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하지원] 사귀고 싶은 친구처럼
2012-05-07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백종헌
하지원

“시나리오 읽고 두번 울었어요. 한번은 감동 받아서, 한번은 해야 하나보다 싶어서요. 몸은 너무 아픈데 마음은 하고 싶고.” 배우 하지원이 <코리아>를 만난 것은 그녀의 온몸이 ‘이제 그만!’을 외치고 있을 때였다. <해운대>(2009)를 마친 뒤 <7광구>(2011)로 향하는 시추선에 오른 것이 2년 전. 미리 스쿠버, 바이크, 수영, 복싱 등으로 ‘여전사’에 걸맞은 몸을 만들어두었음에도 촬영 막바지에는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하지만 <시크릿가든>팀이 몇달 전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도 쉬지 못한 채 그녀는 액션배우 길라임이 되어 와이어를 탔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4일 동안 액션 신부터 찍었어요.” 그 살인적인 드라마 스케줄을 모두 끝내고 “이번에는 무조건 쉬겠다”고 결심한 그녀 눈에 불행히도(?) <코리아>가 들어온 것이다. “이틀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 바로 연습 나갔어요.”

시작은 순조로운 듯했다. “첫날부터 스매싱을 배웠는데 다들 곧잘 따라한다고 칭찬해줘서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훈련 돌입 뒤 한달째에 고비가 닥쳤다. “전작들에서 무리하게 몸을 쓴 탓에 골반이 틀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상체만 보면 그럴듯한데 전체적으로는 자세가 삐뚤어져 있었던 거예요. 이제 와서 고칠 수도 없고, 암담한 기분에 이 영화는 포기해야겠다고 마음까지 먹었어요.” 낙심한 그녀의 초심을 되찾아준 이는 현정화 감독이었다. 본인 역에 직접 하지원을 추천하기도 한 현 감독은 그녀의 근성을 믿었다. “감독님께서 열정이 없으면 그런 생각도 안 든다며 그게 다 제게 열정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다시 시작해보자 싶었죠.” 그때부터 그녀는 무쇠의 정신력으로 버텼다. 오전에는 재활치료에 매진했고, 오후에는 4시간 동안 5분밖에 쉬지 않고 탁구만 치는 연습벌레가 됐다.

물론 6개월 연습한 실력으로 당장 ‘탁구 요정 현정화’가 될 수는 없었다. 하나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잘 맞춘다면 승산은 있었다. “어떤 경기는 24합, 어떤 경기는 30합, 이런 식으로 합을 짜서 테이크마다 그 합을 반복했어요. 나눠서 찍으면 호흡이나 시선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실전처럼 선발전, 예선전을 치르다보니 나중에는 감독님이 몇합에 언제 드라이브 걸고 언제 스매싱 하라고 대충만 얘기해주셔도 저희끼리 박자가 딱딱 맞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현정화식 ‘파이팅!’을 집어넣었다. “당시에 경기를 보신 어른들께 물어보니까 감독님이 탁구대 앞에 서면 기운부터 달랐대요. 그 에너지, 씩씩함을 영화에 실으려고 했어요.”

드라마를 위해 픽션이 가미된 장면에서는 현정화식 엄격함보다는 하지원식 솔직함으로 밀어붙였다. 과거 현 감독은 포커페이스로 유명했지만 영화 속 현정화는 한점을 따거나 내줄 때마다 표정 변화가 확실해야 했다. 선발전에서 리분희(배두나)팀에 진 뒤 밤에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다 우는 장면도 픽션이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경험에 의지했다. “처음에는 말투 하나까지 관찰하고 따라했어요. 근데 다큐가 아니니까 어느 순간에는 제가 만드는 현정화로 가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게 통했다. 결국 그녀가 만들어낸 현정화에 진짜 현정화가 울음을 터뜨렸으니. “다른 코치님들도 현장에서 모니터를 해주셨는데 실제로 선수들 속마음이 꼭 저렇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 들었을 때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런 그녀를 만나 <코리아>의 현정화는 이 악문 승부사가 아닌 다분히 인간적인 탁구 영웅이 되었다.

아직 현정화가 몸에 남아 있다는 그녀는 벌써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 합류해 10화를 넘겼다. <코리아>에서 남북단일팀 선수로 뛰어보고 나니 북조선 특수부대 교관 김항아가 돼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녀는 뛰고 구른다. 하지만 무작정 뛰고 구르는 것이 아니다. <코리아>에서도, <더킹 투하츠>에서도 그녀의 목표는 하나다. 사람들이 현정화를, 김항아를 “사귀고 싶은 친구”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녀는 그저 드물게 액션 잘하는 여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드물게 관객에게 사교적인 액션배우다. 그녀가 연기하면 기름때 묻은 여전사도, 온몸이 멍든 액션배우도 격없이 다가왔다. 독한 탁구 영웅이 아는 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녀 덕이다. 그래서일까. 은근히 기다려진다. 그녀가 소개해줄 다음 친구는 누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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