완전히 뜨거웠다. 특히 시나리오에 있는 캐릭터보다 훨씬 더 창의적으로 캐릭터를 해석해서 나를 놀라게 한 장본인이 정재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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